"김대중, 광복절 경축사를 가장 중시
노무현, 전날 밤까지 연설문 고쳤다"

[이한기의 뷰]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②

등록 2018.03.23 22:41수정 2018.03.2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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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과 더 닮았다”라며 “결과물뿐만 아니라 연설문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도 닮았다”고 말했다. ⓒ 유성호


[기사 수정 : 3월 26일 오후 2시]

- <위키백과>에 실린 강원국 인물 소개를 봤더니 '참여정부 인수위 시절, 국민의정부 연설문 담당으로 파견됐다가 인수위 인사들이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오찬 관련 축사를 준비한 게 눈에 띄어 참여정부에서 연설비서관을 맡았다'고 돼 있던데, 스스로 팩트체크를 해달라.
"참여정부 인수위에 참여해 노무현 당선자의 연설문을 담당했다. 당시 팀장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윤태영 선배였다. 노 당선자께서는 내 원고를 읽지 않으셨다. 말씀하는 걸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인수위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북핵 문제와 북폭 위기설 등으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당선자께서 한미연합사에 간다며 준비된 연설문이 있냐고 물었다. 준비했던 원고를 드렸고, 그때 처음으로 내 원고를 읽으셨다. 통역에게 원고를 미리 건네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인수위가 마무리되고 200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당일이었다. 오래된 참모들이 '당선자께서는 식사 자리에서 연설문을 읽으신 적이 없다'며 취임 오찬·만찬사 원고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오찬사와 만찬사를 안 읽으신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원고를 준비했다. 그런데 당선자께서 그날따라 원고를 찾았다. 취임식날 오찬은 3부 요인 등과 함께 하고, 만찬은 축하사절단으로 온 외국 정상들과 함께 한다. 그에 맞게 두 개의 원고를 준비했는데 우연찮게 맞아떨어졌다."

-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오찬·만찬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나.
"취임 다음날인 2월 26일이었다. 노 대통령이 비서실마다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저를 찾았다. 뒤에 찌그러져 있다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자네 때문에 낭패를 면했다'며 '고맙다'고 하더라. 저는 당시에 존재감이 없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을 수행하는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사실 대통령이 고맙다고 얘기할 필요도 없었고, 이전에는 대통령이 일개 행정관에게 고맙다고 말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노무현 후보 캠프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노 대통령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정말 어려웠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방향표시등 역할을 해주는 '그러나, 그리고, 그러므로'와 같은 접속사를 써야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그건 글에 못질을 하는 거다. 문맥으로 이어라. 훌륭한 목수는 나무결로 꿰어맞춰서 집을 짓지, 못질을 하지 않는다'면서 가급적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김 대통령은 반복을 좋아하는데, 노 대통령은 반복하면 '사보타주 하냐, 하기 싫으면 그만 두라'고 야단을 친다. 두 분 모두 스타일은 다르지만, 글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만큼 글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다."



- 청와대 대변인이 얼굴을 내보이며 대통령의 생각을 말로 전달한다면, 연설비서관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대통령의 생각을 글로 만드는 역할이다. 대변인과 연설비서관의 차이는 무엇인가.
"연설비서관이 '사전(事前)'이라면, 대변인은 '사후(事後)'다. 어떤 일이 있기 전에 연설비서관은 글을 쓴다. 그런 면에서 대변인보다는 연설비서관이 더 대통령에 빙의(憑依)돼야 하는 자리다. 대변인은 임기응변에 강해야 하고, 연설비서관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대변인은 말이 한번 나가면 주워담을 수가 없지만, 연설비서관은 연설문이 완성되기 전까지 계속 고칠 기회가 있다. 그런 점에서는 대변인이 마지막 선이다. 나가버리면 끝난다.

연설비서관이 잘못하면 중간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혼나고 고치면 된다. 그러나 대변인은 주워담을 수 있는 중간 과정이 없다. 그만큼 어려운 자리다. ('노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리는) 윤태영 대변인조차 대통령에게 혼날 정도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노 대통령이 '왜 투명하게 다 알려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윤태영 대변인이 '보안상의 문제'라고 했더니, 노 대통령이 반문했다. '누구에 대한 보안이냐. 국민이 주인인데 왜 국민한테 안 알려주고 너네끼리만 정보를 알고 있느냐. 어깨에 힘주려고 그러냐'고. 가능하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게 노 대통령의 지론이었다."

-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도, 대통령에게 야단 맞으면 속상할텐데.
"속상한 게 아니라 무섭다. 또 혼날까봐(웃음)."

-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홍보수석실(현 국민소통수석실)의 체계는 차이가 있나.
"국민의정부 때 만들어진 홍보수석실 체계와 큰 차이가 없다. 국민의정부 이전에는 달랐다. 청와대 공보수석이 대통령 연설문을 직접 작성했다. 공보수석이 연설수석이었던 셈이다. 이전 대통령들은 연설문을 직접 쓰지 못하는 분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연설비서관이 아니라 공보수석이 썼다.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야 비로소 대통령의 생각과 말이 연설문에 담기게 됐다. 대통령이 본인의 생각과 철학을 스스로 표현하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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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001년 8월 15일 오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5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대통령의 필사'라고 불리는 청와대 연설비서관의 업무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기념사나 축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나.
"특정 소속 부처가 있는 행사나 기념일의 연설문·축사는 행정안전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해당 부처에서 초고가 온다. 그러면 대통령 비서실에서 검토한 뒤 연설비서관에게 넘어온다. 연설비서관은 초고를 기초로 원고를 작성한다. 해당 부처에서는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에서 초고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나중에 최종 연설문·축사를 보면, 초고의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러 단계를 거쳐 대통령의 언어로 완전히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3·1절이나 광복절, 현충일은 주인이 없는 기념일이다. 특정 소속 부처가 없다는 뜻이다. 이 때의 기념사(경축사) 작성은 대통령마다 다르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장관들이나 위원회에 의견을 내보라고 했다. 김 대통령은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를 찾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면 되느냐'고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따로 의견을 묻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본인이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를 정해서 제시했다. 3·1절이나 광복절에 (대통령이 설정한 의제의) 메시지를 던졌다. 굳이 기념일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설문 담당자에게 구술해줬다. 김 대통령은 초고를 받아서 그걸 본인에 맞게 고쳤다. 반면, 노 대통령은 본인이 구술한 내용을 갖고 여러 차례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 말로 한 걸 글로 전달하면, 수정할 내용을 말로 전달하고, 그 내용을 다시 글에 반영하는 식이었다."

- 3·1절이나 광복절 등 중요한 기념일의 연설문을 작성할 때에는 어떤 사람들이 관여하는가.
"(연설비서관이 대통령의 검토·수정을 거친 최종 원고를 작성하면) 관련 수석비서관과 장관들이 모여 독회(讀會)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홍보수석, 경제수석, 외교안보수석은 필수적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몇몇 장관들이 참석한다. 이런 독회는 광복절 때는 반드시 했고, 3·1절 때는 한 적도 있고 안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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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3월 1일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8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특별히 애착을 가졌던 기념사나 연설문이 있었는지.
"두 분 대통령 모두 광복절 경축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정성을 쏟았다. 두 번째가 신년 연설이다. 신년기자회견 때 대통령의 모두연설은 한 해의 청사진을 밝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3·1절 기념사다. 이건 두 분 대통령이 같았다. 김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도 엄청 신경을 썼다. 그리고 남북관계와 관련된 주제, 이를테면 경의선 복원 등 역사적 기록이 될만한 기념행사 축사도 꼼꼼하게 챙겼다.

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두 달에 걸쳐 작성했다. 6월 중순에 불러서 '이런 주제로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을 했다. 그때 '통합', '과거사 정리' 등 큰 주제를 제시해줬다. 다만, 연설문이 완성될 때까지 주제가 여러차례 바뀌었다. 노 대통령은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김 대통령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담았다. 노 대통령의 연설문이 '단품요리'라고 한다면, 김 대통령의 연설문은 '한정식'인 셈이었다."

-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 '정치인은 말이 99%'라고 했는데.
"우리가 다 보고 겪지 않았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말을 잘 못했다. 말을 못한다는 건 생각이 없다는 거고 자신이 없다는 거다. 이 두 대통령 때는 '말의 암흑기'였다. 말이 말이 아니었다. 정치인의 말을 오염시키고 희화화시켰다. 이를 계기로 국민들이 각성을 했다. 최근 대형서점에 가면 말에 관한 책,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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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ㆍ1절 기념식을 마친 뒤 참석자들과 함께 독립문까지 행진한 뒤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 대통령의 말이 갖는 힘은 무엇인가.
" 대통령의 말 자체가 국정운영이다. 그 말 안에 생각과 철학과 가치와 방향 등이 다 응축돼 있다. 국민들께 생각을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도 대통령의 말을 통해서 이뤄진다. 모든 것의 마지막은 말로 귀결된다. 제도나 정책을 만들어도 말로 설명해야 하지 않나."

- 연설비서관이 대통령의 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지.
"대통령마다 다를 거다.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 대필작가)'다. 자기 말이 아니라 대통령의 말이다. 본인이 드러나면 안된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모두 본인의 말과 글이지 않았나. 김 대통령께 연설문을 작성해 올릴 때도, 수십 년 동안 그 분이 한 말씀을 연구해 그 분의 언어로 대신 썼을 뿐이다. 참모들의 생각을 넣은 것도 아니고, 연설문은 최종적으로 대통령 스스로 본인의 언어에 맞게 고쳤다. 노 대통령은 구술을 했으니 더욱 그렇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더군다나 그걸 (국민에게) 전달하는데 고수였다. 굳이 다른 글쟁이들의 도움이 필요없을 정도로."

- 연설문을 담당했던 입장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두 분 가운데 누가 더 힘들었나.
"(주저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훨씬 힘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설문을 올려드리면 본인이 최종 마무리를 지었다. 노 대통령은 (구술을 바탕으로 작성한) 연설문을 올려드리면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말 그대로 초고와 발제문이 나온 셈이다. 그리고 생각나면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끝까지 수정했다. 광복절 경축사는 매일 수정·보완하면서 행사 하루 전날까지 매만졌다. 한번은 국회 연설문을 작성했는데, 연설 하루 전 날 밤에 새로 다시 쓴 적도 있다. 그 정도로 글에 대한 애착과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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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말 자체가 국정운영이다”라며 “그 말 안에 생각과 철학과 가치와 방향 등이 다 응축돼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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