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넉넉하지만 사람들은 가난하다면?

[시골에서 책읽기] 복지나라를 묻는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

등록 2018.03.26 08:13수정 2018.03.2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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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기본 생활 보장과 사회 연대라는 두 개의 기둥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복지국가는 학생들 밥, 아이 돌봄, 노인과 실업자의 기초 생활뿐만 아니라 전체 구성원의 기본적 삶을 보장해 주는 나라입니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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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철수와영희


한국은 가난한 나라일까요, 아니면 가난하지 않은 나라일까요? 한국은 넉넉한 나라일까요, 아니면 넉넉하지 않은 나라일까요?


어느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테고,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는 '가난한 나라'라 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넉넉한 나라는 아니라고 할는지 몰라도, 더욱이 가난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국은 틀림없이 '안 가난한 나라', 다시 말하자면 '넉넉한 나라'로 꼽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올림픽을 치르는데 가난한 나라일 수 없겠지요. 고속도로가 그렇게 많은데 가난한 나라일 수 없을 테지요. 자동차가 그렇게 많이 오가는데 가난한 나라일 수 없을 텐데요, 그러나 한 가지를 짚어야겠지요. 틀림없이 '나라는 넉넉한'데, 고단하거나 힘들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지금보다 30퍼센트 정도 건강 보험료를 더 내면서 1년에 환자 한 사람이 내는 본인 부담금을 100만 원으로 제한하자는 거예요. 의학적 비급여 진료비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지금 가구당 국민 건강 보험료가 약 10만 원인데, 여기에 평균 3만 원을 더 내고 기업과 정부 부담을 합치면 가능합니다. 이러면 병원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 나는 일은 사라질 것입니다. 또 가구당 월 30만 원에 이르는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31쪽)
스웨덴에서 보편주의의 유연한 적용이 농민이나 중산층과의 연합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더 빈곤한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 차별'이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일찌감치 나타납니다. (68쪽)


인문책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오건호와 네 사람, 철수와영희, 2018)는 어딘가 아리송한 대목을 찬찬히 짚으려 합니다. 여러모로 한국은 넉넉한 나라에 들 수밖에 없는데,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무척 많은 사람들은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돈은 늘어나지만, 이 돈이 한쪽으로 쏠려요. 틀림없이 새 아파트를 엄청나게 짓습니다만, 집이 없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요즈음 무주택자 비율은 44퍼센트라고 합니다. 그래도(?) 절반 넘게 집이 있지 않느냐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집이 없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요. 국회나 정부에서 집 없는 이 목소리를 담아낼 일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합니다. 국회에도 공공기관에도 '집 있는 사람이 부동산으로 돈을 굴리도록 하는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거의 모두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곰곰이 보면 오늘날 시골은 땅덩이는 넓으나 시골살림 목소리를 들어주거나 들려줄 일꾼이 매우 적습니다. 오늘날 도시는 땅덩이는 좁아도 사람이 매우 많기에, 인구에 맞추어 도시살림 목소리를 들어주거나 들려줄 일꾼이 무척 많아요. 이런 모습하고 맞물려 주거권, 기본권, 평등권, 여기에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담아내거나 펼칠 수 있는 자리가 좁다고 할 만합니다. 재산권을 펴는 자리는 아주 넓은데다가, 재산권을 지키는 목소리는 무척 크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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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표 ⓒ 철수와영희


"어떤 사람들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재산권'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재산권은 우리의 여러 권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재산권을 내세워 인간의 기본적인 주거권을 침해하는 건 인간 존엄성과 평등권을 명시하는 우리 헌법에도 위배되는 일입니다."(137쪽)
"최저 임금이 법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이에 미달하는 근로자가 많은 원인은 한국에 영세 사업장이 너무 많은 것도 있지만, 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212쪽)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라는 책을 이끄는 다섯 사람은 보편 복지, 의료 복지, 주거 복지, 연금 복지, 노동 복지, 이렇게 다섯 가지 복지란 무엇이고 우리 터전에서는 어떤 모습인가를 짚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합니다. 마무리로는 세금을 나라에서 어떻게 걷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얼마를 누가 누구한테서 걷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요.

넉넉한 나라로 접어든 한국은 복지라는 길에 조금은 발을 들이기는 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해요. 인권으로도, 의료나 주거권으로도, 머잖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는 연금에서도, 또 비정규직하고 하청이 나날이 늘어나는 얼거리에서도 모두 아장걸음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세금을 안 내면서 뒷돈을 쌓는 사람이 매우 많고, 이 돈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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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표 ⓒ 철수와영희


"전국의 다주택자가 187만 명인데, 그중에서 주택 임대 소득을 신고한 사람은 4만 8000명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비율로는 2.6%밖에 안 되는 거죠."(253쪽)


한 사람은 배가 부르지만 곁에 있는 다른 한 사람은 배가 고프다면, 오늘 배가 부른 한 사람도 머잖아 배를 곯을 수 있습니다. 학력이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벌어지는 일삯이나 연금이나 복지가 아닌, 일하는 사람이 저마다 제몫을 누리면서 아늑한 살림터를 누릴 때에 다 같이 넉넉하면서 즐거운 나라가 될 만하지 싶습니다.

"복지국가로 가는 재원을 만드는 방법은 정공법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비정상적으로 낮춰 놓았던 법인세나 보유세를 원상회복하고 진작 과세를 했어야 함에도 미뤄두었던 주식 양도 차익이나 주택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평 과세의 원칙이 확립될 것입니다. 공평 과세로 세금에 대한 신뢰와 증세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 사회 복지세 같은 새로운 복지 세금을 통해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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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표 ⓒ 철수와영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는 누구나 누려야겠지요. 보금자리를 가꾸며 느긋하게 아이를 낳아 돌볼 권리도 누구나 누려야겠지요. 햇볕을 쬐고 텃밭을 일구며 맑은 바람이며 물을 마실 권리도 누구나 누려야 할 테고요.

그런데 이러한 길로 가자면, 여느 자리에 있는 우리도 어제보다는 세금을 조금 더 낼 수 있어야 한다지요. 그동안 세금을 떼먹은 사람한테서 제대로 세금을 걷을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여기에 세금을 걷고 다스리는 나라일꾼은 슬기로우면서 곧바라야 합니다. 벼슬아치로 머무는 일자리가 아닌, 서로이웃이라는 마을살림을 헤아릴 노릇입니다.

넉넉한 나라이지만 사람들은 가난해서 고달픈 살림이 아닌, 넉넉한 나라이면서 사람들도 넉넉한 살림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하는 우리 손으로 지은 돈을 걷어서 꾸리는 나라살림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아름다운 길로 갈 수 있기를 빕니다. 이제는 함께 걷는 길이 되어야겠어요. 이제부터는 함께 웃는 살림이 되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오건호·남재욱·김종명·최창우·홍순탁 글 / 철수와영희 / 2018.2.28.)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 - 기획: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오건호 외 지음,
철수와영희, 2018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 #복지국가 #복지 #인문책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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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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