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 있는 카페, 여기 있습니다

전남 해남 우수영마을, 옛 여관 건물은 생활사 갤러리로

등록 2018.03.23 08:25수정 2018.03.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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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로 단장된 우수영의 담장. 임진왜란 당시 우수영 사람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일본군들의 약탈 모습이다. ⓒ 이돈삼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매서웠다. 겨울의 습격을 받은 춘분이 눈까지 허락했다. 3월의 크리스마스라는 낭만 어린 말도 나왔다. 덕분에 절정을 맞은 매화, 산수유꽃, 동백꽃도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했다. 남도의 꽃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지난 16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채색으로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변신한 마을을 찾아간다. 조선시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으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신화가 살아 숨쉬는 마을이다.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수영강강술래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진도대교를 경계로 진도와 맞닿아 있는 전라남도 해남의 우수영이다.


우수영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버무려진 문화마을로 단장돼 있다. 임진왜란 7년을 종식시키는 결정타가 된 명량대첩의 일등공신인 전라우도의 수군진 문화와 전통문화예술, 공공미술이 결합해 문화예술마을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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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우수영 전경. 우수영은 조선시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으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신화가 살아 숨쉬는 마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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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마을로 변신한 해남 우수영 마을의 담장 벽화. 바다를 지키는 이순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공모한 소울프로젝트가 출발점이었다. 3년 전이었다. '소울(soul)'은 단어 뜻 그대로 정신, 혼을 가리킨다. 미소의 소(笑)와 울돌목의 울을 합친 말이기도 하다.

우수영 사람들은 소울프로젝트에 힘입어 명량대첩과 강강술래를 테마로 그림과 조각, 공예, 영상, 조형, 설치미술 등을 통해 지역의 과거와 현재·미래가 공존하는 마을로 만들었다. 예술인과 주민들이 힘을 모아 벽화마을로 꾸몄다.

마을 골목길을 삶의 길, 추억의 길, 끝이고 시작인 길 등 3가지 주제로 나눴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낮게 쌓은 지붕 밑 담벼락에는 명량의 역사와 함께 해온 이순신과 명량대첩, 강강술래, 농요 등 독특한 지역문화를 벽화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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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 갤러리 입구에 걸린 정재카페 표지판. 옛 뱃사람들의 쉼터였던 제일여관 건물을 개보수하면서 이 여관의 부엌을 카페로 단장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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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 갤러리에 들어선 정재카페. 옛 제일여관의 부엌(정재)을 고쳐 카페로 만들었다. 주민협의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 이돈삼


오래 된 건물은 갤러리와 카페, 생활사박물관으로 단장했다. 빈 점포는 전시관과 예술카페로 만들었다. 주민이 떠난 빈집은 지역특산물인 목화로 만든 베를 파는 면립상회로 바꿨다. 다른 점포는 강강술래를 체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갤러리로, 주민들의 사진과 영상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아카이브관으로 만들었다.


옛 우수영성의 동문과 남문에는 상징 조형물을 설치했다. 골골샅샅이 이야기 거리 가득한 문화공간이자 볼거리 푸짐한 미술관으로 꾸며졌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이 정재 카페다. 정재 카페는 생활사 갤러리에 들어선 카페다.

생활사 갤러리는 옛 뱃사람들의 쉼터였던 제일여관 건물을 고쳐 만들었다. 제일여관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지어졌고, 70년대까지 운영됐다. 이 여관의 조그마한 방을 6개 전시관으로 꾸미면서 부엌(정재)을 카페로 만들고, 정재 카페로 이름 붙였다.

정재 카페에는 옛 부뚜막이 재현돼 있다. 풍로, 소쿠리, 오래된 술병, 키, 체 등도 걸려 있다.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카페다. 작고 허름한 옛 부엌이지만, 옛 부엌살림이 그대로여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주민협의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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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 갤러리의 옛 초등학교 교실. 추억속에 아련한 오래된 책걸상과 난로, 도시락, 검정고무신, 풍금 등을 만날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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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 갤러리의 옛 초등학교 교실에 걸린 검정고무신 조형물. 추억속의 검정고무신으로 교실의 천장을 장식해 놓았다. ⓒ 이돈삼


생활사 갤러리에는 정재 카페만 있는 게 아니다. 이순신 장군의 다양한 기록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우수영 오일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과 주민들의 모습을 그린 작은 갤러리도 있다. 우수영 사람들과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흑백사진으로 보여주는 곳도 있다.

오래된 책걸상과 난로, 도시락, 검정고무신, 풍금 등을 볼 수 있는 추억속의 초등학교도 만난다. 벽에서 음악소리가 흐르고, 전통문화예술을 현대미술로 표현한 공간도 있다. 생활사 갤러리는 외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우수영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공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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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생가 터. 스님의 생가 터는 현재 해남군에 의해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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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 마을에 세워진 명량대첩비. 1688년 처음 세워졌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강제 철거돼 한양으로 옮겨진 것을 해방 후 주민들이 다시 찾아와 세워 놓았다. ⓒ 이돈삼


생활사 갤러리는 '무소유'로 익히 알려진 법정스님의 생가 터 앞에 있다. 법정스님은 1932년 10월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그 가치를 일깨워준 스님이다. 8년 전인 지난 2010년 3월 11일 입적했다. 스님의 생가 터는 현재 해남군에 의해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수영에 명량대첩비도 있다. 1688년(숙종 8년) 전라우수영의 동문 밖에 처음 세워졌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돼 한양으로 옮겨진 것을 해방 후 주민들이 다시 찾아와 세웠다. '우수영대첩비'로도 불린다. 이순신 장군을 배향하는 충무사도 나란히 있다. 마을 가운데에는 당시 조선수군들이 먹는 물로 썼다는 방죽샘이 있다. 우수영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망해루도 복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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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보해매실농원에서 만나는 매화. 보해매실농원은 단일 면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매화밭으로 알려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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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매실농원에서 활짝 핀 매화. 매화는 산수유꽃과 함께 새봄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꽃이다. ⓒ 이돈삼


우수영에서 멀지 않는 곳에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매화밭도 있다.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에 있는 보해매실농원이다. 우수영에서 목포 방면으로 구성삼거리에서 우회전, 산이면 소재지를 지나 오른편에서 만난다.

보해매실농원은 주류회사인 보해양조에서 매실 음료와 술을 만드는 원료로 쓰려고 40년 전인 1978년부터 부러 조성한 매실밭이다. 면적이 46만㎡(14만 평)로 단일 면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넓은 매화밭이다. 한 기업의 농원이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관광지가 된다.

매화도 절정을 맞았다. 농원도 많이 북적거리지 않아 차분히 매화를 감상할 수 있다. 꽃도 평탄한 황토밭에 피어 넓고 아늑해 보인다. 보리밭과 조화를 이룬 것도 멋스럽다. 가족이나 친구끼리, 연인끼리 봄소풍 가는 기분으로 찾으면 더 좋은 매화밭이다. 보해매실농원은 오는 4월 1일까지만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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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매실농원에서 만난 홍매화. 농원은 주류회사인 보해양조에서 매실음료와 술을 만드는 원료로 쓰려고 부러 조성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관광지가 된다. ⓒ 이돈삼


#우수영 #정재카페 #생활사갤러리 #소울 #보해매실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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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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