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일본 시간 그만 쓰고 싶어요" 청원 올린 사연

일본에 맞춘 한국의 표준시, 중학생들이 '잃어버린 시간 찾겠다'며 나섰습니다

등록 2018.03.23 10:31수정 2018.03.2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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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내용을 작성하는 아이들 ⓒ 김용만


"선생님! 우린 왜 일본 시간을 쓰는 거죠?"

사회시간이었습니다. 1단원, '내가 사는 세계'에서 위도와 경도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기억하실 겁니다. 한국은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9시간 빠릅니다. 15도가 1시간 차이기에 한국은 135도에 해당하는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설명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도는 동경 124~132도입니다. 세계 표준시를 기준으로 9시간 빠르지요."

"선생님! 지도를 보니 한국에는 135도가 없는데요?"

"오! 좋은 질문이에요. 그렇다면 135도에는 어떤 나라가 있나요?"

"음... 일본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은 현재 일본의 시간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게요. 왜 그렇죠?"

"우리의 시간대가 정해진 때가 바로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한국의 시간대를 일본과 같게 했습니다. 실제 한국의 경도는 127도쯤 되기에, 30분 빠른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지요."

"선생님. 그거 잘못된 거잖아요. 왜 우리가 일본 시간을 써야 하죠? 우리의 시간을 쓰면 안 되나요?"

"그러게요. 우리 시간대를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볼까요?"

"대통령님께 부탁해봐요!"

"맞아 맞아. 대통령님께 글 올리자!"

평범했던 수업시간은 이 한마디로 급작스럽게 변했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작성한 청원글, 등록하고 나서 '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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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원문 ⓒ 김용만


"우리가 쓰자. 모여 봐라."

2학년 3반 아이들이 모였고, 20분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쓰고 고쳤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하면 돼요? 좀 고쳐주세요."

"아니요. 선생님은 고쳐주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노력이니, 지켜만 볼게요."

저희끼리 오타니 아니니, 맞니 틀렸니 하면서 옥신각신하더군요. 잠시 후 글이 완성되었습니다.

"오, 좋아요. 이제 올려볼까?"

"선생님, 이거 우리가 올리면 대통령님이 보실까요?"

"20만 명이 서명하면 답변을 해주실 거예요. 한번 해봅시다."

수업 마친 후, 아이들과 교무실에 내려왔습니다. 아무래도 제 컴퓨터로 올리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긴장하며 글을 작성했고 글이 등록되자 아이들은 환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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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개요 ⓒ 김용만


"앗! 선생님!"

"왜! 왜?"

"제목을 잘못 썼어요. '대한믹국의 시간을 찾아주세요'라고 썼어요."

"대한믹국? 우짜노."

아무리 찾아봐도 '수정' 버튼을 못찾았습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지금도 대한민국 청와대 민원창에는 '대한믹국의 시간을 찾아주세요'라고 등록되어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대한믹국'이라는 단어로 검색해보면 다른 글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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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믹국의 시간을 찾아주세요.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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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청원 ⓒ 김용만


"선생님. 우리 마음을 더 표현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시간을 찾아주세요'라는 글을 써서 단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2018년 3월 22일 오후 8시 현재, 158명이 서명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서명란에 몇 분들은 감동적인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몇 개 소개드리면 이렇습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어른보다 낫네요. 동의합니다."

"너무 기특하고 어른으로서 부끄럽네요. 동의합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생각이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인데 누구 하나 나서서 바로 잡은 사람이 없었네요. 온 국민께 알릴게요."

"동의합니다. 그리고 참 장합니다."

배움을 실천한 아이들 "우리의 시간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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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간을 찾아주세요. ⓒ 김용만


아이들은 새로운 댓글이 달릴 때마다 신기해하고 좋아합니다.

"선생님. 이러다가 진짜 우리 시간을 찾는 거 아니에요? 만약 이래도 안 바뀌면 어떻게 해야 하죠?"

"여러분들은 충분히 할 일을 했어요. 이제 어른들의 몫이지요. 되면 좋고, 안 되도 여러분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중한 경험을 했어요.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과 수업시간 배움책(교과서)으로 만납니다. 공부라는 것을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공부를 하면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알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배움은 헛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시간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아이들이 직접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고, 우리는 올바른 미래를 원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어른들이 답할 차례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자랍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에도 올립니다. 아이들이 청원한 청와대 국민청원 링크를 첨부합니다. 동의하시는 분들의 많은 동참 바랍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71199?page=16
#청와대 #국민청원 #대한민국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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