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에 나온 '토지공개념', 이런 거라고 합니다

[주장] 개헌 이슈 통해 본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등록 2018.04.02 15:14수정 2018.04.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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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개헌' 자체는 지난 대선에 출마한 주요 후보들의 공통된 공약이었다.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여러가지 이슈들이 터져 나오면서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던 것이 정부가 강한 추진 의사를 수차례 밝히면서 결국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자결재를 통해 개헌안을 발의했다. 자연스레 개헌 논의를 재점화시킨 정부의 개헌안 내용에 대해 정치권과 대중의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이중 가장 주목받는 조항이 바로 '토지 공개념'에 대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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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발의 개헌안 3차 발표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3차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 연합뉴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도록 하는 토지 공개념의 내용을 명시한다"고 밝혔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에도 제23조 또는 122조에 토지 공개념의 내용을 반영한 조문들이 존재한다. 정부 개헌안의 입장은 이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헌법 체계 아래에서는 '택지 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 '토지 초과 이득세법' 등이 위헌 및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수 야당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거센 반발과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토지 공개념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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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Henry George), <진보와 빈곤> ⓒ 비봉출판사


토지 공개념은 헨리 조지(1839~1897)의 대표적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헨리 조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왜 사회는 점차 진보해 나가는데 빈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가?' 그는 답을 토지 제도에서 찾았다.

토지는 생산에 필요한 여타 자본과는 다르다. 인간의 손길 밖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며, 위치와 면적이 제한적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한 생산요소'인 토지가 소수에 의해 점유되는 현상이 심화될수록 사회적 빈부격차는 커지고 빈곤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토지를 다루어야 한다는 말인가. 헨리 조지는 토지 국유화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그가 토지가 앞서 언급한 고유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개개인의 고유한 사적 재산으로서 소유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주장한 것은 토지가치세의 부과였다.

토지가치세 주장에 담긴 의도는 그가 남긴 다음의 문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It is not necessary to confiscate land; it is only necessary to confiscate rent."

의역하면, 그는 땅(land)를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부터 나오는 이윤(rent)를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토지가 빈곤을 야기하는 주요 과정이 바로 토지를 독점하는 자들이 여타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지대추구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조지는 이를 착취와 같다고 보았고, 따라서 지대를 장기적으로 소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지 위의 건축물이나 생산 시설에 대해서는 특별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되 대신 토지에 강한 세율을 부과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도 '토지의 공공성'에 대한 강한 인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진보와 빈곤> 속 주장들이 '토지 공개념'이라는 말로 이름 붙여진 이유이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불평등 문제의 근원을 도려내려 했다는 점에서 헨리 조지는 많은 후계자들을 낳았다. 현대 경제학을 대표하는 폴 새뮤얼슨, 조셉 스티글리츠, 윌리엄 비크리 등이 토지 공개념을 지지하고 있으며 덴마크, 뉴질랜드 등에서는 이를 실제 부분적으로 제도화하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부동산 문제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많은 인적 자원과 정치적 지향점들을 공유하고 있기에, 정책에 있어서도 방법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두드러진다. 부동산 정책은 두 정권 모두가 역량을 총동원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양극화 해소'라는 한국 사회의 주된 이슈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 상황은 IMF 위기를 극복한 이래 2008년 당시를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이는 갈수록 커져가는 '불평등 담론'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국가는 잘 살게 되었을지 몰라도 국민들은 더욱 불평등해졌다.

토지 불평등이 여기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지난 26일 <한겨레> 칼럼에서 "부동산이 국부의 86%에 달하는 한국에서 토지는 2012년 기준 개인 상위 1%가 면적으로 보면 약 55% 상위 10%가 97.6%를 차지하고 있다"며 땅값의 상승으로 인한 이득이 극소수에게 돌아간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소득불평등에서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0년 이후 근로소득의 경우 상,하위 계층간의 차이가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비근로소득'에서의 차이가 커졌기 때문에 부의 집중도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토지 자유연구소에서 발간한 '부동산과 불평등 그리고 국토보유세' 보고서에 따르면 2007-2015년 기간에 부동산소득이 전체 경상 GDP에서 차지한 비중은 30%를 넘겼다고 하며, 과거 대비 지속적 상승 추세에 놓여 있다.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 위험성은 심화되는데, 부동산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져가는 모양새인 것이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현실 정치'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을 통해 뛰어난 사회경제학적 통찰력을 드러내었지만, 동시에 단순한 학자만으로 살아가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직접 자신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비주류 정당 소속으로서 여러 차례 뉴욕에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비록 당선한 적은 없었으나, 한 번도 이상의 실현을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죽는 순간 역시 뉴욕 시장 선거에 도전하던 와중이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모든 생을 바쳐 현실 정치에 투신했던 것은, 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집값과 토지 독점 문제가 처음 제기된 지는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를 참여정부에서 불평등 문제와 연결시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정치권의 반응은 물론이고 여론의 지지도, 법적 기반도 부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날,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부동산 가격은 또다시 고공행진하며 서민들의 삶과 미래 세대를 위협하고 있다. SBS와 국회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토지 공개념을 새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은 '61.8%'를 기록했다.

과거 80년대 후반 택지소유상한제 등이 실시되며 토지 개혁정책에 강한 드라이브가 걸렸을 당시 국민들의 토지 공개념에 대한 지지율은 약 84%였다(1989년 10월 21일 경제기획원, 갤럽 여론조사). 여론의 강한 지지가 있을 때, 이를 기회로 제대로 된 현실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진보와 빈곤

헨리 죠지 지음, 김윤상 옮김,
비봉출판사, 1997


#토지공개념 #정치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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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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