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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아이스를 만드는 사람들, 의정부 컬링 경기장에 있다

[인터뷰] 의정부 컬링 경기장 아이스 테크니션 권영일

18.03.23 15:44최종업데이트18.03.2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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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컬링 경기장 3월 29일 개관하는 국내 최대 컬링 경기장 ⓒ 이정선


[기사 수정 : 23일 오후 6시 27분]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컬링 열기를 이어갈 국제 규격 컬링 경기장이 29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 의정부시가 99억8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해 건립한 의정부 컬링 경기장은 녹양동 실내 빙상장 옆에 지하 1층, 지상 2층 전체 면적 2964㎡ 규모로 국제 규격의 6개의 레인과 243석의 관람석을 갖췄다.

22일 최적의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아이스 작업에 여념이 없는 권영일 헤드 아이스 테크니션을 만나 컬링과 얼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아이스 테크니션이란 직업이 생소한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컬링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게 1994년 무렵인데 1998년 숭실대학교 생활체육학과 재학 당시 교수님께서 컬링을 소개해주셔서 학교에 컬링팀이 생겼습니다.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고, 졸업 후 강원도청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국제대회 참가를 거듭하다 보니 선수의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얼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국내 경기에서는 잘 안 되던 샷이 캐나다 같은 컬링 선진국에서 경기를 하면 실력이 확 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컬링 아이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2008년에 캐나다 유학을 가서 3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 공부를 마치고 아이스 테크니션으로 자리 잡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2011년 귀국해서 한동안 경기도 컬링연맹 소속으로 중고생들도 지도하고,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수생활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와 선수 생활 겸직 금지 규정이 생기는 바람에 처음에는 코치를 포기하고 선수를 선택할 만큼 선수 생활 연장에 대한 의지가 강했는데 생활이 어려워지더라구요. 그즈음 사용하지 않는 동두천 김동성 빙상장을 컬링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싶은 개인 사업자께서 연락을 주셔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그곳에서 컬링 경기장 아이스 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 아주 어려운 과정이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성을 제외한 다른 지역 선수들은 3개 레인뿐인 태릉 연습장에서 훈련하는 상황이었는데 시설이 낙후되어있고, 빙질을 기대하기 어려웠죠. 일반 선수들도 힘들게 훈련했지만 휠체어 컬링팀은 연습조차 엄두도 못냈으니까요. 방치된 경기장을 컬링 경기장으로 바꿨지만 거기도 개인 사업자다 보니 썩 좋은 시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빙질은 선수들이 모두 인정할 정도로 최상이어서 대회도 많이 치렀고 의정부 6개 팀과 휠체어 컬링팀들이 연습을 하면서 눈에 띄게 실력향상이 되었습니다. 평창 올림픽에서 경북체육회팀과 최종전까지 겨뤘던 송현고등학교 컬링팀과 패럴림픽 컬링팀이 동두천 경기장에서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좋아지는 걸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이스 테크니션은 대부분 컬링 선수 출신, 여자 컬링팀 메달 소식에 기뻤다"

▲ 의정부 컬링 경기장 아이스 테크니션팀 강병우, 최민석, 권영일, 윤소민(왼쪽부터) ⓒ 이정선


- 평창 올림픽에도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컬링 경기를 위해 IOC에서 파견한 한스 우스리히 총괄 아이스 테크니션과 19명의 아이스 테크니션이 참여하였습니다. 의정부 컬링 경기장 4명의 아이스 테크니션(권영일, 강병우, 최민석, 윤소민)이 모두 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올림픽 경기장에는 많은 관중이 입장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실내 온도와 얼음의 온도가 달라져서 그런 변화에 영향받지 않도록 아이스 테크니션 전원이 초긴장 상태로 경기에 임했는데 순조롭게 대회가 치러졌을 뿐만 아니라 여자팀이 은메달까지 수상하게 되어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이스 테크니션들 대부분이 컬링 선수 출신이라 감정 이입돼서 더욱 기뻤던 것 같습니다."

- 컬링 경기장의 아이스,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빙판의 표면 온도는 영하 5도, 대기 온도는 영상 8~12도, 습도는 40~50%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이스는 0.1~0.2mm 두께로 50~60겹으로 얼음을 쌓아 3~5cm를 맞추게 되는데 이보다 두꺼워지면 열효율이 떨어지고 변수가 많이 발생합니다. 평창 올림픽 1년 전 테스트 이벤트에서 7cm까지 올라간 적이 있는데 수평도 3도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처음 콘크리트 작업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거죠. 1년 동안 다시 작업하면서 올림픽 직전까지 맞추는 작업을 해서 올림픽에서 최상의 빙질을 만들게 된 겁니다."

- 아이스 메이킹 작업은 아주 민감하고 섬세하다고 들었는데...
"처음부터 기포나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게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물을 만들어서 작업합니다. 일반적인 물에 함유된 미네랄, 칼슘조차 허락되지 않는 순도 0 상태인 증류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물을 만드는 정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기 온도, 물의 온도, 습도, 바람 등 외부 환경에 따라 얼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이스 테크니션의 경험으로 수많은 변수를 통제하고 최소화해야 최상의 아이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준비과정이 작업의 절반이라고 할 만큼 철저한 준비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 아이스 테크니션이라는 직업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직업적이라기보다 여건 때문에 발생하는 고충이 있죠. 6레인의 경기장을 관리하는 아이스 테크니션이 캐나다 같은 경우 8~10명이 관리하는데 우리는 4명이다 보니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합니다. 동두천 경기장에서는 2명이 일했기 때문에 올해 다섯 살 된 둘째 아들이 자랄 때는 거의 자는 것만 봤던 것 같아요. 올림픽이라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평창에서는 5일 동안 밤샘 작업을 했어요.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이스의 상황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핵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상의 아이스는 선수들 기량 향상의 일등공신"

▲ 의정부 컬링 경기장 내부 6개의 레인과 243석의 관람석을 갖춘 국제 규격 경기장 ⓒ 이정선


- 컬링과 아이스 메이킹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어린 선수들을 가르칠 때나 기업 강습을 할 때가 있는데 직접 해보면 다들 너무 재미있고, 좋아합니다. 한번 해보면 관람하는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컬링에 푹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녀노소 체력적인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작전을 세우고 실행해야 하는 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성 향상에도 좋습니다. 정적이면서 동적인 스포츠라는 면에서는 골프와 비슷하고 멘탈 스포츠라는 면에서는 야구와 비슷한 것도 같아요. 그리고 최상의 아이스는 선수들 기량 향상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에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더 큰 보람과 기쁨이 없습니다."

- 현역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도 있으실 것 같은데.
"네. 이제는 컬링 아이스에 대해서 잘 알고 체력적으로도 자신 있고, 컬링 선수로서는 전성기로 보는 나이(35~45세)이기도 해서 기회가 주어지면 선수생활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래도 의정부 컬링 경기장이 이제 막 시작하는 상황이니까 더 많은 분들이 컬링을 접할 수 있게 도와드리고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노력하고 싶습니다."

- 컬링과 아이스 테크니션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컬링은 정말 재미있는 스포츠니까 보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직접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팀이 많아져야 더 발전할 수 있으니까 동호인팀이나 실업팀도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어느 종목이나 그렇지만 컬링도 라이벌이 있어야 자극받고 실력이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의정부 6개 팀이 우리 경기장을 통해서 더욱 성장하길 바랍니다.

컬링 아이스 테크니션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컬링을 많이 좋아해야죠. 성격이 꼼꼼하고 준비성이 철저하면 잘할 수 있을 겁니다. 기다리는 일이 많으니까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컬링을 사랑하는 지도자, 관계자들이 마음을 열고 더 많은 분들이 컬링을 즐길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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