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타워크레인 설치 안전합니까?

[주장] 초등학교 앞 연구소 공사 현장 화재 다음날 타워크레인 설치 '위험천만'

등록 2018.03.26 14:03수정 2018.03.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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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주민들은 연기를 고스란히 마셔야했다. 바로 앞 초등학교 학생들의 안전은 누가 지켜줄까? ⓒ 최병성


깊은 밤, 매캐한 냄새에 눈을 떴다. 창을 여니 마을 바로 곁 공사장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밤새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3월 19일 새벽 3시, 소방차들이 연신 물을 쏟아 붓고서야 2시간여 만에 불길이 잡혔다. 시커먼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갑작스런 화재에 놀라 잠이 깨서 달려 나온 주민들의 목이 아파왔다. 

화재가 발생한 현장은 경기도 용인시 지곡초등학교 앞산이다. 학생들이 생태학습장으로 오르내리던 숲을 깎아내고 A사가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소를 건축 중이다. 문제는 학교와 연구소 건축물이 너무 가깝다는 것과, 이 연구소에서 인체 유독한 화학물질을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아름답던 초등학교 바로 앞산을 깎고 유독물질을 취급하는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소가 건축 중이다. 초등학교 앞산에 유독물 취급 시설이 들어와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일까? ⓒ 최병성


최근 자동차 워셔액이 시신경 장애를 유발하는 메틸알콜로 만들어져 논란이 되자 환경부는 올해부터 메틸알콜 워셔액 생산을 전면 금지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메틸알콜로 인해 시력을 잃은 근로자들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그런데 초등학교 바로 앞에 지어지는 이 연구소는 시신경 장애를 일으키고 휘발성있고 폭발성 강한 유독물인 메틸알콜과 시클로헥산과 아크릴산 등을 사용한다.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미드와 아크릴로니트릴 등도 사용한다. A사가 환경부에 보고한 화학물질이동배출량 정보와 A사의 특허 내역을 통해 유독성 화학물질 사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메틸알콜, 시클로헥산 등의 유독물질을 사용한다고 국립환경과학원이 공개한 A사의 화학물질배출이동량 정보 ⓒ 최병성


A사는 공장이 아니라 연구소이기에 화재에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연구소 화재 발생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연구소 화재' 단어 검색만으로 수없이 발생하는 국내외 연구소 화재를 쉽게 알 수 있다. 최근에도 지난 3월 14일 안성시 나노캠텍 연구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 28대를 투입해 진화했으며, 지난 3월 18일 말레이지아 최대 공립병원인 쿠알라룸푸르병원 화재도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다.

문제는 초등학교가 인접해있는 주거 밀집지역에 유독물질을 다루는 시설이 어떻게 허가났느냐는 사실이다. 만약 연구소가 완공된 후 화재가 발생하여 유독 가스가 노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린 아이들과 주민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질까?


주민들이 알아서 대피하라고?

불이 시뻘겋게 훨훨 타오르고 많은 소방차들이 현장에 들어와 화재를 진압 중인데,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119에 전화했다.  

- 소방차가 현장에 출동했는데, 왜 사이렌을 울리지 않고 살며시 들어왔나요?
"아파트 주거지역엔 사이렌 소리를 주민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 이 새벽에 다 잠들어 있는데, 주민들이 화재 사실을 모르고 유독 연기에 노출되는 위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최소한 주민들이 위험을 알아야 대피할 것 아닙니까?
"그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하면 됩니다"

불을 끄면서 주민 안전 대책은 아파트에서 알아서 하라는 소방당국의 대답에 할 말이 없었다. 깊은 밤 화재 사실을 모르는 주민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 위험에 노출된 '각자도생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안전불감증 공사현장

비가 온 덕에 산불로는 이어지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바로 다음 날, 비가 폭설로 바뀌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화재가 발생했던 바로 그 공사 현장에 거센 바람과 폭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타워크레인을 설치하고 있었다.

강풍과 폭설 속에 타워크레인 설치를 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까? ⓒ 최병성


이날 강설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폭설이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타워크레인 설치를 위해 크레인 꼭대기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폭설로 미끄러운 크레인을 오가며 목숨 건 묘기대행진이었다.

강풍과 폭설 속에 타워크레인 설치를 강행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까? 사고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벗어나려면 최소한의 안전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 최병성


이들도 한 가정의 아버지일 텐데,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까? 쥐꼬리 보상금만 던져주면 다 될 일일까? 안전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요즘 타워크레인의 붕괴 사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고, 안전불감증 공사가 강행됨에도 용인시를 비롯 관계기관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

폭설 속 공사 강행 현장을 보며 서정일 써니밸리아파트 입주자대표는 "최근 수원시에서는 모 공사현장 화재로 인한 안전진단을 위해 공사 중단을 시켰는데, 용인시는 화재가 발생한 당일부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공사가 강행된다"며 A사를 향한 용인시의 배려가 눈물겹다고 탄식했다.

폭설 속에 목숨건 타워크레인 설치 공사. 묘기대행진이 아닐진데 이렇께까지 해야할까? ⓒ 최병성


더 이상 어린 아이들에게 죄를 짓지말자

이 공사 현장은 수차례 원형녹지 불법 벌목으로 용인시로부터 3번이나 고발되기도 했다. 이 연구소는 콘크리트혼화제연구소로 다량의 폐수가 발생함은 기본 상식이다. 그러나 A사는 폐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인허가를 받았고, 2016년 4월 1일, 폐수 발생을 속이고 인허가를 받은 사실로 인해 용인시가 건축허가를 취소했다.

그런데 2016년 7월 13일,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A사의 서류를 보니 1일 40리터의 폐수만 발생한다며, 용인시의 건축허가 취소를 다시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고, 주민들은 경기도 행정심판위원 결정에 대해 수원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며 곧 판결을 앞두고 있다.

A사는 폐수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인허가를 받았는데, A사의 설계도에는 13톤 체적의 수중양생조와 23.25톤 용량의 폐수처리장이 설계되어 있다. 지난 2월 27일, 법원을 통해 진행한 A사의 설계도에 대한 폐수 발생시설 감정 결과 역시, 물환경보전법상 폐수처리시설에 해당된다고 결론내렸다. A사는 폐수발생시설을 감춰 물환경보전법과 건축법을 위반하여 불법으로 인허가를 받은 것이다.

13톤 체적의 수중양생조와 23.25톤의 폐수처리장을 설계된 폐수처리시설이 맞다고는 법원의 설계도 감정 결과. ⓒ 설계 감정서


불법을 반복하고 안전을 무시하는 공사 현장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학생들과 주민들은 염려하고 있다. 산새들의 노랫소리 들려오던 교실에 오늘도 공사소음과 공사 차량 매연만 가득하다.

지난 2015년 7월 22일 지곡초등학교 공사 현장을 방문한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하루빨리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는 대책이 강구되길 촉구한다.

'학교 주변 생태 파괴는 교육현장을 파괴하는 일로 교육적 입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막아야 한다. 학교 앞 숲을 훼손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학교 앞 숲을 파괴하며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잘못이 멈추게 되도록 용인시와 환경부, 교육부 등 관계기관의 각성을 촉구한다. ⓒ 최병성


#용인시 #콘크리트 혼화제 #환경부 #유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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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생명과 평화가 지켜지길 사모하는 한 사람입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길 소망해봅니다. 제 기사를 읽는 모든 님들께 하늘의 평화가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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