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꽃은 얼마든지 꺾어도 좋다"는 생태공원이 있다

[고양생태공원 생태보고서] 봄의 전령사 복수초, 민들레, 개망초

등록 2018.03.30 14:24수정 2018.03.3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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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 ⓒ 고양생태공원


드디어 복수초가 피었습니다. 샛노란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 가슴이 설렜습니다. 드디어 봄이구나. 누가 뭐래도 고양생태공원의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사는 복수초입니다. 그래서 복수초가 피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복수초가 피면 다른 야생화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하나둘씩 피어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은 추위가 무척이나 매서웠습니다. 그 여파로 다른 해에 비해 꽁꽁 얼었던 땅이 풀리는 게 늦었습니다. 덕분에 고양생태공원의 봄은 그 어느 해보다 늦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2월 중순을 넘기면서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복수초가 피는 곳을 기웃거렸습니다. 


복수초는 눈을 크게 뜨고 찾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꽃이 작고 땅바닥에 거의 붙다시피 피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얄궂은 것은 어떤 꽃이든 작정을 하고 찾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네요.

복수초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더니, 우리가 뱀밭이라고 부르는 구역 한쪽에서 수줍은 듯 솟아오른 복수초가 보였던 것입니다. 복수초는 마른 낙엽들로 덮인 땅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확 풀렸습니다. 봄이다!

복수초가 피려고 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 고양생태공원


며칠 지난 뒤,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가니 그 사이에 노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말간 노란색 꽃들이 배시시 웃으면서 반겨줍니다. 자료로 남기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처음 복수초를 알게 됐을 때는 꽃 이름이 무겁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저렇게 여리고 예쁜 꽃에 하필이면 복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꽃 이름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기에 복수초가 되었을까? 생각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더니 그 말이 맞습니다.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폈던 기억이 납니다.

복수초라는 이름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여린 노란 꽃잎은 그런 상상과 도무지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피맺힌 복수심이라면 새빨간 꽃이 돼야 하는 거 아냐?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가?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꽃말 역시 곰곰이 곱씹어봐야 합니다. 상상은 여기까지. 확인 작업에 들어갑니다. 복수초의 이름에 깃든 이야기가 무엇인지.

복수초 ⓒ 고양생태공원


복수초 ⓒ 고양생태공원


복수초 ⓒ 고양생태공원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2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꽃이 피는데 숲 바닥에 피는 특징이 있습니다.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낙엽을 이불 삼아서 싹을 틔우는 복수초를 만나려면 봄 숲길을 조심조심 걸어야 합니다.

작은 꽃을 들여다보려면 자세를 한없이 낮춰야하기 때문에 야생화를 사랑하게 되면 겸손해 진다는 말이 생겼나봅니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 복수초(福壽草)는 복과 장수를 의미하며,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른 봄에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핀다고 해서 얼음새꽃, 눈새기꽃이라고도 부릅니다. 순수한 우리말 이름입니다. 봄이 채 오기 전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라 원일초(元日草)라고 불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이름을 갖고 피맺힌 복수를 생각했으니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습니다.

노란 복수초가 피었으니, 우리 공원에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3월이 완전히 가기 전에 매년 그랬던 것처럼 한두 차례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찾아오겠지만, 이미 온 봄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복수초를 시작으로 민들레와 애기똥풀, 양지꽃, 개나리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꽃을 피울 것입니다.

민들레와 제비꽃 ⓒ 고양생태공원


봄을 상징하는 색깔이 무엇일까요? 진달래 때문에 분홍색을 가장 먼저 생각하지만, 복수초를 보면 노란색인 것 같습니다. 새 생명을 상징하고 따스한 희망을 품게 하는 색은 아무래도 노란색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일주일쯤 지나면 우리 공원 여기저기에서 노란 민들레가 피어날 것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지들이 알아서 바람타고 번식하는 민들레는 우리 공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이자 꽃입니다. 산이나 들에 가면 널려 있어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풀이기도 합니다.

그런 노란 민들레를 많은 사람들이 우리 토종식물로 아는데,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보는 민들레는 대부분 귀화식물인 서양민들레입니다. 예전에는 흔하던 우리 토종 민들레가 이제는 귀하신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 공원에서 하얀 꽃이 예쁘게 핀 토종민들레를 볼 때가 있습니다. 야생화 군락지를 둘러보다가 어쩌다 찾아내지만, 그런 경우는 한두 번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귀하신 몸입니다. 민들레가 자생력이 강하다는데 그건 서양민들레일 뿐 토종민들레는 아닙니다.

토종민들레 ⓒ 고양생태공원


토종민들레 ⓒ 고양생태공원


종종 서양민들레가 아닌 토종민들레가 더 많이 번식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원에 토종민들레 군락지를 조성하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민에 빠집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안타까워 사람의 손길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양생태공원을 처음 조성할 때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인공의 손길을 최대한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사라지는 것들이 안타까워 일부러 개체수를 늘리다보면 생태공원이 갖는 의미가 퇴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면서 귀화식물들이 무서운 번식력을 보이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토종식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귀화식물이 차지하는데 손놓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귀화식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망초인데, 특히 개망초입니다. 황폐해진 땅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고 서식지를 넓혀가는 식물입니다. 하도 흔해서 우리나라 토종식물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거의 토착화된 식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개망초 꽃은 계란프라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계란꽃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개망초가 군락을 이뤄 꽃을 피우면 장관입니다.

우리 공원에도 망초와 개망초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자생력이 강해 어지간해서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번식합니다. 그랬으니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공원에서는 망초를 솎아내지 않고 그냥 놔둡니다. 망초에게 끈질긴 생명력을 배우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망초 군락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생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국화하늘소 ⓒ 고양생태공원


특히 곤충들입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은 서로 기댈 언덕이 되어주며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입니다. 사람들만이 그들을 유해하다, 무해하다고 나누고 분류하는 것이지 생물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망초군락지는 곤충들에게 좋은 서식환경을 제공합니다. 대표적인 게 국화하늘소인데 망초 꽃대를 꺾고 알을 낳기 때문에 가끔 고개 숙인 망초를 살펴보면 그 주인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망초군락지에 곤충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새들이 모여듭니다. 먹잇감이 풍부한 곳을 찾아 모여드는 건 사람이나 생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우리 공원으로 찾아드는 새들이 늘어나는 것은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망초를 솎아내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생태교육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탐방객 교육을 할 때 개망초 꽃을 꺾고 싶은 만큼 꺾어오라고 합니다. 아무리 꺾어도 아깝지 않고 아무리 꺾어도 줄지 않는 꽃이 개망초 꽃입니다. 얼마든지 꺾어도 좋습니다.

개망초꽃 ⓒ 고양생태공원


개망초 꽃으로 화관을 만들면 아주 예쁩니다. 꽃다발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송이가 작은 꽃은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꽃다발이 됩니다. 그러면 일부러 망초를 솎아내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제초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 공원에서는 야생화를 포함해 그 어떤 꽃도 꺾지 못하게 하는데, 망초 꽃만 예외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망초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합니다. 귀화식물이라고 눈을 흘기더니, 생태교육용이라면서 귀하신 몸 취급을 하니 말입니다.

복수초가 피었으니, 우리 공원에서 봄꽃들이 차례로 피어날 것입니다.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봄꽃들이. 공원 곳곳에서 겨울 동안 숨죽인 채 생명을 품고 잠들어 있던 꽃들이 하나씩 둘씩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립니다. 봄이 온 게 확실합니다. 봄맞이 하러 놀러오세요.
#고양생태공원 #복수초 #토종 #민들레 #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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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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