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개 발언' 원조는 박정희였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정치 잡식] 미친개 논평의 역사

등록 2018.03.26 16:09수정 2018.03.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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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 사진은 지난 2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현안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입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의 '미친개 논평'이 낳은 후폭풍이 크다. 지난 22일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김기현 울산시장(한국당 소속) 측근에 대한 경찰의 수사 행태를 비판하면서 위와 같은 논평을 냈다.

경찰은 지난 16일 울산시청 공무원이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특정 레미콘 업체 선정을 강요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울산시청 시장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또한 경찰은 또 다른 아파트 건설현장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김 시장 동생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기도 했다. 울산시청 압수수색이 이뤄진 날은 김 시장이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로 단수 공천이 확정된 날이기도 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의 '미친개 논평'이 나온 뒤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과 원칙에 따른 지극히 정상적인 울산 경찰의 수사에 대해 과도한 정치적 논란이 일고 있어 몹시 안타깝다"라면서 자유한국당의 '정치 경찰론'에 반박했다. 동시에 경찰들은 경찰 커뮤니티 '폴네시앙'을 중심으로 1인시위 등을 전개하며 한국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당은 공식적인 사과를 검토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한국당은 "(논평에 대한 비판은) 어처구니가 없다"(23일 홍준표 대표 페이스북), "전체 경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일부 정치 경찰에 대한 이야기다"(김성태 원내대표 26일 긴급기자회견)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된 키워드는 '미친개'과 '몽둥이'다. '정신 이상'과 '매질'을 상징하는 이 표현의 역사를 한번 알아보자.

장제원 말에 가장 가까운 건 북한 속담... 루쉰도 비슷한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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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을 정권의 사냥개로 비유하고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한 장제원(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 현직 경찰관들이 무학대사의 경구를 빌어 비판에 나섰다. ⓒ 충북인뉴스


'미친개'에 관련한 속담은 매우 많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관련 속담만 16개다. 대표적인 속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미친개 눈엔 몽둥이만 보인다' : 미친개는 사방에서 몰아대며 몽둥이로 쳐서 다스리기 때문에 그 눈에는 몽둥이만이 무섭게 어른거린다는 뜻으로, 어떤 것에 몹시 혼이 난 뒤에 그와 비슷한 것을 보기만 하여도 겁을 먹고 무서워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 : [북한 속담] 미친개가 날뛰는 것을 막으려면 사방에서 몰고 들어가서 몽둥이찜질을 하는 것이 가장 알맞은 처방이라는 뜻으로, 미쳐 날뛰는 자에게는 된매를 안겨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깨비는 몽둥이로 조겨야 한다.

속담 '미친개 눈엔 몽둥이만 보인다'는 장제원 수석대변인에 항의하는 경찰들이 내건 무학대사의 경구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돼지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부처로 보인다)과 흡사하다.

북한 속담인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한 말과 궤를 함께한다.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루쉰(鲁迅)은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1928)에서 '물에 빠진 미친개는 몽둥이로 쳐야 한다'(산문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중)고 말했다. 이유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물에 빠진 미친개를 구해줘봐야 그 개는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구해준 사람을 물어죽일 수 있다, 땅에 있건 물 속에 있건 모조리 때려야 할 부류에 속한다'는 것(지금 동물권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섬뜩한 말임은 분명하다).

박정희의 말 "미친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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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중흥관 기획전시실의 포토월. 전국에서 모인 응모사진으로 제작된 박정희 대통령 상반신을 이미지화한 포토월. ⓒ 장호철


20세기 들어 '미친개'와 '몽둥이'를 정치 전선에 등장시킨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1976년 8월 18일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북측 군인 30여 명이 미루나무 제거 작업을 하던 한국과 미국 군인을 도끼로 공격(미군 2명 사망)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한 직후 '미친개'와 '몽둥이'가 박정희 전 대통령 입에서 나왔다.

1976년 8월 20일 제3사관학교 13기 졸업식에서 서종철 당시 국방장관이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우리가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언제나 일방적으로 도발을 당하고만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을 일으킨 북한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서 '미친개' '몽둥이'가 등장한 것.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말을 박 전 대통령의 어록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확하게는 아니다.

그러다가 1994년, 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당시 서울시 성동구청 보건행정과장으로 근무하던 김만식씨가 자신의 21년 공직생활 체험기를 엮어낸 에세이집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최고야>가 바로 그것. 김만식씨는 이 책을 통해 공직사회의 부정부재와 복지부동을 고발·비판한 바 있다.

1998년에도 이 표현이 논란이 됐다. 그해 현대자동차노조는 비상대책위 속보지에서 '미친개는 몽둥이가 최고'라는 표현을 싣기도 했고, 같은해 지방선거 당시 자민련 소속 이의익 대구시장 후보와 문희갑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사이의 비방전에서도 이 말이 나왔다. 당시 이의익 후보는 "문희갑 후보가 시장재직 3년 동안 대구 경제를 파탄시켜놓고 정책대결 선거 운운하며 가식과 위선에 가득찬 말장난을 일삼는 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문희갑 후보는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맞대응했다.

그뒤로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말은 상대에 대한 비난·비하의 관용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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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미친개'는 바이러스 등 질병이 있거나 행동학적으로 이상 징후를 보이는 개를 말한다. 이 개들에게 필요한 건 몽둥이가 아니라 치료와 교정이다. 수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정치적 수사라 해도 이것이 대중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에 굳이 부연한다. ⓒ unsplash


[사족①] '미친 개'가 아니라 '미친개' : 미치는 병에 걸린 개를 뜻하는 명사. 합성어로 보아 붙여쓴다.

[사족②] 미친개에는 정말 몽둥이가 약일까 : 아니다. 26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한 수의사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장제원 의원의 말을 수의학적으로 접근하는 건 말이 안된다"라면서도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 있다면 치료를, 행동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교정을 하는 게 맞다"라고 평가했다. 동물 '미친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그에 따른 대응도 각기 다르다는 말이다. "무조건 몽둥이"라는 단적인 표현은 합당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장제원 #미친개 #몽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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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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