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초간 침묵한 오바마, 이 연설이 불러온 나비효과

[서평] 말의 향기를 북돋을 수 있는 책 <언어의 품격>

등록 2018.03.28 16:37수정 2018.03.2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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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지하철, 버스, 길거리에서 이어폰에 묻혀 있던 귀를 잠깐만 열어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저기서 흩어지는 이야기 중 하나를 골라서 몇 초간 듣다보면, 우리는 고개를 들어 발화자의 전체적인 모습과 상상했던 모습을 비교해본다. 그러다가 잠시 생각에 빠지곤 한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그리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진다."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은 그의 '품성'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고성방가와 이곳저곳에 찔러 넣는 거친 말과 욕설을 내뱉는 사람. "다른 사람에겐 비밀인데..."라는 서두를 붙이며 비밀을 모두가 아는 소문으로 만들어내는, 이른바 '빅마우스(big mouth)'들은 '부정적인 품성'으로 연결된다.

반면, 부드러운 화법과 담담한 말투, 담백한 단어들은 발화자의 좋은 품성으로 연결된다. 작가 이기주는 <말의 품격>에서 경청, 공감, 반응, 뒷말, 인향, 소음 등 24가지의 키워드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내뱉고 지나칠 수 있는 '말'에 대한 고민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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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이기주 지음. 황소북스 ⓒ 황소북스


<말의 품격>이 제시하는 윤리관은 꽤 딱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 이기주의 방식은 부드럽다. 각지고 빡빡하지 않고 오히려 둥글고 느슨하다. 꽤 많은 고민이 묻어있는 그의 문장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그의 책과 여행을 떠나도 될 것처럼 홀가분하다. 나는 그래서, 매일 아침을 여는 지하철 안에서 그의 책과 함께 '잠깐의 여행'을 떠나곤 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책의 서문에서 던져주는 한 마디는 잔잔한 파도와 같다. 결국,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사람들에게 뱉었던 말들을 곰곰이 되씹어 보게 되었다. 무심코 했던 말에 상처받은 이들도 있었겠지만, 결국에는 그 말들이 귀를 맴돌며 오히려 나를 채찍질 할 때가 많았다.


"온당한 말 한마디가 천냥 빛만 갚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나아가 조직의, 공동체의 명운을 바꿔놓기도 한다."


조직의, 공동체의, 사람의 명운이 '한마디 말'에 달려있다는 말은 약간의 비약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그렇다. 관계의 성립은 '한마디 말'에서부터 시작한다. 쓸데없는 한 마디로 무너지기도 하고. 진퇴양난의 우리들에게, 책은 네 가지의 '사자성어'를 통해서 고민을 해결해주려 한다.

① 이청득심(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말의 총량이 듣는 총량보다 적으면 다들 불안해한다. 말을 많이 해야 타인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에 허우적거린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감정이 마음속에 흐르는 공감이라고 한다면, 나의 딱한 처지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연민이 마음 한구석에 고이면 동정이라는 웅덩이가 된다. 웅덩이는 흐르지 않고 정체되어 있으며 깊지 않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행위 자체는 구성원으로서의 효능감을 높여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듯 내용이 방대해지거나 시간이 길어지면 '핵심'은 온데간데없고 발화자 혼자만 남게 된다. 더불어, 타인을 '공감'하지 못하고 '연민'하는 감정에 그치게 되면 대화는 금세 한계 지점에 봉착하게 되고 서로에게 별 소득이 없는 관계로 마무리 된다.

그래서, 책에서는 '공감 무공감 사유 무사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틈틈이 내면의 민낯을 관찰하라'고 제시한다. 책에서는 개인의 내면적 고찰이 강조되어 있지만, 구체적 행동 또한 필요하다.

'타인'의 삶과 생활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공감'이라는 행동을 열 수 있는 단초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밖에서 굳게 닫힌 문은, 오히려 안에서 쉽게 열린다. 듣기 위해선, 본인부터 귀를 열어야 한다.

② 과언무환(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책에서도 언급되는데, 2011년 1월 12일 미국 애리조나 총기사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하는 도중 갑작스럽게 51초간 침묵했다. 잠깐 동안 놀란 대중은 이내 슬픔, 고통, 연민, 책임감 등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결국 이례적인 연설은 전국적인 추모 물결을 일으켰다. 비언어적 대화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상에서도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갈등' 도중에 상대방의 침묵이 주는 초조함과 불안함은 누구든지 많이 겪었을 것이다. 더불어, 대부분 짧은 한두 마디가 사람을 움직이거나, 타인을 움직이지 않던가?

그래서 책에서는, 생각과 느낌을 말 속에 짜임새 있게 담아 전달할 수만 있다면 굳이 말의 분량과 길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충고를 한다. 요즘은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마음이 급할수록, 돌아가라.

③ 언위심성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단순히 청각적 정보에 집중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정보를 적극 수용하며 상대를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상대의 말과 행동을 비교 또는 대조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구사하는 말과 행동은 하나로 포개져야 한다."


매일같이 듣는 이야기겠지만, 언행일치를 이야기 하는 대목이다. 말이 많아진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행동'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말이 보여주는 '품성'에 대한 이야기만 언급했지만, 결국에는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말과 글과 행동을 모두 보아야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④ 대언담담(큰 말은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던진 질문들을 확장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서, 미지의 탐험을 각오해야하듯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힘 있는 말을 선별해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내 '품성'도 중요하지만, 혼자만의 '우주'를 넘어서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 동네 어귀 한 귀퉁이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질문이라는 까치발을 들어보면 어떨까."


더불어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봄기운이 바람에 실려 온다 싶으면 컴컴한 곳에 눌러 앉아 있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삶의 바깥 쪽에서 서성이지 말고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가야 한다. 볕이 드는 곳으로, 삶의 온기가 있는 곳으로...'


책에서 제일 잊히지 않는 구절은 아래에 나오는 글귀다.

심제량 : 백성을 한데 모이게 하려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합니까?
공자 :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 공자와 초나라의 섭공 심제량 과의 대화 중에서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혀를 칼처럼 부리지 말고, 위의 네 가지 덕목으로 타인에게 '향기'를 자아내는 '말' 한 마디를 건네준다면 어떨까. 당신 주변에 멀리 있는 사람들도 모여들 것이다.

말의 품격 (양장)

이기주 지음,
황소북스, 2017


#말 #품격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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