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루게릭 환자를 기록하다

등록 2018.03.28 15:52수정 2018.03.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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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환자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대부분 '세기의 위인' 스티븐 호킹이 아닐까? 호흡기와 컴퓨터에 의지한 그는, 약해지는 몸을 정신으로 이겨내며 엄청나게 많은 연구들을 쏟아냈다. 그의 천재성은 '루게릭병'을 이겨내기에 충분했다.


*루게릭병: 중증근무력증 이라고도 합니다. 점점 사지에 힘이 빠지고, 근력 약화 및 근위축이 동반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지의 근력 약화와 근위축, 사지마비, 언어장애, 호흡기능 저하로 말미암아 수년 내에 사망하는 만성 퇴행성 질환입니다. 현재 완치가능한 치료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루게릭 환자라고 하면 박재우(48)씨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와의 첫 만남은 한창 추위가 덮칠 1월 무렵이었다. 의과대학 실습을 돌 때 한번 볼까 말까 한 루게릭 환우를 병원이 아닌, 몇평 남짓한 공간에서 마주했다.

그의 모습은 아슬아슬하고 충격적이었다. 기본적으로 먹고, 움직이고, 말하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모든 것들은 그에게 오히려 피로감을 일으키는 행위였다. 변변한 방석조차도 없는 그는 몇 달 동안 적십자에서 보내준 구호물품인 '쌀가마니' 하나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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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감싸고 있는 박재우씨의 어머니 ⓒ 김민수


남들이 보기에 별로 특별하지도 않을 것 같은 조선족 루게릭 환자를, 인터뷰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는,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집안에서 서서히 쓰러져가고 있다. 과연, 한순간에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발견된 것일까?

인터뷰로 그와 그의 가족이 한국에서 살아남았던 역경들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조선족 이주노동자'의 슬픈 현실.  불행하게도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루게릭병'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한다. 


*박재우씨는 지금 연하곤란(삼킴 곤란)과 발음장애로 말을 빨리 하지 못합니다. 인터뷰 내내 어머님을 통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재확인 하고 본인에게 다시금 물어보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재우 형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재우: "기분은 좋아. 그런데, 내가 엄마랑 알아봤는데 이게 못 고치는 병이라며. 그래서 좀 짜증이 나. 약을 바꿨는데, 지금은 중국 약 먹을 때 보다 힘이 더 떨어지는 것 같아." 

*최근까지 중국에서 조카가 보내준 '정체불명의 약'이 그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올해 3월에 '예정된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정식 약제 '리루텍'을 복용중이다.


-네, 그때 의사선생님이 이야기 하셨다시피, 조금 느낌이 다를 수는 있어요. 그래도 이게(이 약이) 제일 정확한 거니까 조금만 참아봅시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오늘.
재우 어머니: "자네가 와서 기분이 참 좋긴 해. 의대생들이 이렇게 자주 방문해 주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저번주에는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영양제를 사라고 해서 재우 누나가 종합 영양식을 사다줬어. 다행히 얼마 안 했나봐."
*루게릭 환자는 영양 보충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액체로 된 완전 영양식을 경구 투여하기도 한다.

- 밥 먹기 엄청 힘든데, 이제는 기운도 나고 잘 됐네요. 어머니.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시게 된 계기를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재우 어머니: "야 누나가 부모 초청을 해서 들어왔지. 몇 년 전에는 재우아버지도 있고 해서 들어왔다 나갔다 하기도 했어."
*조선족 이민자는 친척 또는 직계가족의 추천 하에 국내로 들어올 수 있다. 5년마다 갱신해야한다.

재우: "나는 2003년 겨울부터 한국을 왔다갔다 했어. 누나가 그때 추천해줘서 회사도 다녀보고, 노가다도 하고, 양어장도 하고, 제주도에서 감귤농사도 했지."
재우 어머니: "원래 농사하던 애니까..."

-그러면 한국에는 돈벌러 들어오신 거예요?
재우어머니: "그런 셈이지. 중국에서는 사실 살기는 어렵진 않아.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근데 좀 더 낫게 살고 싶기도 했고. 재우도 농사일만 하기보다는 한국에서 돈을 좀 벌어 와서 여유있게 살려고 이짝저짝으로 뛰어 댕긴거지."
*박재우씨의 가족은 길림성 유하현의 농업지대에서 살고 있었다. 많은 이민자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으로 입국하여 억척스러운 일들을 해낸다.

-어떻게, 돈은 좀 버셨나요?
재우어머니: "보다시피 남는 게 없어. 차비밖에. 오리농장이랑 닭 농장에서 일해봤는데, 일하면 조선족이라고 임금을 반틈도 채 안 줘. 왔다갔다 밖에 더하나."
재우: "나도 돈을 떼이기도 했지. 근데 말이야, 돈도 돈이지만 일하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원체 일만하고 인간이란 건 없었어. 일하면 끝이고. 친해지지도 못했어."

- 어느 부분이 제일 힘드셨나요?
재우 어머니: "일이 제일 안 맞지. 중국일과 좀 틀린 거 같애. 몸도 좀 안 맞고, 조금만 실수하면 뭐라고 하고 천대하고 차별하기도 했어. 어딜가나 설움밖에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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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에 잠겨있는 박재우(48)씨 ⓒ 김민수


-엎친데 덮친격으로 병까지 알게 되셨잖아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재우: "2015년인가. 김해에서 노가다 일을 하다가 움직이는 게 이상했어. 내 몸이 이상하다고 해야하나. 힘도 툭툭 갑자기 떨어지고. 그래서 김해 한의원에 갔는데 모른다고 했어. 김해에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한 의사가 이 병은 큰 병원 가봐야겠다고. 2016년 여름쯤인가? 부산의 대학병원을 추천해 주더라고. 근데, 의료보험이 안 되는데 갈 엄두가 안 났어. 그러다가 한 병원을 알게 되었는데, 대학병원이랑 연결해 줘서 약을 처방받았지. 그리고는 조금 나아졌어. 근데 돈이 많지도 않고, 그때만 타 먹고 말았지.

2017년도에는 8월쯤 또 종합병원에서 도와줘서 병 판정을 받고 약을 한번 더 받았지. 그때는 누나가 직장의료보험으로 나를 등록시켜줘서 그나마 약을 타왔지. 그리고, 중국에서 조카가 10월쯤에 좋은 약을 하나 보내줬는데... 한 달 전에 다 떨어졌지. 매일 먹지도 못했어. 그래도 효과가 좀 있으니. 그래서 지금 종합병원 약을 먹고 있잖아."
*그의 질환은 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름 이리저리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걷지 못하고 나가지 못하면서 '외부의 도움' 없이는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 네 그랬었죠. 지금 제일 힘든 건 뭐에요 ?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재우: "남과 같이 신체가 못따라 가는게 제일 힘들지. 일을 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가. 마음도 너무 힘들어."
재우 어머니: "나는 자식 잘사는 거 보려고 이렇게 나왔는데. 앞으로 한발자국, 뒤로 한발자국도 못내딛는 상황이지."
*가족들은 생각지도 못한 '루게릭병'의 무게를 감당해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질병이 진행할수록, 요양 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하다.

- 사실 이병은 낫기가 무지하게 어려워요. 빨리 진행되는 걸 늦추는 정도로 봐야 할 거 같은데. 준비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재우: "음...(꽤 긴시간을 침묵했다) 고향 친구들을 한번 만나고 싶어. 그러면 준비를 할 수 있을 거 같아."

- 어머니. 요양 병원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재우 어머니: "거긴 자기 식구처럼 안 해주더라고. 나도 잠깐 있다가 나온 적이 있는데. 좀 그래."

- 만약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시겠습니까.
재우 어머니: "이제 갈 곳 이라고는 없어. 편히 살 곳도 없고. 자식은 다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혼자 가서 뭐하겠나. 누굴 믿고 어찌 살지 막막해."
재우: "우리 둘 다 의지하면서 사는거지. 둘 다 옆에 있는 게 나아."

약 한시간 반 동안 그와 길고도 깊은 회상을 같이하며, 말미에는 그의 무기력해진 어깨를 꽉 쥐며 무언가를 꼭 해내리라 다짐했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 그들의 어깨를 내리눌렀던 '차별'. 이제는 '루게릭병'까지. 박재우씨 가족들의 힘으로 덜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에 우리는 어떠한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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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마련이 어려운 그를 위해 쪽방 거주민들과 의대생들이 목욕서비스를 해드렸다. ⓒ 김민수


의대생들은 폭신한 방석, 탈취제 등을 사서 그의 불편함을 조금 덜어주고,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죽과 그가 제일 좋아하는 닭고기를 한번씩 드린다. 목욕도 함께 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에 대한 '동정'을 한 움큼 덜어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고민해 보기도 한다.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을까. 그리고 함께 부축하며 걸을 수 있을까? 당장 중요한 물음에 우리는 대답하기가 힘들다.

덧붙이는 글 *현재 선생님 한분, 사회 복지사 한분, 그리고 의대생 여럿이 그의 여정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조선족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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