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서도 교복을 입어야 하나

학생다움을 규정하는 복장으로서의 교복, 학교 밖에서까지 입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등록 2018.03.29 08:05수정 2018.03.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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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나는 1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했었다. 캡사이신 물대포와 차벽이 시위대를 막고 길을 내주지 않는 그런 흔한 집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정부는 국정교과서 도입을 강행하려고 했어서 청소년들의 항의도 잇따랐다. 총궐기 현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국정교과서 반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그때 처음 질문을 던져본 것 같다. 시위에 나왔는데 왜 교복을 입었을까?

교복 입은 학생들이 다시 내 눈에 띄었던 건 1년이 지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집회에서였다. 교복을 입은 일부 학생들이 길거리에 서서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다면서 모금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집회 참가자들은 '기특하다'며 만원짜리 몇 장을 건내주기도 했다.

너무 불편했다. 자신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밝힐 이유가 없는 상황에도 청소년들이 교복을 입고 자신을 '학생'임을 말해야 하는 이 상황이.

학교 밖에서도 유지되어야 하는 학생다움

이것과 관련해서 청소년운동에 몸담고 있는 청소년 당사자의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왜 집회에 참여하는데 교복을 입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집회에서 교복을 입고 있으면 모금이 조금 더 잘 되는 것도 사실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개인의 경험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분명 지나가던 시위 참가자들 중에 '기특하네'란 말 한마디를 하고 넘어가는 '어른'들을 봤던 입장에서 어찌되었건 씁쓸한 현실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현재 이루어지는 선거연령 하향을 촉구하는 집회를 포함해서,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열렸던 집회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들이 놀러가는 곳'이라는 누명을 항상 받아왔다. 법만 그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도 학생들의 정치적 결사를 달갑게 봐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조금 특별했다고 볼 수 있다. '하다하다 저런 학생들도 나올 만큼 이 나라가 엉망이다'라는 논리. '기특하다'는 말은 그런 기저에서 나올 수 있다. '성인이 허락한 집회'인 셈이다. 주체적 판단에 의해 정치적 결사를 하는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엉망인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기특하게도' 거리로 나온 학생들인 것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그들이 학생이고, 한 눈 팔지 않고 공부해야 하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권리를 말하기 위해 삭발까지 해 가면서 소리 높이는 것은 이미 학생다운 행동이 아닌 것이다.


'다시 성실한 학생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신호

그런 의미에서 볼 때 Mnet <고등래퍼>는 사회가 '학생'을 바라보는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방송이다. 자기 학교의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참가자들은 제작진이 제공한 교복을 입는다. 시즌 1, 2동안 자퇴생이 참가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건 방송에서는 랩을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학교를 성실히 다니고 있는 학생'이어야 한다.

<고등래퍼>의 교복은 학교 밖에서도 그 나잇대의 아이들은 '학생다움'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부할 시간에 힙합이라는 거친 음악을 하고,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보기에 눈살 찌푸려지지만 어쨌건 그들은 '학생다움'을 잊지 않고 있으며 이 무대를 떠나면 다시 성실한 학생이 되기 위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라는 신호. 실제로 제작진은 시즌2를 시작하면서 이전에 있었던 여러 논란들을 예방하기 위해 참가자들의 '친권자와 가족'에게 확인절차를 거친 바 있다.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교복과 <고등래퍼> 참가자들의 교복. '기특하게도' 거리로 나온 학생들과 부모의 허락을 맡고 마이크를 쥔 학생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학생'이 되어야 한다. 선거연령 하향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는 요즘, 너무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을 주체적 개인으로 보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한다.
##학생다움 ##촛불집회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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