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에 놀랄 거라고?
북한 걸그룹을 뭘로 보고…

화장하는 북한 남자, 아이돌 춤 배우는 북한 여자

등록 2018.03.31 11:07수정 2018.04.0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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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디스크' 레드벨벳, 차분한 자태 레드벨벳이 지난 1월 10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32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저렇게 춰보고 싶다' 

2003년, 베이비복스의 평양 공연을 본 김가영씨는 춤을 배우고 싶었다. 가영씨의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마음 맞고 배우고 싶은 친구들 몇 명이 모였다. 영상을 보고 열심히 해봐도 한계가 있었다. 친구들과 '댄스 선생'을 모셨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춤을 배우고 한 달에 쌀 40kg을 수강료로 냈다.

가영씨는 2013년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 양강도에서 살았다. 매주 쌀과 춤을 맞바꾸며 지냈다. 가영씨는 "베이비복스가 평양에서 공연하고 간 후 베이비복스 춤과 머리, 화장이 유행이었다"라고 했다.

1일, 남측 예술단이 평양 무대에 선다. 2005년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 이후 13년 만이다. 예술단 구성은 가수 조용필, 최진희부터 정인, 레드벨벳까지 다양하다. 예술단에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베이비복스의 평양 공연 영상이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15년 전 공연이었다.

당시 베이비복스는 빨간색 상의에 꽃이 그려진 바지와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베이비복스가 노래하며 춤추는 동안 카메라는 평양 관객의 얼굴을 간간이 비쳤다. 찌푸린 표정으로 턱에 손을 괴거나 팔짱을 낀 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후 이 장면은 '서울과 평양의 온도 차', 문화 차이'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됐다.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앞두고 아이돌로는 유일하게 예술단에 포함된 레드벨벳을 보며, 베이비복스를 떠올리는 건 그 때문이다.

평양 관객은 여전히 짧은 치마, 개성 있는 춤과 노래를 선보일 이 아이돌이 낯설까?

북한에도 걸그룹은 있다


"북한에도 걸그룹이 있다. 모란봉(북한의 경음악 밴드)이 아니라 음악대학원 졸업생들이 자기들끼리 팀을 이뤄서 공연 다닌다. 간부들의 생일, 환갑 같은 날. 이들은 노래, 춤, 악기를 다 하는데, 몇 년 전부터 노래 공연을 하면서 북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11년 탈북한 최아무개씨는 "베이비복스가 공연하던 때와 지금은 비교불가"라고 못 박았다. 적어도 문화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북한 남자도 화장 하고 타투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한류, 이른바 '남조선풍'의 유행이다. 2011년에 탈북한 김아무개씨는 "한국 남자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북한 남자들이 화장하기 시작했다"라면서 "눈썹 타투, 화장, 귀걸이를 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귀걸이를 허용한 것도 한몫했다"라고 덧붙였다.

북한 내 한류는 CD나 USB를 통해 퍼지고 있다. 한국에서 유행한 드라마가 북한에 도착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통 1주일이면 남과 북의 가요 인기차트는 비슷하다는 것.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한국에서 인기있는 드라마, 노래는 일주일 안에 북한에서도 인기를 끈다. 중국의 저가 태블릿 PC에 담겨 다 넘어간다"라고 말했다.

"더는 북한에서 레드벨벳과 같은 아이돌 공연이 파격적이지는 않을 거다. 그보다 더 파격적인 공연이 많다. 북한도 한류를 받아들이는 전략을 바꿨다.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라고만 했는데, 요즘은 아니다. 차라리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을 만들라는 것이다."

섹시 콘셉트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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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돌아온 예술단과 기념사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쪽에서 공연을 마치고 평양에 귀환한 현송월 단장 등 삼지연관현악단원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월 13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정권에서도 문화를 받아들이는 전략을 바꿨다는 설명도 있다. 한국이나 미국문화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우리가 북한 문화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흐름에 너무 무심하다"라며 "지금은 핑클, 베이비복스가 공연했을 때와 다르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빨리, 많이 받아들였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섹슈얼리티가 강조된 음악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싸이의 평양공연이 무산된 것도 북한이 불편해하는 콘셉트라는 것. 이 교수는 "싸이의 평양공연이 어려운 건 그의 노래가 전반적으로 섹슈얼리티를 소비하는 분위기라서 일 것"이라며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레드벨벳보다는 조금 더 귀여움이 강조된 아이돌이 북한 관객에게 다가가기 쉬웠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에서 한류를 받아들이는 정도는 지역, 세대마다 다르다. 6년 전 탈북한 최씨는 "중국과 닿아있는 지역일수록 화장도 짙고, 패션도 다르다. 한국 연예인을 보고 마음에 드는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한다"라며 "나도 북한에서 팔이 길고 몸통이 작은 옷을 만들어 입었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세대 변화'에 방점을 찍었다. 1990년대 이후에 탄생하고 200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이들과 기성세대와는 취향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그는 "200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의 취향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라며 "우리의 평양공연도 북한의 문화 기류를 읽어내며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문화 전략은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로동신문>도 이 점을 강조했다.

'사상사업에서 우리 당의 전략 전술은 맞받아나가는 공격전이다'라며 '우리의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이 썩어빠진 부르죠아반동문화를 압도하여 사람들이 적들의 문화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지 않게 하는 여기에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주동적이며 적극적인 대책이 있다.' (로동신문 2018년 3월 8일 자)

윤도현이 인기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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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인기 있는 한국가요 탑 10 지난 28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탈북민 51명을 조사해 ‘북에서 인기 있는 한국가요 톱 10’을 발표했다. ⓒ 하태경 의원실


실제로 북한에서 인기 있는 곡은 무엇일까? 지난 28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탈북민 51명을 조사해 '북에서 인기 있는 한국가요 톱 10'을 발표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탈북한 이들이 꼽는 북한에서 인기 있는 노래 1위는 안재욱의 <친구>였다.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뒤를 이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인기 있는 노래는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은 미디엄템포의 노래라고 말했다. 2014년에 탈북한 김아무개씨는 "북한은 박자가 너무 느리지 않은 발라드, 가사가 와닿는 노래를 좋아한다"라고 전했다.

가수 윤도현은 북한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평양의 청년들은 모두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를 따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김씨는 "평양 아가씨들이 모두 윤도현에게 시집가겠다고 할 정도로 윤도현이 인기였다"라며 "20~30대 청년은 대부분 그 노래를 좋아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2002년 윤도현 밴드가 평양에서 공연했을 때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윤도현 그 자신도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그의 책 <냉전의 추억>에서 남·북 가요 교류사를 전했다.

2002년 9월 윤도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너를 보내고"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 객석은 조용했다. 윤도현은 당황했다. 마이크를 잡고 "저희 음악이 생소하겠지만 남한의 놀새 떼가 신나게 노는 모습을 귀엽게 봐달라고"하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놀새는 북한 말로 '오렌지족'이라는 뜻이다. <냉전의 추억> 중에서


가수 윤도현의 태도가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는 말도 있다. <아리랑>을 부르다 울컥해서 노래를 마저 부르지 못한 남한의 로커가 매력적이었다는 평이다. 이 교수 역시 "윤도현은 북한에서 태도와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평을 받았다"라며 "북한의 젊은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가수였을 것"이라 덧붙였다.

속으로는 좋아도...

한류가 낯설지 않은 북한, 이번 공연에서 북한의 객석 반응은 지난 공연과 다를 수 있을까? 북한을 경험한 이들은 "'객석 반응'이 한류나 사회변화를 담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가보위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김씨는 "공연장에서의 반응은 평소 북한 사람의 반응과는 또 다른 문제"라며 "보위부원들이 사복 입고 공연을 지켜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레드벨벳 #평양 #북한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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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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