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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나를 부를 때는 항상 '내 배로 난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셨다. 내 위로 넷을 잃고 내 아래로 자식 하나를 잃었으니 다섯 명의 자식을 잃으신 것이다. 어렵게 출생한 나를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셨다. 자신의 이름은 잊어도 끝까지 내 이름은 기억하셨던 어머니셨다. 아침마다 뇌운동을 위해 어머니의 성함과 내 이름을 묻곤 했다.
"어머니! 어머니 이름이 뭐예요?"
"음... 박 ..정 ..열."
"그럼, 아들 이름은요?"
"내 배로 난 아들, 나관호지 나관호! 호호호."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 못하셨다. 그러나 내 이름은 막힘없이 말씀하셨다. 놀라웠다. 일생을 바쳐 사랑을 쏟았던 아들, 어머니 말을 빌리면 '내 배로 난 아들'의 이름은 끝까지 기억하셨다. 놀랍고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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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하시는 어머니 ⓒ 나관호
한바탕 웃음꽃
출가한 여동생 식구들과 함께 어머니를 위한 만찬을 자주 가졌다. 그런데 어머니는 항상 덩치 큰 사위를 보고 어색해 하셨다. 말도 꼭 존칭을 쓰셨다.
"어머니, 사위예요. 사위."
"누구시더라."
"봉의 남편, 어머니 사위예요."
"아, 안녕하세요. 우리 사위시지요."
진 서방이 웃으면서 화답한다.
"장모님! 말씀 놓으세요. 저 사위예요."
"아휴, 난 반말 싫어요."
"장모님, 사위한테는 말을 놓으시는 거예요."
"아휴, 어떻게?"
우리 모두는 어머니 때문에 늘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어머니의 모습은 어찌 보면 귀엽기까지 하셨다. 어머니의 이런 행동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래도 우리 식구들은 행복 코드를 찾아 함께 즐거워했다. 내 삶의 주인공 어머니는 순간순간 웃음을 던져주셨다.
아껴 드시는 어머니를 위한 묘책
식사를 주문하고 샐러드바에서 스프와 몇 가지 음식을 가져왔다. 어머니의 평소 습관이 또 나온다. 아들 먹으라고 챙기시며 값을 물어보신다. 자신이 먹는 것은 아까워하신다. 이럴 때 어머니를 위해 사용하는 묘책이 있다. 그것은 돈을 많이 내서 안 드시면 아깝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어머니, 안 드시면 오만 원 냈는데 손해예요."
"이! 너무 비싸. 아이쿠."
"그러니까 맛있게 많이 드셔야 해요."
"알았어. 아들도 먹어!"
식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왼쪽 옆구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갈비뼈를 다치신 줄 알고 순간 당황했다. 옆구리에 손만 대도 아프다고 하신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식사를 그만하시려는 꾀병 같았다. 어머니의 엄살에 우리들은 또 한바탕 웃었다. 옆자리의 다른 가족들도 우리 모습이 즐거운지 같이 웃었다.
"어머니, 이것 한 번만 더 드세요."
"나, 너무 아파. 아이구, 아이구."
"이것 한 번 더 드시면 나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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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과 미소가 아름다운 어머니 ⓒ 나관호
어머니 꾀병에 웃고, 사위 용돈에 행복
어머니는 받아 드신다. 그리고는 배가 부르다며 허리를 푸셨다. 동생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드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프다는 소리 한 번 안 하시고 맛있게 드신다. 우리들은 손으로 입을 막고 또 한바탕 웃었다. 사위가 고기를 집어 드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꾀병을 부리신다.
"아이쿠, 이렇게 아파. 여기 봐."
"또 아프세요? 큰일 났네요. 음식 값으로 오만 원 냈는데 아깝네요."
"어! 그럼 더 먹어."
외식을 하면 이렇게 아이 달래듯 식사를 해야 했다. 어머니는 옆구리 아프시다는 얘기 없이 남은 식사를 마치셨다. 식사를 마치자 또 옆구리가 아프시다 하셨다. 매제가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장모님! 이거 용돈 쓰세요."
"이게 뭐예요?"
"장모님 용돈이에요. 맛있는 것 사드세요."
"아휴, 고마우셔라."
"어머니, 사위에게는 말씀을 놓으셔야죠."
어머니가 봉투를 만지시더니 갑자기 돈을 세신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또 한바탕 웃었다. 그 이후부터는 아프다는 말씀이 쏙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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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제와 여동생과 함께 걷는 어머니 ⓒ 나관호
함께 힘을 냅시다
그날의 식사 후 어머니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자꾸 집을 나가시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여쭤 보니 꾸어준 돈을 받으셔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위가 준 돈을 세면서 옛날에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이 생각나신 모양이다.
젊은 날 아버지 몰래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이 상당히 많았다고 들었다. 그것도 어머니에게는 작은 한이다. 어머니의 돌출 행동을 보면서 어머니 머릿속 지우개와 동거하며 싸워야 할 것 같았다.
치매 노인들은 주로 기억이 흐려지지만 반대로 생각나기 시작한 기억은 시공간을 초월해 현재 사건으로 인식한다.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다. 지난 모든 기억을 잃으시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새겨진 기억, 사랑 깊은 기억은 치매가 지우지 못한다. 특히 자식 사랑이나 큰 충격으로 마음에 새겨진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한다.
"같이 힘을 냅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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