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손잡은 캄보디아, 그 '위험한' 밀월관계

[해외리포트] "단기적으론 중국의 투자 도움되겠지만, 예속화 위험"... 캄보디아의 미래는?

등록 2018.04.03 12:05수정 2018.04.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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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봉제공장을 방문한 훈센 총리가 근로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훈센 총리는 최근 미국 등 서방세계와 거리를 두는 대신 중국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 박정연


[기사 수정 : 6일 오전 9시 17분]

지난 3월 18일은 론놀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킨 지 4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33년째 장기집권 중인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대중연설을 통해 과거 1970년대 론놀 정권이 미국에 진 빚 5억 달러(이자 포함)를 탕감해줄 것을 트럼프 행정부에 여러 차례 요구한 바 있다. 총리는 당시 진 빚 대부분이 친미성향의 론놀 정부가 미국의 군사무기를 사들이는데 쓴 돈인 만큼 채무를 갚을 필요가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총리의 주장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1970년 봄, 친미성향의 론놀 장군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이 해외순방을 떠난 틈을 이용해 미국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국회를 장악, 국왕을 쫒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이후 친미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살상용 군사무기를 구입했다. 공산게릴라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다. 구입자금의 대부분은 미국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충당했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캄보디아 영토내 잠입한 북베트남공산군을 섬멸한다는 명분 아래 의회승인도 없이 비밀리에 B-52 폭격기를 띄어 무려 64만 톤이 넘는 폭탄을 캄보디아에 쏟아 부었다. 게다가 미군은 네이팜탄같은 제네바 협정에 명백히 위배되는 폭탄으로 캄보디아를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무고한 캄보디아 양민 최소 60만~80만 명이 목숨을 잃게 되고 난민 200만 명이 발생했다.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던 '1차 킬링필드'의 참혹한 진실이기도 하다.

훈센 총리는 당시 미국 정부가 저지른 범죄를 상기시키며, 한 연설에서 미국의 빚 독촉에 " 도끼로 우리를 죽이고, 나중에 도끼값을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미국을 빗대 비난한 적도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당시 빚은 무기가 아닌 농업분야 개간산업을 위해 쓰여 진 것이라며 여전히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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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지원 행사에 참석, 연설 중인 윌리엄 하이트 주캄보디아 미국대사. 훈센 총리는 미국 정부 지원 내용과 관련해 최근 미국대사를 거짓말쟁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 박정연


하지만, 양국은 빚 탕감과 관련해 단 한 번도 구체적인 논의를 하거나 협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캄보디아 측은 당연 빚 탕감 협상테이블에 앉기를 원하지만, 채권국인 미국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신 빚 탕감의 대가로 캄보디아의 인권문제 해결과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눈치다.


미국은 지난 2017년 11월 대법원 결정을 통해 제1야당을 해체시키고, 야당총재마저 구속시킨 작금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미국은 이 나라 장기독재정권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금년 7월 치러질 총선과 관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NEC) 선거지원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이에 앞서 고위공무원들과 가족들에 대한 미국비자발급을 제한하는 조치도 취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훈센 총리가 아니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전사자 유해송환문제에 제동을 걸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민주주의연구소(NDI) 등 미국 NGO단체의 캄보디아내 활동도 중단시켜 버렸다.

최근 훈센 총리는 미국의 국세청 지원 중단 문제와 관련해, 주캄보디아 윌리엄 하이트 미국대사를 가리켜 '거짓말쟁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훈센 총리는 미국이 야당지도자들을 꼬드겨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식의 미국 음모론을 부각시킨 적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는 모습이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중국과 캄보디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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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리커창 중국 총리 방문 당시 프놈펜 시내에 내걸린 오성기의 모습. ⓒ 박정연


그렇다면 캄보디아가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이렇게 무모해보일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바로 중국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총선을 전후로 불거지기 시작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를 두고, 미국은 꾸준히 해결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캄보디아가 이를 거부하자 양국관계는 나빠졌고, 그 틈을 비집고 중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과 캄보디아 양국은 호형호제할 만큼 최근 부쩍 친해진 사이다. 역사가들은 양국이 수교한 지 올해로 60주년이 되었지만, 요즘처럼 가까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가 보자. 수 년 전부터는 남중국해 연안 도서영유권 문제로 중국은 아세안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고립위기에 처하곤 했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가 나서 중국의 입장을 두둔하며, 그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의 거부로 인해 중국의 남중국해 도서영유권 이행을 촉구하는 아세안 공동성명서 채택이 불발된 적도 있다. 중국 입장에선 중국의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는 캄보디아가 여간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6년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그 답례로 캄보디아 정부에 6천만 달러를 경제원조자금으로 내놓았다. 금년 1월 캄보디아를 방문한 리커창 총리 역시도 투자금액만 1억 달러가 넘는 19개 계약서에 서명하는 등, 돈 보따리를 풀어놨다.

양국관계에 있어 급진전을 이룬 중국은 근래 훈센 총리의 장기집권계획에도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지난 2017년 9월 야당총재의 갑작스런 구속과 독립언론 <캄보디아 데일리>의 폐간조치에 대해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국가들은 캄보디아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했지만, 중국은 거꾸로 "자국의 정치안정을 위한 노력에 지지를 보낸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은 7월 29일 치러지는 총선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훈센 총리 입장에선 경제지원을 빌미로 자국 민주주의와 인권, 정치문제에 대해 사사건건 참견하고, 딴지를 거는 미국이나 유럽국가들 보다는, 아무런 조건없이 아낌없이 퍼주는 중국이 여러모로 마음에 들 것임이 분명하다. 양국이 여러모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수년 새 미국이나 서방세계를 대하는 훈센 총리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는 요즘 대중연설을 할 때마다 걸핏하면, 인권과 정치 문제를 거론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을 상대로 '내정간섭'이라며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 등 서방민주주의국가들과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반대로 중국으로의 쏠림 현상은 심해지는 모습이다. 급기야 캄보디아는 오랜기간 유지되어 온 미국과의 군사협력관계마저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2년 전 미국과의 군사연합훈련을 석연찮은 핑계로 취소시키고, 대신 중국을 끌어들었다. 서방세계의 한 축인 호주와의 군사훈련도 무기한 연기해버렸다. 대신 2017년에 이어 '황금용(Golden Dragon 2018)'으로 명명된 중국 캄보디아 양국 군사훈련이 최근에도 실시됐다.

일대일로 정책 주장한 중국, 캄보디아를 동남아 진출 교두보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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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캄보디아 양국이 수교를 맺은 지 60주년이 되는 올해 프놈펜에서 열린 행사에서 캄보디아 대학생이 중국전통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요즘처럼 양국이 가까웠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 박정연


일대일로 정책(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을 주창해온 시진핑 정부가 동남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캄보디아를 선택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거대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무기로 삼아 전방위적으로 이 나라에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이다.

중국기업들의 진출도 기세가 무섭다. 불과 3~4년 사이 중국계 건설업체들이 시공한 고층빌딩들과 한자어 간판들로 수도 프놈펜이 가득 차 버렸다. 중국 본토에서 온 건설근로자만 최소 10만 명을 넘었다는 현지언론보도도 있다. 최근 프놈펜주재 중국대사관은  자국 대사관에 등록된 재외동포 중국인수만 20만 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프놈펜국제공항으로 취항한 중국 정기 민항기도 부쩍 늘었다.

프놈펜 왕궁과 앙코르와트 등 주요관광지는 늘 중국관광객들로 붐빈다. 지난 2017년 캄보디아를 다녀간 중국 관광객수는 100만 명을 넘었다. 중국 정부 지원으로 프놈펜-시하누크빌 구간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고, 중국계 기업이 참여한 가운데 프놈펜신국제공항이 조만간 건설될 예정이다. 

인구 25만여 명에 불과한 해양관광도시 시하누크빌은 이미 4만 명이 넘는 중국인 이주자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프놈펜 남부에 위치한 이 작은 바닷가 도시에는 현재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카지노가 생겨났고, 중국경제특별지구도 운영 중이거나 건설 중이다. 중국인들의 부동산투기와 임대수요로 시내 땅값과 건물임대료는 폭등했다.

중국의 거대자본에 밀려 현지인들은 임대료가 싼 외곽지역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한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러시아인들을 포함한 유럽인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을 피해 주변 조용한 해안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다. 이 여파로 작은 항구도시마저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관광도시 씨엠립도 상황은 다를 바 없다. 관광호텔이나 상점에선 미국 달러화나 현지화인 '리엘' 대신 중국 위안화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관광기념품 가게들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구한다는 채용공고문이 붙은 지 오래다. 대학에선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한국어를 제치고, 중국어과를 지원하려는 젊은 청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박재희 프놈펜왕립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는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중국어가 인기를 끌면서, 예년에 비해  한국어과 지원자가 줄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에 밀려 현지인들마저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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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대학생들이 최근 열린 중국 주최 행사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기책을 든 채 미소를 짓고 있다. ⓒ 박정연


캄보디아 정부는 2020년까지 중국인 방문객수가 2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캄보디아 상무부에 따르면, 양국의 교역규모도 수년 내 60억 달러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향후 4~5년 내 캄보디아 거주 중국인이 최소 50만~60만 명 이상 될 것이란 전망도 충분히 설득력을 얻는다.

이 나라의 적지 않은 엘리트 지식인들은 일명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를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중국의 투자진출이 캄보디아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다 주겠지만, 점차 중국경제에 예속화되면, 캄보디아의 경제기초가 워낙 취약하기에, 중국의 경제사정이 나빠질 경우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를 바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단기적으로 중국의 투자가 캄보디아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에 도움이 되겠지만, 길게 보면 중국경제에 예속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캄보디아가 중국이란 독이 든 성배를 이미 마셨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중국의 캄보디아 진출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캄보디아가 머지않아 중국의 경제속국이 되거나 일개 변방국가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반 국민들도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진출이 여러모로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찬 쏘니타(35)씨는 "캄보디아가 중국의 반식민지 내지 변방국가로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툭툭기사 초은 다랏(41)씨는 "요즘 중국 관광객이 들어 수입이 괜찮다"며, 투자를 많이 하는 중국의 진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어린 자식들을 동네에 있는 중국화교학교에 보낸다며 "앞으론 영어보다 중국어를 잘해야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싼 학비걱정을 했다.

캄보디아 권력자들만 역사의 교훈을 잊다

중국의 영향력이 군사, 경제의 예속수준을 넘어 이 나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 가운데, 익명을 요구한 현지 정치전문가는 "중국 시진핑 정부와 훈센 정부가 이해타산이 맞아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훈센 총리가 중국과 거리를 멀리하거나 중국의 이익을 거스를 경우, 중국이 또 다른 인물을 대안카드로 쓸 날이 올 수도 있다. 과거 미국이 맘에 안 드는 시하누크 국왕을 몰아내고 론놀을 앞세워 친미 정권을 세었던 것처럼 말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렇듯, 이 나라 지식인들은 경제 분야의 종속수준을 넘어 정치, 안보, 외교마저 중국에 예속될까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그는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중국은 일단 발을 들여 놓으면 단 한 번도 제 발로 빠져나간 역사가 없기에 그러한 두려움은 더 크다. 과거 베트남에서도 그랬다. 북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도 당시 미국이나 프랑스보다는 중국을 더 위험한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통일대업을 이루기 위해 제일 먼저 중국부터 쫒아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캄보디아 권력자들만이 과거 역사의 교훈을 잊은 것 같다."
#캄보디아 #캄보디아-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양국우호 60주년 #론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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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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