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제보,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

[특집 - 제보자들 ②] 공익제보자가 외롭지 않도록

등록 2018.04.04 13:41수정 2018.04.04 13:41
0
a

제보 이후 많은 이들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이 우리 현실 ⓒ 참여사회


"회사 사람을 만났는데, 중국사람 시켜서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흔적도 안 남는다고 협박했다." 

"오히려 벌금형을 받고 해직을 당했다." 

"신분의 위협을 느껴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동종업계에서 소문이 나 재취업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실직자 신세다." 

"학교 측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하는 등 심리적 압박이 심해져 자퇴하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엉뚱한 지역으로 전보조치 내렸다." 

"왕따 시키고 근무복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전체 직원 교육 시 내부고발자로 지목하고 업무 배제시켰다." 

"컴퓨터와 전화를 다 치워버리고 책상만 있는 상태가 되었다." 


"잠도 안 오고, 바늘로 몸을 콕콕 쑤시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가 상담해보니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우울증으로 항정신성 약물투여를 한 적이 있다." 

"아들이 등록금을 내지 못해 제적당할 뻔했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 아내와 많이 싸웠고 이혼 위기가 있었다."

공익제보자는 배신자라는 낙인

이 글들은 필자가 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5년 전 필자가 총괄책임을 맡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지원받아 호루라기재단이 진행한 '내부공익신고자 인권 옹호 및 신장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42명의 내부공익신고자들을 인터뷰해 조직의 보복, 정신적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 등을 조사할 때 나온 말 중 극히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여기 부정과 비리가 있다"라고 소박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외칠 때, 그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외침에 사회적 지지도 따르지만 그 이상의 가혹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찬사는 순간이지만 조직으로부터 당하는 유무형의 불이익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감사원 감사비리를 신고했던 현준희 씨는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길 정도였다.

그 고통의 유형은 다양하다. 내부고발을 결심하는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폭로 이후에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해고, 업계에서 퇴출당하거나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가족의 희생이 뒤따르며, 심한 경우 가족 관계가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과 따돌림, 지인들의 기피, 지난한 법정 투쟁 등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 역시 동반되고 그 과정에서 자살 충돌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신분 노출로 인해 누리꾼의 공격을 당하거나 협박, 물리적 위해,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하고 실제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해 '부패 방지와 국민권익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과 '공익신고자보호법'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물론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법적 보호라는 방패가 더욱 커지고 강해지더라도 그 방패가 있는지도 모르거나 제대로 몸을 못 가린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제보하기 전, 혹은 제보한 후 공익제보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미리 체크해야 할 행동수칙이나 지침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공익제보자를 위한 단계별 행동수칙

고발 과정은 불법이나 잘못된 행동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이 첫 단계에서는 가장 먼저 전문가 또는 경험자로부터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가능하면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시정할 수 있는 절차를 밟는다. 물론 그 과정을 따르다가 오히려 신분이 노출되어 불이익에 노출되거나 불법행위 증거를 은폐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내부 시정이냐, 국민권익위원회 등 외부 신고냐는 조직 차원의 부정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조직의 부정에 대해 동료들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들어보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직의 규정을 준수하고 직무에 더 충실함으로써 보복성 징계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한다.

제2단계는 '신고의 결정 및 이행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첫째, 입증 책임을 위한 증거 자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조직의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더라도 일기나 비망록에 꼼꼼하게 적어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교장이 나에게 협박 가했다"라고 기록하기보다는 "교장 : (자기 책상에 있던 서류를 던지고 나를 노려보면서) 다시 한 번 더 학생 편들면 옷 벗을 각오해야 할 거야"라는 식으로 시나리오처럼 작성하는 것이 좋다. 둘째, 보호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철저히 조사하고 최대한 활용한다.

셋째, 법률적 분쟁이 발생해 장기화할 수 있음을 감안해 법률적 조언을 구한다. 이를 통해 조직이 각종 법률을 들어 징계의 구실을 만드는 것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넷째, 신고 방법을 숙지한다. 현행 법령에서는 법에서 정해놓은 신고처가 아닌 언론, 시민단체, 종교단체, 노조 등을 찾아가 제보할 경우 보호를 받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시민단체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곳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호루라기재단, 내부제보실천운동 등 지원 단체와 충분히 협의해 제보를 준비하는 것이 조직의 보복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불이익을 당한 후 내부고발 보호단체를 찾아오게 되면 단체 차원에서도 지원하기가 여의치 못할 때가 많다.

'의로운' 행위가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끝으로 '신고 이후' 단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내부고발자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제보했으니 그것으로 다 될 것이라는 '순진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직은 그렇지 않다. 조직 입장에서는 재판을 몇 년간 진행하더라도 별 어려움이 없지만 고발자는 그 과정에서 먼저 지쳐나가게 된다. 소송이 진행되면 몇 년 걸릴 수 있다는 인내심을 갖고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다음으로 신분노출에 주의해야 한다. 설령 조직에서 내부고발자인지 물어보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조직의 색출 작업은 불법행위라는 점을 말하고 '내가 제보자가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주어진 직무에 더 충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만일 신고로 인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법에 따라 권익위에 보호 조치를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내부고발 자체에 나서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제보자들에게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이런 것들을 준비해라"고 요구한다면 오히려 고발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도 나서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몇 가지 행동수칙을 제시하는 것은 공익을 위해, 정의를 위해, 시민들을 위해 용기를 내어 호루라기를 부는 이들이 있을 것이기에 그들의 '의로운 행위'가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하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또한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혼자 고민하지 말고 홀로 행동하지 말고 고발에 나서기 전에 꼭 내부고발 지원 단체를 찾을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지문님은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공익제보
댓글

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