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도구였던 나... 퇴역 일본 헌병의 뼈아픈 참회록

[서평] 쓰치야 요시오 참회록 <인간의 양심>

등록 2018.04.11 21:00수정 2018.04.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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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11년 일본의 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난다. 7남매 중 장남으로였다. 소년이 성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일본에선 '일본 국민으로서 성공하고 싶거나, 떳떳하려면 군인이 되어야' 같은 의식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주입받은 교육 결과 때문이었다.

대한제국을 발판으로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들을 집어 삼키려는 야욕의 일본 군국주의와 우익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전쟁에 끌어들이고자 의도적으로 확산시킨 시류이기도 했다. 


그러한 배경에서 자라 성년이 된 그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입대를 지원한다. 천황의 영광스런 군인이 되는 것이 가족들을 가난에서 탈출시킬 수 있고, 자신들을 억압한 지주나 관리들을 꼼짝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생각에서였다.

그가 처음 배치된 부대는 만주 소재 독립수비대(관동군)였다. 그곳에서 보병으로 몇 년간 복무한 그는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치치하얼 헌병부대에서 복무하게 된다. 그가 헌병이 된 것은 입대 3년차인 1933년. 일본이 패망하던 1945년 당시 헌병 소위였던 그는 헌병으로 복무하는 12년 동안 1917명의 중국인들을 검거, 직간접적으로 328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일본은 물론 중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일본 헌병 퇴역병 쓰치야 요시오(1911~2001)'의 이야기다.

"무섭게도 나는 이 체험(입대 20일 무렵 명령에 따라 총검으로 중국인을 찔러 죽인)을 한 후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어릴 적에는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죽이는 것도 큰 죄라고 생각했는데, 살아있는 중국인을 죽이고도 벌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다, 중국인은 인간이 아니고 벌레와 마찬가지인 '짱꼴라'라고 생각했다. 군대에서 그런 벌레 같은 놈을 처치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것'이며 '천황을 위해, 야마토 민족의 번영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관동군에서는 중국인을 한 사람이라도 많이 죽여야 공이 된다고 보았다. (…)나는 어느 사이에 천황의 군대(황군)의 살인도구로 변해 버린..." - 45쪽.

"헌병업무에 종사하는 사이에 나는 선배 헌병들이 하는 고문을 보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며 그 수법을 익혔다. 특히, 고문은 처음에는 누구라도 흠칫거리며 한다. 그러나 매일 반복하니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피의자에게 죄가 있든 없든 관계없었다. 체포하면 마지막에는 '이 자식(중국인)은 살려 둘 가치가 없다'라고까지 생각해 인간의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살인마가 된 것이다." -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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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양심> 책표지. ⓒ 지문당


<인간의 양심>(지문당 펴냄)은 쓰치야 요시오(아래 쓰치야)가 생전에 남긴 수많은 참회록들을 일본의 한 사회운동가가 정리 출간한 책에, 쓰치야가 생전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글 일부를 더해 출간된 책이다. 쓰치야는 글에서 스스로를 '악마' 혹은 '살인마'라고 표현하며 중국에서의 15년을 고백한다.


쓰치야가 군인이 된 1931년 만주 일대는 만주사변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만주 또는 간도(백두산 북쪽의 만주 동북부 지역)는 윤동주 시인의 고향으로 '별 헤는 밤'에도 나올 정도로 우리와 오랜 역사를 함께 해온 곳이다. 일본은 을사늑약(1905)으로 강탈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이용해 간도의 조선인 관련 시설물들을 철거하는 것으로 만주 일대가 청나라 영토임을 인정해준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과 같은 대륙으로의 진출에 반드시 필요하다거나 등, 당시 시류 상 막대한 이익이 걸린 만주일대 철도부설권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간도협약(1909년 9월 4일), 간략한 설명이다.

이후 일본은 만주 일대에 병력을 확대해가며 철로를 건설한다. 와중에 공사 중인 철로 일부가 폭파되는 남만철도폭파사건(1931.7)이 발생한다. 일본은 이를 만주 일대 중국인(항일세력)들이 일으킨 것으로 확대, 이를 구실삼아 만주를 점령한다(만주사변.1931. 9.18) 그런데 실은 일본 스스로 조작한 것이었다. 만주를 점령할 어떤 구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헌병 쓰치야, 그가 군인이 된 것은 만주사변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던 1931년 12월. 게다가 보병으로 처음 배치된 독립수비대는 만주사변의 단초가 되는 남만철도폭파사건을 조작한 부대였다.

그와 같은 부대에 배치된 그는 처음 아주 잠깐 '영광스런 천황의 부대가 어떻게 이처럼 전쟁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중국인들을 총으로 쏴 죽일 수 있을까?'와 같은 혼란과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 이미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과 전쟁의 정당성을 교육 받은 천황의 백성답게 그리 오래지 않아 악마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라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참가한 일본국민은 집단으로서든 개인으로서든 누구나 타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행을 저질렀다. 특히 나와 같은 헌병이나 경찰, 재판관, 집정자들은 강대한 권력을 배경으로 중국민중을 '벌레'처럼 취급했고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잘못을 그저 숨기고만 싶어 한다. 그러고는 나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며 자신을 미화하려 한다. 개중에는 그것이 잘못된 행동인 것은 맞지만 황국(나라)을 위해 군의 명령에 따라서 한 것이므로 어쩔 수 없지 않았냐고 따지며 위압적으로 나오는 자들도 있다. 일본이 패전하고 한참 지날 때까지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설사 천황이나 군의 명령이 있었다고 해도 중국 민중을 총검으로 찔러 죽이거나 혹독한 고문을 실제로 가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니었던가?" - 13~14쪽.

쓰치야는 일본 패망 당시 전범으로 체포된다. 그리하여 시베리아 등지로 이송되어 강제노역 등을 하며 전범으로서의 조사를 받은 후 6년 뒤인 1950년 중국에 인도되어 무순전범관리소 등에 수감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스스로 여전히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이자 일본 군인이었다고 한다.

이런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일본 패망 9년이 지난 무렵부터였다. 그는 이미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일본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어떤 벌도 하지 않고 자신을 비롯한 다른 전범들을 일본으로 귀환시킨 중국의 처사에 스스로 인간의 양심을 묻게 된다.

그런 쓰치야의 눈에 비친 일본은 '지난날 전쟁을 미화해 아시아 곳곳에서 2000만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으며, 온갖 방법으로 가늠조차 못할 정도의 사람들을 짓밟는 등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반성과 사과는커녕 침묵 또는 모르쇠, 왜곡 등으로 다시 그와 같은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무모한 집단'에 불과했다. 인간의 양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없는 그런.

이런 연유로 중일전쟁 당시 자신이 했던 일들과 그 배후인 일본 군국의 만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쓰치야는 그것들을 등사해 손자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려 읽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지난날 악행을 참회하고 사죄한다. 동시에 일본의 전쟁 범죄를 알리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자신의 손자 세대들이 일본의 현재진행형인 범죄를 알아야만 그와 같은 범죄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과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나의 반생의 회오>, <전범 실록>, <회오를 기록하는 헌병>, <관동군의 만주침략> 등, 쓰치야의 수많은 참회록들과 반전 관련 저서들은(외에도 다수)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아가 그는 일본 전역에서 전쟁체험 강연을 하는 한편 관련 활동들을 하게 된다.

쓰치야의 이와 같은 참회와 활동들은 일본 내 반전평화운동과 인죄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중국에서 그의 참회록들이 번역 출판되거나, 그가 사죄를 목적으로 피해자들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후손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는 장면 등이 담긴 관련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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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병 쓰치야 요시오의 제복 사진 그대로 실은 책 뒷표지. ⓒ 지문당

'일본 헌병 쓰치야 요시오 참회록'이란 부제의 이 책 <인간의 양심>은 ▲비교적 유순하게 자란 한 청년이 어떤 과정으로 살인마가 되는지 ▲제공사건이나 장혜민 사건 등 중일 전쟁 당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여러 사건들의 진실 ▲만주사변처럼 어떤 목적을 위해 일본이 벌인 수많은 자작극, 그 방법과 과정 ▲일본 군국주의는 어떤 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몰았을까 ▲일본의 뼈저린 반성은 무엇을 위해 필요할까 등을 들려준다.

쓰치야가 만주 일대에서만 군인 생활을 했던 만큼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중일전쟁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들이 좀 많았다.

그래도 책을 끝까지 놓지 못했던 것은 그동안 책이나 TV와 같은 매체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만행들을 접할 때마다 궁금했던 '패망 수십 년 째, 일본은 왜? 명백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있는 사실들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가? 그 시작과 실체는 무엇인가?'를 비롯한 일본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다.

쓰치야의 참회에 우리가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중일전쟁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 그 연장전이자, 우리 역시 중일전쟁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제의 조선 침략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이나 이야기들은 피해자인 우리 스스로의 기록이나 연구 등에 의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가해자 스스로 기록인 <인간의 양심>에 대한 관심은 또한 필요하겠다. 쓰치야가 입대할 무렵 일본 일부 지역에선 흉년으로 딸 매매가 급증했었다고 한다. 일본의 농촌과 민중들의 당시 현실을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들 때문에 놓지 못하고 읽은 책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인간의 양심>(하나이카 야스시게 씀) | (강천신 옮김) | 지문당 | 2017-09-30 ㅣ정가 19,000원

인간의 양심 - 일본 헌병 쓰치야 요시오(土屋芳雄)의 참회록

하나이카 야스시게 지음, 강천신 옮김,
지문당(JIMOONDANG), 2017


#중일전쟁 #쓰치야 요시오 #간도협약 #만주사변(9.18사변)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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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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