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빵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요즘 대세는 '빵맥'

[빵터지는 빵투어] 군자동 초이고야에서 빵 한 조각과 맥주 한 잔, 그리고 휴식

등록 2018.04.15 11:31수정 2018.04.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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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빵을 맛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곳 ⓒ 이하성


시간이 생긴 날, 훌쩍 나가고 싶은데 꾸미고 다니기는 싫고…. 그렇다고 어디에 쭉 있기보다는 잠깐의 기분 전환이 필요한, 딱 그런 날엔 빵을 사러 돌아다녀 보는 건 어떨까?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듯 베이커리도 개성 넘치는 곳이 많아져, 골라 다니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식당처럼 혼자 들어가는 걱정도 필요 없고, 그 자리에서 뭘 꼭 먹을 필요도 없다. 그저 부담 없이 출발해 보자.


몇 년 전 언젠가, 시험을 보러 천호동 쪽을 들른 적이 있었다. 항상 어딘가를 가면 근처의 빵집부터 검색해보는 습관이 있어 멀지 않은 군자동 근처의 제법 유명한 빵집을 점찍어두고 시험이 끝난 후 부랴부랴 찾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엔 오후 1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부터 빵을 사려는 손님들로 건물을 타고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당시 줄을 서서 빵을 산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던 나에겐 신기한 일이었고, 기대감이 올라가기도 했다.

그렇게 기다려 빵을 살 순서가 되었을 때, 어렴풋한 기억에 가게 안에 남아 있던 건 스콘 한두 종류와 프레첼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다양한 빵을 먹으니 얼른 집어 담았겠지만 당시 나는 빵하면 크고 묵직한 맘모스빵 스타일의 빵만 찾아 먹었기 때문에 약간은 시무룩해 졌다. 그리고 다음에 방문할 일이 또 있을까 싶었던 이곳, 군자동의 초이고야는 이제 나의 빵 라이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게가 됐다.

사실 저 당시는 달인을 소개하는 어느 TV 프로그램에 초이고야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때라 사람이 몰리고, 빵이 순식간에 동나던 때였다고 한다. 요즘은 저 정도는 아니고, 적당히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을 만큼 붐비는 느낌이다. 이래서 빵집도, 혹은 어떤 것도 첫인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고 하면 조금 멀리 나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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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가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는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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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다양한 빵을 판다. ⓒ 이하성


군자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내외. 도로변에 있는 가게는 주택 건물이 붙어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유리창으로 탁 트인 내부 오른편으로는 빵들이 진열되어 있고, 왼편으로는 약 네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어 앉아서 빵을 먹고 갈 수 있다. 정면으로 카운터와 주방이 보인다.

빵을 살펴보면 익숙한 팥빵이나 에그마요, 소지지 빵도 있고 특히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바게트가 눈에 들어온다. 치즈부터 바질 페스토, 메이플 시럽, 고르곤졸라 치즈, 호두까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바게트들이다. 밤팥호밀빵이나 초코넛 스틱, 크랜베리 크림치즈 같은 하드빵도 매력적인 아이템.


또 빼놓을 수 없는게 스콘이다. 녹차, 통밀, 치즈, 얼그레이 네 종류가 가지런히 진열된 모습이 참 먹음직스럽다. 그밖에 식빵이나 브리오슈, 앙버터, 프레첼도 있고, 브라우니나 코코로쉐 등 과자류도 쏠쏠하게 갖추고 있다. 제법 메뉴가 다양한 편인데, 이런 점은 확실히 풍성한 이미지를 가졌던 옛날 빵집들과 닮아있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메뉴를 뜯어보면 요즘의 스타일이 충실히 반영된 트렌디한 모습이다.

벚꽃 앙금빵, 고수 바게트... '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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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먹음직한 빵들이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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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이 아닌 예고 없이 나오는 빵은 운이 닿아야 구할 수 있다. ⓒ 이하성


"쉐프님 잠은 주무시면서 하시는 거죠?"

계산하거나 빵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눌 때 쉐프님 얼굴을 보면 종종 눈가가 피곤해 보여 건강을 걱정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빵 일을 시작하신 덕분에 나이가 많지는 않아도 경력이 제법 오래되신 쉐프님께 이쯤 되면 빵 만드는 작업이 즐겁다기보단 '일'이 아닐까 싶은데, 막상 또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곳의 재미난 점 중 하나가 예고 없이 그 날만 나오는 빵들. 요즘엔 주로 다양한 샌드위치가 많고, 쉐프님이 독특한 식재료를 구하셨을 때 바로 응용하시는 것도 있다. 다른 분들 말로는 '뭐만 들어오면 다 빵으로 만드신다'니 그 열정이 대단하실 따름. 기억에 남는 건 요즘에도 간혹 보이는 쑥 깜빠뉴나 일본의 벚꽃 앙금으로 만드셨던 벚꽃 앙금빵. 그리고 먹어보진 못했지만 고수 바게트까지, 정말 이름만 들어도 신기한 조합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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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한 스콘. 4 종류가 있다.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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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바게트. 손에 꼽을정도로 맛있는 빵이었다. ⓒ 이하성


"난 거기 가면 좋아. 맛은 개인 기호니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에너지, 사람 사는 기운이 느껴지잖아."

얼마 전 다른 빵집의 사장님께 들은 말이다. 듣고 나니 '아 정말' 싶었던 이 말. 카운터에서 뵐 수 있는 밝고 활기찬 쉐프님과 인자하신 쉐프님의 어머니, 그리고 바쁘게 일하고 계신 직원분들이 만들어내는 활기찬 기운이 있다. 또 삼삼오오 찾아오는 다양한 손님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에너지가 합쳐서 이 곳 초이고야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유독 테이블에 먹고 가는 손님이 많은 빵집이라 자리를 잡고 있다 보면 잠깐 공부나 작업을 하러 온 손님부터 동네 산책 나오신 분, 맞은편 교회에서 오신 분들 그리고 맛집 투어 겸 멀리서 놀러 온 커플이나 부부, 친구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그 연령대도 10대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폭넓은 편.

예전에 어디선가 삶의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재래시장을 둘러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이곳은 시장이랑은 전혀 다르지만 오가는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마치 군자동의 맥이 뛰는 모습을 옮겨다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맥주와 대놓고 어울리는 소시지빵부터 독특한 스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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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이 있고, 음료도 준비되어 있다. 특히 맥주!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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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맥주 대놓고 잘 어울린다 이거! ⓒ 이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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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주를 빵집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 이하성


테이블이 있는 만큼 초이고야에는 커피(메쉬 커피의 원두를 쓰는)나 티 종류도 당연히 준비되어 있다. 또 카운터 옆으로 보면 신기하게도 무려 크라프트 맥주가 갖추어져 있는 게 특별한 점이다. 빵과 맥주, 줄여서 '빵맥'을 즐길 수가 있는 빵집이다! 대낮에 살짝 기분 내며 즐기기엔 사실 호프집보다는 이런 곳이 오히려 제격 아니겠는가. 또한 하루의 피곤함을 가볍게 달래기에도 좋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빵과 맥주는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튀긴 안주보다 기름지지도 않고, 냄새가 밸 걱정도 없어 깔끔하게 한잔하고 들어가기에 그만이다. 게다가 매콤 소시지나 베이컨 크림치즈, 치즈바게트 등은 들어간 재료만 봐도 술안주로 딱이고, 의외로 스콘이나 초코넛 스틱 같은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있는 빵도 맥주와 조합이 괜찮다. 특히 저녁을 살짝 굶은 상태라면 배까지 채울 수 있고. 동생말로는 빵집에서 술을 파는 게 아니라, 술집에서 빵을 파는 거라나?

그러면 술과도 어울리는 이곳의 빵을 한번 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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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페스토의 향과 맛이 풍부한 바질 바게트 ⓒ 이하성


바질 바게트는 바게트를 갈라 사이사이에 바질 페스토를 바른 조합. 바질 특유의 허브향이 강해 군침이 먹기 전부터 넘어가는데, 한입을 베어물면 경쾌하게 바삭하고 바게트의 식감이 먼저 그 매력을 발산한다. 거기에 고소하고 살짝 기름지면서 짭짤한 바질페스토 맛이 입맛을 돌게 해준다. 구수하면서도 씹을수록 고소한 바게트 빵맛까지 더해지면, 단순한 조합임에도 맛이 풍부하게 다가온다. 한번 집으면 멈출 수 없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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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와 초콜릿이 달달 고소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는 초코넛스틱 ⓒ 이하성


초코넛 스틱은 기다란 막대기 모양의 빵 사이사이로 초콜릿과 아몬드, 헤이즐넛 같은 견과류가 듬뿍 박혀있다. 덕분에 겉이 바삭한 빵 식감에 오도독한 견과류가 느껴진다. 또 살짝 기름지고 고소한 맛과 함께 헤이즐넛 향이 풍부하게 느껴지고, 초콜릿의 단맛까지 은근하게 더해진다. 전체적으로 많이 달다기보단 참 고소한 맛이 나는 게 역시나 포인트. 구수한 맛이 나는 질깃한 빵도 터프함이 있어 잘 어울린다. 의외로 술안주로도 제법 쏠쏠하게 어울리는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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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빵의 완벽한 업그레이드 버젼인 매콤 소시지 ⓒ 이하성


매콤 소시지는 어릴 때 누구나 한번 쯤 먹어봤을 소시지빵의 현대판 업그레이드 버젼인 빵. 위에 올라간 치즈와 커다랗게 박힌 소시지가 역시나 눈길을 사로잡는다. 뽀드득하며 한입 베어물면 소시지의 기름진 맛, 식감과 함께 "앗!" 하고 놀라게 되는데, 바로 사이에 숨어있는 할라피뇨의 톡 쏘는 매콤함 때문이다. 이게 느끼함을 없애준다. 짭짤한 치즈와 소시지의 맛과도 궁합이 일품이다.

제법 밀도감 있는 빵 부분은 은근 포만감을 더하고, 매콤함도 잘 감싸 준다. 대놓고 맥주 안주로 좋기에 이 집에서 술을 먹을 때 당연스레 찾게 되는 빵. 한입 크게 베어물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넘겨주면 행복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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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콘은 한때 푹 빠졌던 메뉴 ⓒ 이하성


내가 먹은 스콘은 각각 통밀과 녹차 스콘. 단단하고 수분기가 적어 쿠키와 같은 식감을 가지고 있다. 통밀 스콘은 역시 통밀 특유의 고소한 맛이 흡사 다이제 과자와 비슷한 맛이 난다. 중간 중간 호두까지 씹혀 고소함을 배가시켜준다.

녹차도 역시 비슷한 식감을 가졌고, 차향과 살짝 쌉싸름한 맛이 도는 편. 역시 많이 쓰지는 않고, 화이트 초콜릿의 부드러운 단맛이 더해져 어떻게 보면 은근 달달하다는 느낌까지도 든다. 물론 과하진 않고 둘 다 균형이 잘 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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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만봐도 쑥향이 훅 올라올 것 같은 쑥 깜빠뉴 ⓒ 이하성


쑥 깜빠뉴는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쑥 내음 덕분에 퍽 한국적인 느낌이 감도는 빵. 쑥의 쌉싸래한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너무 강하지 않아 거부감이 없고, 중간 중간 박힌 화이트 초콜릿의 달콤함과 큼직한 피칸의 고소함까지 더해져 더욱 풍부한 맛으로 먹을 수 있다. 빵의 겉은 빳빳하지만 속은 푹신하고 촉촉해 보기보다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편. 약간 쑥떡을 먹는 듯한 느낌도 들고, 독특한 매력을 가진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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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들르면 이런 빵을 만나는 행운도 찾아온다. ⓒ 이하성


"동네 빵집, 두 시간 거리 동네 빵집 가는데?"

빵을 먹고, 사서 집으로 오는 지하철 속에서 문득 생각이 난 말. 초이고야를 참으로 좋아하던 동생은 한때 매일같이 두 시간이 걸려 부평에서 군자동까지 간 적이 있었다. 왜 거기까지 갈까?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할 방법이 없었지만 혼자 이렇게 이 빵집을 찾고 있는 요즘, 동생의 말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과하게 트렌디한 분위기도 아니고 너무 뒤떨어져 촌스럽지도 않은 지금의 20~30대가 생각하는 동네 빵집. 그 편안한 기운이 군자동 그곳에 깃들여 있었다.
덧붙이는 글 월요일, 화요일은 휴무 입니다.
#초이고야 #빵집 #빵 #빵식가 #빵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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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인스타그램 : @breads_eater https://www.instagram.com/breads_eater/ https://www.youtube.com/channel/UCNjrvdcOsg3vyJr_BqJ7Lzw?view_as=subscriber 빵과 빵집을 소개하는 걸 업으로 삼고 싶은 무모한 꿈을 꾸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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