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80억짜리 달콤한 독약'

[주장] 국회의 밀실주의-언어도단, 황당하기 그지 없다

등록 2018.04.09 21:41수정 2018.04.0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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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경위들이 지난 2014년 5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한자(國)를 한글(국회)로 변경된 국회기를 게양하고 있다. ⓒ 유성호


국회의 '밀실주의'와 '언어도단'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8일 국회사무처는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라'는 1심, 2심 법원 판결에 대해 "특수활동비 공개는 국익을 해치고, 행정부에 대한 감시기능을 위축시킨다"라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쉽게 말해 법원이 국익과 감시기능을 위축시키는 판결을 했다는 비판성 의견이다. 하지만 국회는 그동안 특수활동비 문제로 수많은 법적·도덕적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이번 의견서는 매우 부적절하다.

오히려 국회가 특수활동비를 비공개로 유지한 것 때문에 온갖 문제가 발생했다. 일례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5년 소셜미디어를 통해 원내대표 시절 월 4000만 원의 국회대책비(특수활동비)를 받아 생활비로 사용했다고 고백해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이 발언으로 예산감시를 전문적으로 하는 시민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측에서는 지난해 11월 24일 서울지검에 홍준표 대표를 특수활동비 횡령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 고발에는 시민 884명의 서명을 첨부했다.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달콤한 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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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전경. ⓒ freeimages


국회는 매년 80억 원이 넘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면서 그 사용처를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이로 인해 온갖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이번 재판과정에서 알게 된 특수활동비 명목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포함돼 있었다.

'2013년도 국정감사 관련 특수활동비 지급' '상임위원회 정기국회 대책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활동비(매월)' '윤리특별위원회 활동비(매월)' '인사청문특위(대법관임명동의) 활동비' '체코 상원의장 일행 초청경비' '한일여성의원포럼 개최 관련 일본여성의원대표단 초청경비' (http://www.peoplepower21.org/Politics/1537338)

아무리 살펴봐도 그 용도가 모호하며, 일반 예산으로 지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선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재판과정에서 국회사무처 측에서 공개할 수 있는 일부 샘플을 재판부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것만 공개하는 것은 조정 합의가 어렵다고 판단했다"라면서 "국회 의견서 제출은 1심, 2심에서 낸 거랑 비슷하다, 의견서는 정성스럽고 길게 썼으나 내용은 이치에 맞지 않게 기괴했다, 국회사무처 입장에서 이번 정보공개청구가 전직 의장 및 사무총장의 특수활동비 공개가 포함돼 있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국회 스스로 특수활동비 문제에 묶여 있으니 정부의 특수활동비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사건'까지 터져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수활동비로 유흥주점 및 골프를 접대하다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발각돼 낙마한 사례도 있고, 국정원 직원은 특수활동비로 불륜을 저지르다 부인한테 특수활동비에 대한 재산분할 및 정보공개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수활동비는 전 정권 비리의 핵심이었다. 영수증과 사후정산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는 입에는 '달콤한 독약' 같은 역할을 했다.

공청회를 열면 뭐하나... 여전히 그대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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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연구소 전진한 소장이 2015년 10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특수활동비 제도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도 이런 문제를 개선한다면서 지난 2015년 10월 27일 '특수활동비 제도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연 적이 있다. 당시 필자도 참석해 "국회에서 쓰는 특수활동비는 대승적 차원에서 없앨 필요가 있으며, 정부에서 지출하는 특수활동비는 사후적 공개 및 정산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참석했던 많은 국회의원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서 공감을 표시했다. 당장이라도 제도개선이 있을 것처럼 공청회는 마감했지만, 2018년 4월 현재 국회는 특수활동비가 공개되면 국익을 해치고, 행정부의 감시기능을 해친다는 황당한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있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2018년 정부 특수활동비는 많이 줄었다. 2018년도 예산안은 2017년도 예산 대비 739억5500만 원 감액(18.7%)했다. 특히 특수활동비 예산이 상대적으로 크게 편성된 국방부와 경찰청은 전년 대비 334억4200만 원(18.4%), 271억4800만 원(20.9%)을 줄였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여전히 특수활동비는 사후적 정산을 하지 않고 있으며, 감사 및 정보공개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국회 스스로가 특수활동비 전체에 대해서 공개하지 않으면 근본적 제도개선은 힘들다. 자신들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정부 특수활동비를 제도적으로 공개하라고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정신을 깨달아야 한다. 시민들이 국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으면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존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전진한 기자는 알권리연구소 소장입니다.
#국회특수활동비 #무신불립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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