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안 보이던 노조가 나타났다"
삼성이 직원 불만을 급하게 해결한 이유

[삼성에서 노조하기 ②] 연승종 삼성에스원지회 부지회장

등록 2018.04.11 07:43수정 2018.04.1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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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최근 삼성그룹의 노조파괴 문서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삼성은 창립 이후 '무노조 경영'이라는 방침을 고수하며 노조 설립을 방해해 왔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영원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노조가 이미 여럿이다. 그들이 노조를 만들고 삼성과 맞서왔던 과정이 모두 삼성노조의 역사다. 그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를 통해 싣는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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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노조와 삼성 직원들 삼성서초사옥 정문쪽에 설치된 철제 펜스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노조와 삼성 직원들 ⓒ 신지수


"OO아! 나 알지? 너 나 알잖아. 정말 이러기야? 들어가게 해줘."

연승종 삼성에스원지회 부지회장은 한참 어려보이는 사람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상대는 삼성전자 본관에 경비·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삼성에스원 소속 직원이었다. 연 부회장의 동료이자 후배였다. 그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연 부지회장을 도로 쪽으로 밀쳐냈다. 연 부지회장은 검찰이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을 다수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면담을 요구하러 온 길이었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삼성그룹 계열사 4개 노동조합은 삼성의 노조파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 부회장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건물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했다. 이 부회장을 만날 수 없다면 면담요청서만이라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삼성에스원 소속 직원 10여명은 철제 펜스를 설치하고 이들을 막아섰다. 그 와중에 연 부지회장이 낯익은 얼굴을 본 것이다.

연 부지회장이 그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삼성 본관으로 진입하려던 노조 조합원 20여 명과 삼성에스원 직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철제 펜스가 들릴 정도로 과격한 상황이었다. 연 부지회장은 "우리 미래의 조합원들이니, 다치면 안 된다. 조심해 달라"라며 "같은 노동자들끼리 이러지 말자"라고 조합원들을 진정시켰다. 결국 노조는 철제 펜스 밖에서 면담 요청서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틀 후인 지난 5일 연 부지회장을 그의 근무지역인 경기도 시흥 인근에서 만났다. 그는 왼쪽 팔뚝에 '에스원 SECOM'이라고 회사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날 삼성본관 앞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자 그는 "다 아는 사이다. 나중에는 우리 조합원이 될 사람들이고"라며 "나쁜 놈은 따로 있는데 우리끼리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에스원에서만 24년 근무한 연륜이 묻어났다.

"임원은 연봉 1억 원 오르는데, 노동자는 1%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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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스원노조 연승종 부위원장 삼성에스원노조 연승종 부위원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3일 오전 11시 서울 삼성전자 서초본관에 들어가려다, 본관을 지키는 직원에게 가로막혔다. ⓒ 신지수


그를 만난 건 그 어렵다는 '삼성에서 노조하기'에 어떻게 나섰는지 궁금해서였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 이유는 너무나 평범했다. "임금이 동결되고", "노동강도가 세지고", "근로조건이 퇴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이 노조를 대신해 내세우는 '노사협의회'로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연 부지회장은 "잘못 된 걸 바꿔보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노사협의회의 역할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삼성에스원지회는 지난해 7월 설립됐다. 지난 2011년에 설립된 삼성지회(에버랜드)나 2013년 설립된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비교하면 신생 노조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삼성이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계획이 담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폭로됐고,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이런 환경에서 앞선 노조들에 비해 삼성에스원지회는 상대적으로 설립에 어려움이 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측은 예전처럼 대놓고 징계하거나 해고시키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방법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삼성에스원지회가 설립되자 18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유령노조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한 사례다. 연 부지회장은 "그것도 삼성의 노조 무력화 수단"이라며 "그쪽 노조와 더 좋은 조건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우리 힘이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연승종 부지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삼성에스원에서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됐나? 노조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1995년에 입사해 이제 24년 차다. 2010년에 노사협의회 사원대표를 했었다. 소위 말하는 '강성'이었다. 노사협의회에 들어가 온갖 '꼬장'을 부려 2년 동안 임금을 14% 정도 올렸다. 그러고 나서 연임하려고 출마했는데, 방해 공작이 심했다. 경인(경기·인천)사업팀 전체에서 '연승종은 찍으면 안 된다'라는 소리가 엄청났다.

팀 전체가 440명인데 내가 속한 영업 부문은 60명밖에 안 된다. 출동인력이 220명으로 과반수다. 통상 노사협의회 선거를 하면 부문별로 1명씩 나오기 마련인데, 영업 부문에서만 3명이 나왔다. 출동 부문에서 1명이 나왔다. 물론 내가 못나서 떨어졌겠지만, 영업 부문에서 갑자기 후보가 많이 나와 표가 분산된 건 사실이다. 결국 노사협의회 대표가 되지 못했다."

- 노사협의회 사원대표가 되지 못한 게 노조 설립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가?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다. 비록 내가 떨어졌지만 노사협의회가 어떻게 진행되나 계속 관심이 가더라. 그런데 노동자들이 충분히 얻어올 수 있는 부분도 다 놓쳤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에스원의 매출은 완만히 상승하고 있었다. 임원들의 임금은 1억 원 가량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2015년에 직원들은 임금이 동결됐다. 2016년에는 1% 올랐다. 2017년에는 1.1% 올랐다. 회사 상황이 딱히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그러는 사이에 근로조건은 더 악화됐다. 회사의 매출이 늘어난다는 건 관리해야 하는 건물의 수가 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CCTV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걸 관리하는 인력들의 업무가 상당히 과중됐다. 그래서 영상기기 수리 업무를 외주 줬다. 그런데 2014년에 그 업체에 나가는 돈이 너무 많다면서 다 잘랐다. 그럼 그 일은 누가 해야 하나? 사람을 안 뽑으니 남은 인력들이 그 일을 다 해야 한다. 월급은 1% 오르는데 말이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 삼성은 노사협의회를 노조의 대항마로 내세웠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에게는 별로 실효성이 없었던 것 같다.
"실질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노사협의회는)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영업 사원들에게 적용된 성과급제도만 봐도 그렇다. 노사협의회에 대표로 들어간 17명 중에 영업부분은 3명밖에 없다. 그러니 성과급제도가 뭔지, 영업 직원들의 의견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받아들였다. 영업이라는 게 단지 신규 가입자만 유치하면 되는 게 아니다. 계약 연장, 관리 등 잡다한 업무가 많다. 그런데 단순히 신규를 얼마나 했는지만 보겠다는 거다. 전면 도입된 건 아니지만 회사에서 성과급제도에 사인하게 온갖 압력과 회유를 한다.

많이 받는 사람은 많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0년 넘게 일한 과장이 190만 원 받는 경우도 생긴다. 신규가입은 지역별로도 차이가 크다. 서울 강남하고 저기 강원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성과급제에 사인하면 신규가 많은 곳으로 보내준다고 하고, 거기에 원래 있던 사람한테는 '새로 오는 사람이 성과급제 하는데 넌 어떻게 할 거냐'라는 식으로 한다. 그러면 그 사람도 불안해서 하게 된다. 계속 버티는 사람은 거주지에서 먼 곳으로 발령을 내버린다. 갑자기 주말부부가 되는 거다. 그러고 성과급제에 사인을 하면 다시 가까운 곳으로 발령을 내준다. 노사협의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 못하니까 사람들이 나한테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난 노사협의회 대표도 아니고 동료들의 불만이나 민원을 해결해 줄 지위나 힘이 없었다."

"왜 노사협의회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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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승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삼성에스원지회 부지회장. ⓒ 최지용


- 그래서 결국 노조를 설립하게 됐다. 하지만 삼성은 '무노조 경영'이라는 방침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고, 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사례도 많았다. 에스원노조 설립과정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나?
"지난해 7월 28일에 노조를 설립했다. (사측에서) 위원장에게는 '억만금을 주겠다'는 표현도 했다. 나에게도 '(노조 설립을) 하루만 늦춰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말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회사를 24년 다녔다. 위원장은 26년차다.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나선 조합원들이 평균 20년 이상 근무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돈이 더 필요하다. 단지 돈이 필요했다면 노조 안한다. 우리가 이걸 왜 하겠나. 잘못 된 걸 바꿔보겠다고 하는 거다. 우리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사회적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니 회사도 함부로 못했다고 생각한다."

- 노조 설립 후에 회사의 태도가 변한 게 있나?
"우리를 탄압해서 우리의 의지를 무너트리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거다. 그러니 이후에는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쪽으로 갔다. 아까 영상 부문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지난해에만 무려 72명을 뽑았다. 노조가 만들어지니까 노사협의회가 큰일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부랴부랴 뽑은 거다."

- 노조가 생기니까 현안이 해결됐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 문제가 해결됐으니 잘됐다고 해야겠지만, 회사는 그 문제를 그대로 두면 사람들이 불만이 쌓여 노조로 몰릴 거라 예상하고 미리 현안을 풀어준 거다. 가입할 마음이 있던 사람도 '노조 없어도 회사가 다 해준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놓고 '노사협의회의 노력에 힘입어 관철됐다'는 식으로 홍보한다. 여태까지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던 걸 한꺼번에 풀면서 '노조 필요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거라 생각한다.

영업 부문에서 불만이 많았던 성과급 제도도 다시 기본급 제도로 바꿀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성과급제로 바꾸라고 괴롭혔던 사람들이 다시 기본급으로 하고 싶은 사람은 바꿔도 된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것도 노조에 힘을 빼려는 전략이라고 본다."

- 2012년 공개된 'S그룹 노사전략' 문서를 보면 노조를 고립시켜 '고사'(말라 죽다)시키겠다는 전략이 나온다. 그런 사례는 없었나?
"노조의 네이버 밴드를 만들었다고 노동자들한테 홍보한 적이 있다. 밴드에 뭐가 있나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익명으로 노조 밴드에 가입했는데, 10분도 안 됐는데 사측에서 '(밴드) 탈퇴하라'라고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조도 아니고 노조밴드에 가입한 것인데 연락이 온 것이다. 충격이었다.

또 에스원 전 직원 6100명이 가입한 네이버밴드 '두잉두잉'이 있다. 밴드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언론에 나온 (삼성의) 문제나 사회경제 이슈들을 올리면 바로 삭제하며, 글 올린 사람은 바로 탈퇴시키는 식이다. 그렇게 2회 탈퇴가 될 경우 재가입이 불가능하다. 사내 여론을 통제하는 것이다. 전 직원이 6100명인데, 그 밴드 가입자가 6300명인 것도 의문이다."

- 삼성은 또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조를 설립하려 할 때 어용노조, 일명 '알박이 노조'를 만들어서 대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에스원의 경우는 어땠나?
"우리는 이미 지난 2000년에 설립된 어용노조가 있었다. 지난 18년 동안 한 번도 교섭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동안 어떤 공지도 없었다. 우리가 노조를 설립하고 교섭을 하겠다고 하니까 그 노조가 갑자기 개별교섭을 신청했다. 회사는 또 그걸 받아줬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하지 않고 별도 교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쪽 노조와 더 좋은 조건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우리 힘이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도 회사쪽의 노조 무력화 수단이라고 본다."

- 왜 삼성에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역으로 왜 노사협의회가 필요하냐고 묻고 싶다. 노사협의회의 역할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노사협의회는 협의를 하지만 노조는 합의를 한다.

그리고 지금은 거창하게 '삼성에 노조가 필요한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삼성 에스원'에는 노조가 필요하다. 후배들 때문에라도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후배들, 특히 출동요원들은 혹사당하고 있다. 야간 근무에 시달리고 한 달에 5~6일밖에 못 쉰다. 그러니 입사 1년 미만 퇴사율이 30%에 육박한다. 후배들의 업무 과중 문제가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임금피크제도 문제다. 정년이 60세인데, 노사협의회에서 노동자들의 동의도 없이 '별도 지침에 따른다'라고 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버렸다. 그 결과 경력 25~30년차인 55세 직원들의 급여가 총 30% 깎이게 됐다. 58세 때에는 연봉이 3000만 원대로 떨어진다. 31년 다닌 분이 월 200만 원대를 받는다. 명백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라 동의가 필요한데도, 노사협의회에서 마음대로 도입해버린 것이다. 이런 폐단을 끝내야 한다. 노조가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 검찰이 삼성의 노조 파괴 공작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했다. 기대가 있나?
"우리도 그 문서가 어떤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도 부당노동행위 등 입증할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검찰 조사가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삼성에서 노조하기 ①] 조장희 삼성지회 부지회장
"검찰이 이번엔 삼성 수사 제대로 할까요?" 7년간 싸워온 그가 여전히 의심하는 까닭
#삼성 #삼성에스원 #삼성노조 #이재용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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