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옥사' 대통령, 이제 그와 결별하자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에필로그 : 흐르는 게 강이다

등록 2018.04.14 14:55수정 2018.04.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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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도나우 운하를 운행하는 주요 화물선. 마인-도나우 운하를 운행하는 주요 화물선. ⓒ 생태지평 장지영


10년 전, 나에게는 비행기표 두 장이 있었다. 시민 정치를 꿈꿨던 사회단체 인사들로부터 남미의 진보정치를 둘러보자는 취재 제안을 받았다. 다른 한 장은 당시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반도대운하' 공약을 검증할 티켓인 독일-네덜란드 운하 취재였다. 환경단체인 '생태지평'이 제안했다. 나에게는 첫 해외 취재의 기회였고, 둘 다 매력적이었다.

<오마이뉴스>가 부담해야 할 취재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선배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뉴스 가치로 치면 남미 취재는 여러 사람이 다녀와서 특별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개고생 취재] 기저귀 차고 페달을 밟다

2007년 2월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운하 선진국인 독일과 네덜란드를 취재하면서 한반도대운하의 '새빨간 거짓말'을 확인한 뒤에도 멈출 수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운하를 강행했고, 그해 9월에 운하 전도사였던 이재오 전 의원도 운하 깃발을 걸고 낙동강과 한강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나는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그들을 추격했다.

부산으로 내려가기 하루 전날, 사회부 막내였던 박상규 기자에게 거드름을 피우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링 위에 올라가 한 대도 안 맞고 싸울 순 없지. 이재오 일행을 따라가면 어쩔 수 없이 한반도대운하를 홍보할 수밖에 없고, 이를 반대하는 독자들로부터 7대 정도는 맞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권 욕심만 있지, 운하는 잘 몰라. 적어도 기사를 쓰면서 3대 정도는 때릴 수 있을 것 같으니 추격해보자고. 오늘 자전거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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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낙동강 하구 을숙도 공원에서 경부운하길 자전거 탐사 출발에 앞서 지지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박상규


부산 을숙도에서 만난 이재오 일행은 오마이뉴스의 '헝그리 정신'을 추켜세우기도 했지만, 개고생이었다. 5박 6일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씩 자전거를 타면서 안장 위에서 현장 기사를 올리기도 하고, 한 손으로 캠코더를 돌렸다. 사타구니가 쓸려서 자전거 안장만 봐도 치가 떨릴 즈음, 이재오 일행이 건넨 기저귀를 차고 페달을 돌렸다.    

결국, 나는 "3대를 때렸다"고 자평했다. 오마이뉴스 현장중계 기사를 본 한 독자가 이재오 일행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린 구간과 거리를 측정해서 경찰에 고발했고, 총 300만 원의 벌금을 냈다. 오마이뉴스 기사와 사진은 도로교통법 위반의 증거로 경찰에 제출됐다. 

그 뒤에도 미국과 일본으로 날아가 댐과 운하의 문제를 탐사 보도했다. 2010년 9월에는 낙동강에 뗏목을 띄워놓고 운하 반대 생중계를 하다가 좌초되는 불상사도 있었다. 나는 "강물에 빠져 죽으려고 애써도 구명조끼를 입으면 어쩔 수 없이 뜬다"고 우기면서 일주일 동안 뗏목 생중계를 하고 싶었지만, 안될 말이었다. '발로 쓴 4대강 현장 리포트'를 쓰는 데 만족해야 했다.

편집국장을 지낼 때는 4대강에서 잠시 손을 떼고 환경 전문 시민기자인 최병성 시민기자에게 바통을 넘겼다. 최 기자는 '1인 군대'였다. 그가 <아! 死대강> 연재기사를 올릴 때마다 평균 수십만 클릭을 기록했고, 기사 한 건에 1백만 이상의 조회 수를 올리기도 했다. 최 기자는 직업 기자인 나보다 더 위력적인 기사로 이명박 정권을 궁지로 몰았다. 

내가 4대강 사업에 대한 관심의 끊은 건 아니었다. 연례행사처럼 매년 1~2번은 현장 취재를 했다. 김종술, 정수근, 이철재 시민기자 등 '4대강 독립군'과 함께 비를 쫄딱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취재했다. '국민 모금'으로 마련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물에 뛰어들어서 매년 죽어가는 강의 처참한 모습을 기사와 페이스북 등으로 생중계했다.

시민기자와 직업기자가 환상적으로 결합한 개고생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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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4대강 사업 중단 촉구 낙동강 700리 뗏목 대장정'에 참여한 대구경북 골재노조원과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태운 뗏목이 4대강 공사가 한창인 낙동강 상주 구간을 지나고 있다. ⓒ 권우성


[함께] 시민기자와 상근기자, 선배와 후배
          
4대강 기사만 수백 편을 쓰다 보니 후배 기자들에게 이런 타박도 들었다.

"선배, 또 4대강이야? 전에 쓴 기사랑 내용이 많이 겹치잖아요."
"선배, 이 문장은 진짜 오버하는 것 같은데."

이런 말을 듣고 속이 불편할 때도 있었다. 소심한 나는 후배들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그때마다 가슴앓이했다. 사실 내 방식과 관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다. 후배조차 설득시키지 못하는 기사에 공감할 독자는 많지 않았다. 일부 후배들의 지적은 좀 더 단단한 취재와 기사를 위한 보약이었다.

이렇게 <오마이뉴스>는 4대강 기사를 함께 썼다. 이 과정에서 시민기자들의 헌신적인 활약은 우리가 10년 동안 '이명박근혜 정권'의 4대강 사업을 감시하면서 대안언론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커다란 힘이었다. 나에겐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나는 월급을 받는 직업기자였지만, 이들은 막노동을 하며 번 돈을 취재비로 쓰면서 죽어가는 강의 모습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2017년 12월 20일부터 <오마이뉴스> 10만인리포트와 <다음 스토리펀딩>에 연재하기 시작한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은 지난 10년간의 나의 취재 기록이자, 우리들의 공동 기사이기도 했다. 이번에 오마이TV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기획 제작한 미니 다큐 5편도 '4대강 독립군'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할 합작품이었다.


[십시일반] 2700명의 마음이 모였다 

5편의 미니 다큐를 포함해 총 25편의 콘텐츠를 후원한 독자만도 2700여명(다음 스토리펀딩과 <오마이뉴스> 자체 펀딩 포함)에 달했다. 1000원부터 100만 원에 이르기까지 십시일반해서 지금까지 보내주신 오마이TV 다큐 제작 지원금은 총 6200여만 원이다. 4대강 부역자들을 응징하고, 죽은 4대강을 살리자는 취지의 응원 댓글도 뜨거웠다. 

"좋은 강,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강! 지키기 위해 수고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적지만 죄송한 마음으로 후원합니다."(김애숙)

"힘드시겠지만 끝까지 밝혀서 이명박이라는 존재와 그 잔당들이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도록 수고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김대용)

"시간을 내어 공익을 위해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함과 미안함을 대신합니다. 분노와 비난만 했을 뿐, 4대강에 끊임없이 지속적인 취재와 행동으로 옮겨주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응원합니다)

"이명박 씨가 낙동강 물에 커피 타 먹는 그날까지."(조단비)

"우리 아이들에게 맑은 물을 남깁시다.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정으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마음으로 정직하고도 맑게 남겨줬으면 합니다."(짜르트김)

"<오마이뉴스>의 4대강 다큐가 MB의 뻔뻔한 양심을 침몰시켜주길 기대하고 응원합니다.(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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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카약을 탄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와 '낙동강지킴이' 정수근 시민기자를 비롯한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도동서원앞 녹조 가득한 낙동강에서 멸종위기 물고기 '흰수마자' 그림에 '나는 살고 싶다' 글을 적은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이희훈


후원자와 독자들의 응원도 실패한 4대강 사업을 기록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금 감옥에 있는 것은 정의와 진실을 바라는 이런 마음들이 모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4대강 사업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고, 부역자들은 강을 망친 죗값을 받지 않았다. 

오마이TV와 10만인클럽이 최근 미니다큐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5편을 제작하고, 올해 하반기에 이를 재구성해 영화로 개봉하는 것은 4대강을 10년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4대강 사업으로부터 뼈저린 교훈을 얻기 위해서이다. 기록은 우리의 기억과 역사를 지배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연재를 마치며] 새로운 흐름을 위하여

10여 년 전부터 나는 매일 아침 두 바퀴로 두 개의 강을 건넌다. 안양천과 한강이다. 어제도 건넜고 오늘도 두 강을 건넜다. 훤히 내비치는 강물 속에서 떼를 지어 진군하던 숭어 몇 마리가 튀어 올랐다. 민물가마우지는 활주로를 이륙하듯 두 발로 강물을 차면서 솟구쳤다. 강둑에는 눈꽃처럼 벚꽃이 날렸다. 철쭉과 조팝나무는 붉고 흰 꽃망울을 터트렸다.

내 몸에도 두 개의 강이 흐른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동맥과 모세혈관이 뛴다.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들숨은 혈액에 실려서 온몸의 세포에 산소를 공급한다. 내가 내뱉는 날숨은 동맥과 모세혈관에 실려 온 노폐물을 밀어낸다. 흐르는 강물처럼 내 몸도 매일 낡은 것을 밀어내며 흐르고 있다. 

지금 감옥에 갇혀 '무술옥사(戊戌獄事)'를 외치는 낯 뜨거운 대통령은 뒷물결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것이다. 탐욕스러운 지도자에 의해 잠시 멈춰 섰던 4대강은 다시 페달을 밟으며 새로운 앞 물결을 만들 것이다. 5년짜리 대통령이 강을 소유하려 했던 광기의 역사를 밀어버리고 굽이쳐 흐를 것이다. 흐르는 게 강이다. 흐르는 게 생명이다.    

후원자-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마이TV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만든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미니 다큐 제작에 후원을 해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쓴 25편의 원고는 재구성해서 단행본(오마이북. 9월경 출간)을 만들 예정이며, 5편의 미니 다큐는 새롭게 단장해서 올해 하반기에 영화(제작 : 오마이뉴스, 감독 : 안정호 안민식, 투자/배급 : 스톰픽쳐스코리아)로 개봉할 예정입니다. 후원자 여러분들의 이름을 영화 엔딩 크레딧으로 새겨서 4대강 살리기 역사에 기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이명박 #4대강 #4대강 독립군 #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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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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