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부터 야간수업까지, 남은 건 '종합병동'인 내 몸

[골골골 내 인생] 일을 위해 몸을 버려야 하는 삶과 작별하다

등록 2018.04.25 08:33수정 2020.05.0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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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장수'라는 말을 아시나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일과 스트레스로 각종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웃픈' 현실을 뜻합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애환을 들어봤습니다.[편집자말]
"조직의 관점에서 질병은 중요하지 않다. 임신이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삶이 '커리어'로 이해될 때 이력서는 몸이 연장된 것이 되고, 이력서 상의 빈틈은 조직에서는 낙인과 같다. 사람들 대부분은 직장에 다녀야 하므로, 아픈 사람이 '생산성'을 자신의 가치를 재는 척도로 받아들이지 않기란 어렵다." -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저는 목이 멀쩡하지 않습니다."
  
새 학교의 교장이나 교감과 만나는 첫 대면에서 나를 이렇게 소개하곤 했다. 교직생활 동안 침묵하기를 강요당하거나 배웠던 내가 어느 날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루아침에 이런 배짱과 용기를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아픈 몸을 살다>의 저자 아서 프랭크가 암에 걸린 아픈 몸을 살아내면서 써 내려간 통찰의 문장처럼, 나는 교직 생활 초반부터 오랫동안 '무능하고, 생산성 낮은 실패한 노동자'란 죄책감에 허덕였다.

병가 쓰면서도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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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녹용도 지어 먹고, 홍삼과 수삼 달인 물들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기름이 둥둥 뜨는 흑염소도 달여 먹고 했건만 샘솟듯 넘쳐나는 일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 unsplash

 
2003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0교시(오전 8시경)부터 보충수업을 시작했고, 1교시부터 6·7교시 정규수업까지 마치고도 오후 4시경부터 6시까지 다시 보충수업을 했다. 영어와 수학 교사는 '학습부진아 수업'도 해야 했다.

오전 8시경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 않고 가동되는 몸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남아서 오후 10시까지 야간자율 학습 감독이나 학생면담을 해야 했다. MB가 대통령이 되자 '학교 자율화'란 명목으로 오후 7시부터 9시경까지 야간 수업이 부활했고, 거기에 또다시 투입되었다.

'벌어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 '밥벌이의 비루함'을 안 후, 몸뚱어리가 전 재산이란 절박함에 몸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철마다 녹용도 지어 먹고, 홍삼과 수삼 달인 물들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기름이 둥둥 뜨는 흑염소도 달여 먹고 했건만 샘솟듯 넘쳐나는 일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도 내 일을 동료들에게 떠넘기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고, 학생들에게 소홀할까 노심초사했고, 학부모들에게 열정 없는 교사로 낙인찍힐까 불안한 날들이 길게 이어졌다.

"목을 쉬게 해야 합니다."

속 터지는 의사의 충고가 야속하기만 했다. 각종 약과 항생제를 밀어넣어도 도저히 한 마디도 나오지 않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병가를 신청했다. 죄인인 양 교감 앞에서 사정을 말할 때는 말보다 눈물부터 쏟아졌다. 법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 외에 하루 평균 3~4시간씩 더 일하다 병이 났는데도, 법에서 정해진 병가를 내면서도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좌불안석인 내가 초라하고 안쓰럽고 한심했다.

삼십 대 언저리, 오래 쓰지도 않았고 앞으로 써야 할 기간이 더 남은 몸인데도 시름시름 했다. 수시로 임파선이 부었고, 염증이 생기기 시작하면 두통, 치통, 편두통, 위염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치과부터 이비인후과, 내과, 한의원을 전전긍긍해야 했다. 병원 순례를 하는 나를 동료들은 '종합병동'이라고 불렀다. 한번 철로를 이탈한 건강은 다시 제자리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탄스러웠다.

한국에서 직업을 유지하는 일이 '죽음을 향한 열차에 가속 엔진을 다는 일'이란 자각이 왔을 때쯤 나는 잠시 일을 쉬기로 했다. 교단에 서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 즐거웠지만,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입에 풀칠을 시켜주는 남편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휴직 기간에도 삶의 질이 자꾸만 낮아졌다. 호흡기 약자인 나는 미세먼지가 짙게 자주 내려앉는 날들이 두려웠다. 목이 따끔거려서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낮에는 눈에 누런 셀로판지 막을 씌운 것처럼 이물감이 느껴졌다.

결국 우리 부부는 호주에 이민 가기로 했다. '미세먼지 농도 알림 앱'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한국의 편리했던 삶과 '새와 바람소리'로 시작하는 호주의 불편한 일상을 맞바꿨다.

호주에서 위로받은 애환... 건강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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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파란 하늘 사시사철 미세 먼지 없는 맑은 공기는 호흡기 질환에서 자유롭게 해줬다. ⓒ 이혜정


호주 멜버른의 삶은 한국에서 갓 넘어온 사람에게 형언할 수 없이 불편했다. 이민 선배들의 말대로, 이곳은 '돈지랄' 할 곳이 큰 집과 비싼 차 밖에 없는 듯했다. '갑질 천국' 한국처럼 돈만 지불하면(물론 그 금액도 이곳에서 보면 우스운 수준이지만) 제한 없는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애당초 접는 것이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돈 쓰면서 필요 이상의 서비스를 요구하지도, 제공할 의사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다.

모든 주유소는 셀프다. 아이들이 오후 3시 30분 하교를 하면 부모가 돌보거나 각종 특별활동 장소로 직접 실어 나른다. 이사는 손수 하나씩 포장하고, 택배는 기사가 갖다 주는 속도에 맞추고, 음식 배달문화는 첫걸음을 뗀 수준이다. 대중교통은 느리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2주일이 걸린다. 불편한 주택생활이 기본이고, 도시락은 매일 손수 싸야 했다.

다행이도 '돈만 많으면 살기 좋다'던 한국에서 돈이 충분했던 적이 없었고, 건강 약자가 된 후 느리게 천천히 영위되는 삶을 오랫동안 연습해왔기에 큰 불만과 불편을 모르고 산다.

한국에서 야근을 밥 먹듯 했던 남편이 주당 38시간만 일하고도 연중 20일의 휴가와 10일의 병가를 눈칫밥 없이 받아쓰는 걸 보며 한국에서 겪던 월급자들의 애환을 위로 받는다. 사장이 Mr(미스터)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교사는 Ms(미즈)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불러 달라 요구할 때, 한국의 관료제와 위계질서에서 받은 수모를 보상받는다.

정규직보다 계약직의 임금이 훨씬 높아서 계약직을 선호한다는 한국인 지인의 증언에 비로소 비정규직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려놓는다. 등굣길에 최고급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한 학부모의 구멍 난 바지와 안전화와 안전조끼를 입은 소탈한 모습에 마냥 즐겁다. 나이·직업·연봉·대학·출신국가·결혼 여부처럼 차별이나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될 만한 질문은 삼가는 것이 예의인 국가의 흔한 모습이다.

이곳도 한국처럼 하루 8시간 남짓의 노동은 고단하고 강도도 높다. 다만 노동자에게는 법에서 정한 테두리 밖의 노동을 거부할 권리가 당연시 되고 보호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국의 흔한 '야근 공동체' 문화가 없어서 노동과 개인의 삶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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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서 바리바리 챙겨온 각종 약을 폐기처분했다. ⓒ unsplash


얼마 전, 한국에서 바리바리 챙겨온 각종 약을 폐기처분했다. 치과와 부인과 정기검진을 제외하면 병원 한번 갈 일이 없었다. 멜버른의 명물인 파란 하늘과 폐부를 찌르는 상쾌한 바람이 최적의 치료제가 되었다.

때 이르게 찾아온 몸의 질환들과 아직은 젊은 정신이 조화를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마음을 졸였다. 긴 암흑의 시간들을 겨우 살아내며, 건강하지 않은 사람도 나름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고통을 알아봐주면 고통은 줄어든다'는 아서 프랭크의 문장처럼 나도 이제는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평생 해본 적 없던 글을 쓰게 된 이유도 결국은 부실한 몸이 준 귀한 선물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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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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