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웃는 개, 알고 보면 슬픈 사연이

[서평] 조앤 조지의 <스마일리>

등록 2018.04.17 11:14수정 2018.04.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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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아지가 어느덧 노견이 되어 시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녹내장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펑펑 울자 수의사 선생님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타일렀다. 사람은 대개 시력에 가장 많이 의존하지만 강아지는 시력보다는 후각과 청력 등 다른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12년 동안 보던 세상이 어느 날부터 안 보이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강아지는 그 후 3년을 더 살았고, 어두침침했을 그 세상이 어떠했는지 나는 아직도 짐작할 수 없다.


그래도 강아지와 자주 산책을 나갔다. 강아지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해하는 기색 없이 천천히 걸으며 오래오래 냄새를 맡았다. 미리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강아지가 떠난 뒤에는 그런 후회를 오래도록 했다. 눈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좀 더 많은 냄새를 맡고 바람을 느끼게 해줄 걸.

하지만 어쩌면 말하지 않는 동물의 삶을 멋대로 판단하는 것도 사람의 오류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남들과 다른 존재임에도 어떤 동물은 오히려 다른 이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파한다. 골든 레트리버 '스마일리'가 바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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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리> : 사랑의 여정 ⓒ 북레시피


조앤 조지의 <스마일리>는 번식장에서 구조된 골든 레트리버 생애에 대한 이야기다. 번식장은 말 그대로 오로지 교배를 위한 곳이다. 심지어 그곳에서는 새끼를 낳는 개들의 건강조차 중요하지 않다. 답답한 우리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고, 오로지 번식을 위한 공장의 부품처럼 살아야 한다. 스마일리는 바로 그곳에서 태어나 구조될 때까지 자랐다.

구조되었다고는 해도 이 개는 태어날 때부터 양쪽 눈이 없었고, '왜소증'이라는 장애도 안고 있었다. 그런 개를 입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번식장에서 개들을 구조한 조앤 조지가 직접 스마일리를 키우게 되었다.

눈이 없고 몸집이 묘한 개를 보면 누구든 다른 개와 비교하여 고개를 갸웃했을 텐데, 스마일리는 도리어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대했다. 게다가 외롭고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베푸는 삶을 살았다. 장애가 있다는 것이 그 삶에 있어 많은 것을 가로막는 요소는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와서 생각해 본다.


조앤은 연습과 끈기가 없으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스마일리로부터 곧 배우게 되었다. 그녀는 조급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했다. (22페이지)


개를 훈련시킨다는 것 자체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사람과 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표현한다. 같은 사람끼리도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개에게 알아주길 바란다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스마일리는 보통의 개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조앤은 조급해하지 않고 그걸 해냈다. 스마일리는 점차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인지하게 되었고, 예리한 청각으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른 개들만큼 금방 파악하게 되었다. 심지어 조앤마저 스마일리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었다고 한다.

스마일리가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조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반대로 스마일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치유견으로 활동했다. 스마일리는 안구가 없어서 눈을 봉합하여 웃는 것 같은 표정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다정한 얼굴로 한결같이 사람들을 대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들보다 예쁘지 않아서, 남들보다 조금 뚱뚱해서, 남들보다 돈을 많이 못 벌어서, 그 많은 사소한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사실 스마일리처럼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만으로도 우리 역시 서로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건 아닐까.

몇 년 후 개들과 밖에서 함께 산책을 하던 중 조앤은 스마일리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놀라운 효과에 불현듯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한 여성이 가던 길을 멈추고 스마일리에 대해 물었다. 그는 스마일리의 사연을 들으면서 그의 머리에 뺨을 댔다. 조앤은 그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스마일리를 안으며 조앤에게 그를 구조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54페이지)


나는 후천적 장애로 한쪽 눈이 없는 고양이를 입양한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부부는 그 고양이를 보자마자 입양을 결심했다고 한다.

"한쪽 눈이 없는 건 저희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어요."

나는 그때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인연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는 섣부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진심 어린 마음이다. 어린왕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스마일리에게는 굳이 눈이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스마일리 - 사랑의 여정

조앤 조지 지음, 이미선 옮김,
북레시피, 2018


#스마일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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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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