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에 붉게 타오른 진달래꽃, 내 마음도 울긋불긋

[지금 거기에 가면 ⑮] 대구 비슬산 여행

등록 2018.04.20 09:03수정 2018.04.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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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진달래꽃 군락지 대구 사람들은 참꽃이라 부르며 차별화한다. 4월 하순이면 펑퍼짐한 고원에 물결치듯 장관을 이룬다. ⓒ 홍윤호


비슬산이라는 이름의 유래

<삼국유사> 제 5권 피은 편 '포산이성(包山二聖)'에는 포산이라는 산에 숨어 사는 관기와 도성, 두 사람의 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관기는 남쪽 고개에 암자를 짓고 살았고, 도성은 북쪽 굴에서 살았다. 서로 10리 정도의 거리였으나,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며 서로 항상 왕래하였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려고 하면 산 속 나무가 모두 남쪽을 향해 굽혀 휘어지는 것 같았으므로 관기는 이것을 보고 도성에게 갔으며, 관기가 도성을 맞이하고자 하면 역시 나무가 북쪽으로 구부러지므로 도성이 관기에게 오게 되었다."


산 속에서 도 닦고 지내면서 서로 만나고 싶으면 바람을 타고 나무가 휘어지도록 하고, 나무가 휘어지면 상대가 오는 걸 알고 마중을 나간다는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두 사람은 죽을 때도 자연인답게 죽었다. 도성은 높은 바위에서 좌선하다가 갑자기 몸을 붕 띄워서 허공으로 사라졌고, 관기도 곧 그의 귀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친구가 죽었으니 자살이라도 한 것일까.

요즘에야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은 많은 것을 버려야 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낭만이 되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자신이 현실적으로 못하는 생활에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 도시에 살던 사람이 자연에 들어가면 불편해서 못 살기도 한다.

산 속에서 자유롭게 도 닦고 살았던 관기와 도성이 머물렀던 산, 포산은 지금 대구의 비슬산으로 추정된다. 근거가 있다.


<삼국유사>의 이어지는 내용에 보면, 산 아래 현풍 사람들이 결사를 만들어 향나무를 절에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도 비슬산 아래 동네 이름은 할매 곰탕으로 유명한 현풍이다. 또, 현재 비슬산에는 도성의 이름을 딴 도성암터가 있으며, 관기의 이름을 딴 관기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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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진달래꽃 군락지 4월 하순, 대개 4월 20일 이후 비슬산 조화봉 일대의 고원 지대에 붉은 꽃 바다를 이룬다. ⓒ 홍윤호


흔히 비슬산(1083m)은 산 꼭대기 바위의 모습이 신선이 앉아 비파 혹은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 자로 표기해 비슬산이라고 했다는 설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서는 인도어로 높다는 뜻의 '싸다(감싸다, 包)'의 의미를 담은 소슬산이라는 호칭을 당시에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소슬'은 '솟다'는 순우리말에서 온 말이니 '높이 솟다'는 의미이다. 결국 높이 솟은 산이라는 뜻의 소슬산이라는 명칭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높고 귀하다는 의미가 포함된 벼슬산, 즉 비슬산으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과거 국가 관료들이 받는 직책을 통틀어 '벼슬'이라고 했는데, 이 순우리말이 '높고 귀하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비슬산은 대구에서 창녕으로 이어지는 남북의 긴 산줄기에서 유달리 툭 튀어 오른 산이다. 평균 600~700m 높이대의 산봉우리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1000m 대의 산이 솟았으니 낙동강과 현풍의 벌판에서 보기에는 '높이 솟은 산'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 대구~창녕으로 이어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에서 올려다봐도 도드라진 산이다.

이 비슬산은 광주의 무등산과 비교하면 더 이해가 빠르다. 주변의 400~500m 대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달리 1000~1100m 대의 무등산이 솟아 있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리고 무등산은 정상부가 펑퍼짐하여 넓은 고원 지대를 이루는데, 비슬산도 마찬가지다. 정상부가 말 발굽형으로 휘어져 있다는 점도 닮았으며, 지질학적 의미가 있는 기암군이 있다는 것조차 비슷하다.

그래서 신선이 비파나 거문고를 타는 산봉우리의 모습에서 이름 붙은 산이라기보다는,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높이 솟은 모양으로 바로 보이니 '솟다'는 발음에서 온 솟은산→소슬산이라 했고, 이것이 역시 높다는 의미의 벼슬산→비슬산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즉, 애초의 순우리말인 솟은, 벼슬을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발음이 비슷한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 자를 썼다는 이야기다. <삼국유사>에서 이미 소슬산이라는 명칭이 나타나니 사료적 근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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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원형 전망대 비슬산 진달래꽃 군락지 중심에 원형 전망대가 있는데, 꽃 피는 시기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 홍윤호


비슬산 참꽃 군락이 산중 붉은 바다를 이루다  

비슬산은 본래 달성군에 속해 있었으나, 1995년 대구광역시가 달성군의 영역을 흡수, 통합하면서 대구의 산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북쪽에는 팔공산, 남쪽에는 비슬산이라고 하여 대구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인식된다.

비슬산은 일단 주변 산들에 비해 높이 솟은 산이고 정상부가 넓은 고원 지대를 이루고 있어 대단히 장엄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지리산과 경남 산청 황매산에서도 느꼈던 웅장함과 원시성은 뭐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벅차고, 엄숙하게까지 느껴지는 유화 톤의 굵은 산줄기는 태초의 순수성을 일깨워준다.

특히, 정상부의 기암군과 웅대하고 굵으면서 펑퍼짐한 능선이 대단히 인상적인데, 4월 20일 이후 정상부에 붉게 피어나는 진달래꽃은 그 어느 산의 진달래꽃 군락보다 화려하고 멋지다.

단, 절정기가 짧아 붉은 파도가 치는 듯한 진달래꽃의 감동적인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기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이 4월의 비슬산 진달래꽃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일단 평탄한 고원 분지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조화봉에서 천왕봉 정상부까지 금세 불길이 활활 타올라 산불 나듯 걷잡을 수 없는 붉은 꽃물결을 일으킨다. 이때쯤이면 꽃도 붉고, 산도 붉고, 사람도 모두 붉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달래꽃 군락지 중 하나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비슬산 진달래꽃을 사랑하는 대구 사람들은 이곳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부르며 차별화한다. 축제도 '비슬산 참꽃문화제'이다. 그들의 참꽃 사랑은 인정해 줄 만하다. 올해는 4월 21일(토)~22일(일)에 걸쳐 축제가 진행된다.

그러니 진달래꽃과 참꽃은 같은 꽃이다. 참꽃은 먹을 수 있는 꽃으로, 보기에도 좋지만 인간에게도 유용한 꽃이라 붙은 용어이며, 먹을 수 없는 꽃인 철쭉을 개꽃이라 하여 진달래꽃과 구별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다. 결국 참꽃과 개꽃은 인간의 입장에서 유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원에서 부르는 호칭인 셈이다(이 글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진달래꽃과 참꽃을 마치 다른 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진달래꽃으로 통일해서 표기했다).

진달래꽃을 보기 위한 비슬산 산행은 보통 현풍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비슬산자연휴양림 코스 혹은 유가사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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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자연휴양림길 비슬산 진달래꽃 군락을 보기 위해 비슬산자연휴양림 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길이 가벼워 보인다. ⓒ 홍윤호


4월 하순의 진달래꽃을 보려면 비슬산자연휴양림에서 올라가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 조화봉 일대에 오르면 가장 빠르게 진달래꽃 군락에 닿을 수 있고, 정상인 천왕봉까지 군락 전체를 조망하며 기분 좋게 한달음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는 길에 대견사터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걸어 올라가기 힘들면 이곳의 명물 반딧불이 전기차를 타고 30분 만에 편하게 올라갈 수 있으니 산행을 싫어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군락지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산행할 경우 비슬산자연휴양림과 계곡의 너덜지대를 지나 1시간~1시간 30분 이상 오르면 능선에 오르면서 대견사터가 나타난다. 1909년에 폐허가 된 사찰터에 2014년 다시 중창, 복원한 대견사가 들어서 있다.

대견사터 일대의 기암군은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로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멋지고 전망도 좋다. 천연기념물 제 435호로 지정된 비슬산 암괴류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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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사터 삼층석탑 해발 고도 1000m에 가까운 큼지막한 바위에 올라앉아 비슬산 일대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석탑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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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사터 삼층석탑 탑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홍윤호


하지만 큼지막한 바위 위에 올라앉아 비슬산 아래의 모든 세상을 안마당으로 삼은 대견사터 삼층석탑의 전망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삼층석탑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 전망은 높이보다 더 장쾌하다. 전망과 주변 풍경만으로 봤을 때 경주 남산의 용장사지 삼층석탑보다 더 윗길이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

대견사터에서 기암군을 넘어가면 조화봉이고, 이곳 조화봉에서 천왕봉 사이에 약 30만 평(약 99만㎡)의 진달래꽃 군락이 끝없이 물결치듯 융단을 이루어 장관이다. 눈앞이 환하게 트이면서 진달래꽃 군락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은 이곳뿐이다.

진달래꽃 군락지 중심부로 내려가는 데크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간 원형의 전망대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진달래꽃을 이 지역 사람들은 굳이 참꽃이라 부르는데, 정말 이곳에서 보면 진짜 참꽃이란 어떤 꽃인지 알 수 있다. 장관이다.

진달래꽃이 목적이라면 다시 온 길을 도로 내려가는 것이 빠르지만, 내친 김에 산행을 한다면 정상인 천왕봉을 거쳐 유가사로 내려가는 코스도 괜찮다. 비슬산의 전모를 감상할 수 있는 코스이다.

4월 하순의 진달래꽃을 명품이라 부른다면 10월 이후의 억새도 그에 버금가는 명품이다. 비슬산에 매력을 느낀다면 가을에도 다시 올라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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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사터 2014년 대견사가 들어서기 전의 모습.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암괴류의 모습에서 원시성이 느껴진다. 이 바위군의 한 면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 홍윤호


여행 정보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휴양림길 230 (용리 산 10)
문의: 053-715-1273,  www.biseul.kr

* 비슬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산행이 힘든 노약자들을 위한 반딧불이 전기차와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물론 나이와 상관없이 이용 가능.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꽤 기다려야 하지만 편리하게 정상부 대견사터 입구에 오를 수 있다. 30분 소요. 전기차는 편도 성인 5000원, 어린이 3000원

현풍에서 비슬산으로 가는 길에 유채꽃밭을 만날 수 있다. 시기적으로 유채꽃이 필 때라 노란 꽃물결이 다채롭다. 잠깐 길에 내려 사진이라도 찍고 가면 좋다.

* 비슬산자연휴양림 입구의 주차는 약 300대 이상 가능. 한창 시즌의 주말에는 차량이 많아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오전 9시 전에는 주차장에 가도록 하자. 오전 10시경만 돼도 관광버스들이 들이닥친다.

산행 중에는 물이 귀하다. 마실 물을 꼭 준비해 갈 것.

* 자가용으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IC→현풍→동쪽 비슬산&유가사행 도로를 이용, 5km 들어가면 유가사에 닿으며, 가는 길에 양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비슬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간다. 현풍 남쪽의 대구 테크노폴리스를 거쳐서 비슬산자연휴양림으로 바로 들어가는 도로도 있다.

*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대구를 경유하는 것이 편리하다. 대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1688-2824, 053-656-2824)에서 현풍까지 20~30분 간격으로 시외버스가 운행되며, 현풍에서는 유가사까지 가는 버스(하루 10회 운행)를 이용, 종점에서 내린다. 주말의 경우 600번 버스가 유가사와 자연휴양림으로 간다. (비슬산 가는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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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가는 길의 유채꽃밭 4월 하순에 현풍과 비슬산 입구 벌판 일대에서 뜻밖의 유채꽃밭을 만날 수 있다. ⓒ 홍윤호


#비슬산 진달래꽃 군락 #비슬산 참꽃 #비슬산자연휴양림 #대견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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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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