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레'와 외모지상주의

돈벌레와의 불편한 동거

등록 2018.04.17 08:20수정 2018.04.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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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전원생활을 한 지 어느덧 6개월 차. 얼마 전 주방에서 미키마우스(쥐)와 한바탕 소동을 벌였었다. 한숨 돌리자 이제는 돈벌레(그리마)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조그마한 들쥐 한 마리는 그나마 귀여운 편이었다. 돈벌레는 다르다. 수많은 다리가 지네를 연상시킨다. 또한, 긴 촉수로 독을 뿜어낼 것 같은 자태를 뽐낸다. 때로는 둘씩 짝지어 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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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변 전경. 전원생활을 실감하게 하는 장면 ⓒ 김현중


일단 돈벌레를 조우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외모로 판단해 정말 미안하지만 딱 보는 순간, 징그럽고 혐오스럽다. "돈벌레는 돈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죽이는 거 아니다"라는 어르신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을 뿐, 돈벌레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인터넷으로 돈벌레를 검색해봤다. '정식 명칭은 그리마, 15쌍의 다리를 가진 절지류로 바퀴벌레, 파리, 모기 등 해충의 알을 먹고 살기 때문에 익충'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돈벌레'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옛날에 가난했던 시절에는 부잣집에서만 볼 수 있었던 벌레'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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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레가 자주 출현하는 세탁실 ⓒ 김현중


익충인 돈벌레의 활약 덕분일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바퀴벌레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혐오스러웠던 돈벌레가 조금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돈벌레를 외모로만 판단했던 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십수 년 전에 시작된 '얼짱, 몸짱' 열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인 미디어, SNS를 통해 전 연령대로 끝없이 확산 중이다.

아름다움을 선호하고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 그러나 외모 지상주의는 상업적 패러다임이다. 개성을 무시하고 외모 정형화를 부추긴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의 외모와 격차가 클수록 패배감에 젖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여성과 남성, 진보와 보수, 약자와 강자 등 분노를 넘어 서로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임계점을 넘은 미투 운동은 시대 정신이 되었다.

외모에 대한 혐오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장애, 인종, 개취(개인 취향) 등에 따른 혐오로 '다름'의 가치가 '틀림'의 판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나 역시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혐오스러운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생후 100일 된 아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아들이 성장하여 세상으로 나아갈 때는 외면이 아닌 내면, 획일성이 아닌 개성, 틀림이 아닌 다름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직도 돈벌레가 자주 마중 나오는 세탁실이나 보일러실을 갈 때면 아내와 나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레 문을 연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돈벌레와 인사를 나누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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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곡산역 전경. 사람, 동물, 자연이 더불어 함께 살고 있다. ⓒ 김현중


아들에게 좋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오늘 나부터 돈벌레를 고마운 마음으로 편견없이 보는 노력을 해야겠다. 또한, 사회적 약자를 향한 더 큰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겠다. 더불어 살 때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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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역 주변 내천. 백로, 오리가 따로 또 같이 노닐고 있다. ⓒ 김현중


#외모지상주의 #돈벌레 #그리마 #전원주택 #불편한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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