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주한미군 인정하면, 자유한국당은 어떻게 할까

[황 기자의 한반도 이슈] 김일성·김정일 "한반도 평화유지 위해 미군 주둔 좋다" 입장

등록 2018.04.17 13:25수정 2018.04.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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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사진은 지난 3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원내대책회의 당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그런데 왜 (문재인 정부가) 위장평화쇼를 하느냐. 그것은 종국적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으로 나는 판단한다. 하반기 들어가면 주한미군철수(주미철)운동이 본격화될 것이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올해 3월 26일 당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된 가운데, 결국은 북한과 문재인 정권이 '주한미군 철수'에 집중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3월 10일에는 같은 당 정태옥 대변인이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되는 협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북핵 타결과는 별개로 동북아의 세력 균형추로서 주한미군은 여전히 필요하다"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평화협정은 곧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다"라고도 했다.

'주한미군 철수'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주고받는 카드가 될 것이고,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자유한국당 등 한국의 보수세력이 확정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비판하는 핵심 대목 중 하나다.

이는 이들이 그동안 주한미군을 둘러싸고 남북미간에 논의돼온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의 최고지도부는 꽤 오래전부터 이미 남과 미국의 최고지도부에게 주한미군 인정 의사를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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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아파치 레인지에서 열린 주한미군 2사단·한미연합사단의 최고 전사 선발대회에서 미군 장병이 부상자 모형을 끌고 오르막을 달리는 테스트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 김일성 주석은 1992년 1월 22일 뉴욕에서 한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에 김용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를 보내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정무 담당 차관에게 북미수교를 전제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통일 뒤에도 주한미군의 위상·역할이 바뀌면 남아 있어도 좋다"라는 의사를 전했다. 주한미군이 통일 뒤에 평화유지군 등으로 성격이 바뀌면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김용순 비서의 발언을 노태우 정부에게 전했고, 노태우 정부가 이를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통일연구원 부원장으로서 이에 대해 검토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주한미군에 대해 남침 억지를 위한 무장력일 뿐 아니라 동북아의 균형자, 안정자 역할(stabilizing role)을 하면서 남한의 북한 흡수도 막아줄 수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을 한 것이었다"라면서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이 읽고 이런 제안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도, 우리 정부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시했다"라고 회고했다. 러시아 등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상황에서 북한은 적극적인 현상유지를 원한 것이었고 거꾸로 미국 등은 북한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희망섞인 기대를 하던 시기였다.


북 "우리에게 위협은 주한미군 자체가 아니라 군사훈련 같은 구체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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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은 2000년 6월 14일 북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에 서명하기에 앞서 두손을 맞잡아 들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북은 그 뒤에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김일성 주석이 1994년 4월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와한 인터뷰에서 "북남이 무력을 10만으로 축소한 후 자체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때까지 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라고 했고, 1996년 4월 미국 조지아 대학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리종혁 노동당 부부장이 "북미 양측이 평화조약을 모색하는 동안 미군이 한반도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라면서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미군주둔 자체가 아니라 군사훈련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일도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라며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대통령께 비밀 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다"라면서 1992년에 김용순 비서가 미국 캔터 차관에게 한 발언을 확인했고, 이로써 8년만에 정부의 소수만이 알고 있던 북한의 '주한미군 주둔 인정'의사 전달사실이 공개됐다. 그는 6월 15일 오찬장에서 다음날 클린턴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전해주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게 돼 있었던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에게도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어제 말한 것을 전해달라'고 고 부탁하는 적극성을 보였다고도 한다.

김정일은 직접 미국 지도부에도 이같은 뜻을 전달했다. 2002년 10월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만나 "냉전 이후 우리 생각은 변했다"라면서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관련 기사: 2003년 9월 17일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회고록).

그러나 북한은 내부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계속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고,  2016년 7월 6일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며 비핵화의 전제조건을 밝힌 '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모습에 대해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의 관련 질문에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랍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임동원 회고록 <피스메이커> 93쪽).

손자인 김정은은 어떨까. <한겨레>는 지난 13일 치 기사 "북, 비핵화 대가 5개안 미국에 제시했다"에서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이뤄진 북미 간 실무접촉 내용을 전하면서 "북한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공식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1992년 이래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북한 최고지도부가 밝혀온 입장과 같은 것인 데다, 다른 5개항도 전반적인 상황과 부합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이기동 부원장이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이미 김일성 주석 시절에 정리됐다"라면서 "적이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하지만, 친구라면 그렇지 않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가 정상화되고, 국교수립이 되면,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같은 '역사'를 종합한 발언인 셈이다.

3대 세습 수령 모두 인정... 김정일은 왜 "냉전 이후 우리 생각 변했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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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특사단 만난 김정은 위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사진은 지난 3월 5일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 등 특사단과 면담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에 면담에 배석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앉아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북한 세습 3대 수령이 모두 이같은 입장을 갖게 된 것일까.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에게 한 "냉전 이후 우리 생각은 변했다"는 것에 단서가 있다.

1968년에 북한은 '1․21 청와대 습격사건'을 벌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무장군인 31명이 청와대 바로 뒤인 청운동까지 침투했다가 실패했다. 격분한 박정희 대통령은 대북 보복작전을 준비했으나,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한 주한미군과 미국의 반대로 중단해야만 했다(관련 기사: "박 전 대통령, 1·21사태 이틀 후 공군에 북한 124군부대 보복 지시").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대응 차원에서, 문제가 됐던 미루나무를 모두 베어내는 '폴 버년' 작전을 벌였다. 항공모함까지 동원했지만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었지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전에 동원한 한국군 특전사가 지시를 어기고 북한군 초소들을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미군이 확전 방지를 위해 이들을 만류하자, 특전사 대원들은 북측 도로 차단기를 제거하기 위한 진격에 불응하는 미 육군 트럭 운전병을 권총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군의 지시를 무시하고 M16 소총, 수류탄, 크레모아를 삽, 곡괭이 등 작업도구 밑에 숨겨서 들어갔다. 이 때문에 미군의 요구로 당시 특전사 병력 64명을 지휘한 김종헌 사령이 군사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결국 주한미군이 '호전적인' 한국군을 자제해 확전을 막는 역할을 한 셈이다(관련 기사 : 미, 또 소극적 보복… 한국군은 북 초소 박살).

최근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5년 8월 파주 비무장지대 목함 지뢰 사건으로 부사관 2명이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자, 우리 군은 북한군 초소 타격을 검토했다. 그러나 확전가능성과 주한미군의 반대로 중단했다(관련 기사 : 윤후덕, "북한군 초소 타격 검토...확전 감안 채택하지 않아, 주한미군도 반대").

물론 이같은 '뜻밖의 상황'은 유럽과 중동을 우선하면서 한반도에서는 현상 유지를 원한 미국의 세계 전략에 따른 것이었고, 이것이 냉전 이후 수세에 몰린 북으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주한미군이 자신들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배경이었다.

이처럼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하면서 이를 남북간, 북미간 협상의 한 카드로 활용하게 된다면,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에게 뼛속깊이 박힌 염원'이라는 고정관념이 뼛속까지 박혀있는 자유한국당 등 한국의 보수세력은 어떻게 대응하게 될까.
#주한미군 #김정은 #남북관계 #주한미군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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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8 남북-북미정상회담 : 평화가 온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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