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는 것이다

[그림, '같이&가치' 보기1] 그림 알아가기, 그 첫걸음

등록 2018.04.18 08:42수정 2018.04.1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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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는 것 ⓒ unsplash


BCE 3만년 전부터 그림의 형태가 존재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 이후 어느 나라, 어느 세대에서나 그림은 우리 삶,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이 언제나 고정된 모습으로 우리 옆에 있어온 것은 아니다. 그림은 변화무쌍한 것이고 복잡한 것이며 다양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림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림과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작가, 의뢰인, 화상 등), 그림의 수많은 주제들(인물, 풍경, 역사, 추상 등), 그림이 가진 수많은 기능과 역할들(종교, 정치, 연구, 심미, 실험 등),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되는 수많은 수단(캔버스,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유화, 수채화, 파스텔화 등)과 기술들(색깔, 형태, 원근, 명암 등)만큼이나 그림은 그 종류와 의미가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소한 그림의 가짓수만큼이라는 한정된 숫자가 있을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앞으로 그려질 그림들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그림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이미 보아왔고 익히 알고 있는 그 그림들마저도 사실은 우리가 잘못 보아왔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림을 한 번 보았다고 해서 그 그림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이다. 심지어 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림을 보고 그 작가를 안다거나, 그 시대를 안다거나, 그 그림의 화풍이나 장르를 안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만용에 가깝다. 그림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면 그 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고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그 그림을 '보았다'라고 말하는 대신 '한 번 보았다', '두 번 보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림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그 그림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한 사람의 글을 읽었다고 해서 그 그림의 의미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림의 해석 또한 사람마다 제 각각 다를 수 있으므로 열 명의 해석을 읽었다면 열 가지의 해석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어느 순간 나 자신만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해석이 변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번 보면 볼수록, 그 해석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림만큼 복잡한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의 캔버스 안에 그려진 대상 하나하나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단지 캔버스를 채우기 위해, 구도를 맞추기 위해, 조화를 위해 어느 하나를 구겨 넣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전체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 역할을 한 것이므로 이러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단 한 명을 그린 초상화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의상과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얼굴 표정, 그림에서 부각시키고자 한 특정 요소를 포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건이나 행사를 위해 그려진 것인지에 대한 이해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문제가 끝나지는 않는다.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림이 얼마나 될까. 영감이라는 것은 작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고 그림을 직접 그린 작가 자신도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또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으로 모든 그림을 해석하는 실수는 얼마나 많은가. 과거 선사시대의 동물 벽화나 이집트의 벽화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여러 해석 중에 가장 그럴 듯한 해석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과연 100% 맞는 것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또는 현대의 작품이라고 해서 그림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대 미술의 많은 부분이 추상 또는 개념 미술 등으로, 보여지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작가의 의도와 설명이 곁들여진다 하더라고 그것을 이해하거나 공감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해하도록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도록 의도된 그림도 많기 때문에 애초에 그림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림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림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반드시 중요하지만 그 과정은 어쩌면 끝이 없는 것이고 끝이 있다 하더라고 그것이 궁극의 목표는 아닌 것이다. 그림을 보는 이에게 어느 정도의 자의적인 영역을 남겨둔다는 것이 그림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따라서 그림의 의미는 보는 이마다 다양할 수 있고 그렇게 나만의 의미를 갖게 된 그림은 더욱 각별할 수 있다.

하나의 그림이 하나로 끝날 수 없고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그림은 영원한 것이 될 수 있었다. 어느 그림도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다가가지는 않는다. 또한 어느 누구도 하나의 그림을 여러 번 보면서 그 때마다 동일한 느낌을 가질 수는 없다. 심지어 그림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고 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그 그림에 대한 느낌과 생각은 또 다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림이 단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정답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낼 수 있기에 위안을 얻는 동시에 하나의 정답이 주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도전하고픈 흥미를 느꼈다면 이제 준비가 된 것이다. 단, 무수한 되돌림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이 좋아야 하고, 끝이 없을 수도 있는 여정을 기꺼이 시작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림은 이를 위한 적절한 대상이자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어줄 것이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는 것이다.
#그림 #예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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