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독일 이민자가 만든 세월호 다큐... 첫 장면에 울컥

[세월호참사 4주기 기획⑤]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0416>의 정옥희 감독

18.04.17 21:58최종업데이트18.04.1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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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고원인은 오리무중입니다. 그 사이 세월호 참사를 조망한 여러 영화들이 나왔고, 또 나올 예정입니다. <오마이스타>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 이 사건을 기억하고 다루는 영화들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0416>은 독일 이민자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본 작품이다. ⓒ 시네마달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벚꽃엔딩'을 천진하게 부르는 학생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어른들의 슬픈 얼굴들.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0416>(아래 <세월>)은 학생과 아이들을 교차시키며 하나의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국민에게 과연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다.

제목부터 은유적이지 않고 직접적인 <세월>의 특징이 있다면 카메라를 든 이가 오래 전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라는 사실이다. 1977년 독일로 이민을 간 후 현지에서 작가 및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인 정옥희 감독은 "사고 이후 구조 과정부터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아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계기를 전한다.

아직 국내 개봉이 잡혀 있지 않은 <세월>은 2016년 독일에서 개봉했고,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렵 추가촬영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보탰다. <오마이뉴스>는 독일에 거주 중인 정옥희 감독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옥희 감독은 1969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이후 1977년 독일로 건너가 그곳에서 생활했고,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 정옥희


탐사영화 아닌 연대의 영화

'벚꽃엔딩'을 부르는 주인공들은 바로 단원고등학교 시연, 영은, 도언, 예진, 예슬, 예은, 그리고 주이다. 마치 이들의 밝고 활기찼던 모습만 기억하라는 듯 감독은 덤덤하게 이들의 모습으로 영화의 처음과 끝을 채웠다. "이 사건을 알지 못하는 외국 사람들 입장에선 이 밝은 학생들이 황당한 참사의 희생자라는 것을, 그리고 이들의 죽음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연출의 변을 통해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유가족 분들의 용감하고 힘든 싸움을 기록하려 했다'던 정 감독은 유가족인 한재창, 홍영미, 박순미씨를 비롯해 사고 현장을 지키고 기록했던 여러 시민들과 정혜신 박사 등 몇몇 전문가를 만났다. 이들은 자기 위치에서 참사에 대해 솔직한 마음을 풀어냈다. 그렇게 2014년 6월 처음으로 카메라를 켠 이후 감독은 11개월 동안 다듬고 만져 영화를 완성시켰다.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0416>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참사 당일 독일 공중파 뉴스로 소식을 처음 접했다. 한국 공중파 방송에선 전원 구조라고 나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SNS를 통해 참혹한 진실을 호소하는 유가족 분들의 글을 보게 됐다. 정부는 구조에 소극적이었다. 프리랜서 기자였지만 독일 내에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기에 글을 쓸 기회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유가족 분들의 슬픔과 절망, 국가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는 그 분들의 모든 것을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겠더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 일을 알리고 싶었고, 저 또한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차서 다큐 영화 제작을 결심하게 됐다." 

SNS를 통해 정 감독은 유가족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인연이 보태고 이어져 지금의 인터뷰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감독은 "애초부터 탐사보도가 아닌 진실을 위해, 그리고 좀 더 나은 한국사회를 위해 싸우는 유가족 분들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딱지 붙이는 국가

영화에서 특기할 부분 중 하나가 정혜신 박사의 말이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사회적 참사의 예를 들며 정혜신 박사는 "그 참사로 국가를 원망하던 유가족들을 두고 사람들은 빨갱이라 부르지 않았는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며 "종북 딱지를 너무도 쉽게 붙인다"고 지적한다. "이유도 알 수 없는 채로 사고를 당했다는 게 유가족들의 가장 큰 상처"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정옥희 감독의 문제의식도 그 지점에 있었다. 이민자의 시선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

ⓒ 시네마달


"독일과 한국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이 다르다. 유년 시절부터 독일에서 자라고 살아온 저로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그 모든 것들이 이해가 안 가고 분노가 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유가족들이 진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도 그랬고, 이들을 조롱하듯 정부와 손  잡고 오보를 내놓는 언론권력, 진실을 밝혀달라며 시위하는 사람들을 연행하는 경찰들 등 말이다.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미 정상화 되어버린 비정상적인 시스템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직접 취재하면서, 인터뷰 하면서 제가 알고 있던 사실보다 현실이 더 참혹했다는 걸 발견했다. 울면서 인터뷰 하고, 울면서 후반 작업을 했다. 영화를 하면서 겪은 어려움이라면 그것뿐이었다. 작업이 끝나고 나서 감정적으로 정상화되기까지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완성 후 유가족에게 영화를 보여주면서도 정옥희 감독은 "이 분들이 직접 겪은 일들의 아주 작은 부분만 영화가 담았을 것"이라며 애써 상처입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다.

돌아온 봄

이미 한 차례 개봉했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촛불 집회로 인한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세월호 인양 등의 이슈가 있었다. 정 감독은 2017년 참사 3주기 무렵 추가 촬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탄핵에 환호하는 시민들, 애도의 마음을 품고 벚꽃 봄길을 걷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지금의 영화가 완성됐다.

정옥희 감독은 "2014년 참사 직후부터 2015년까지 이야기를 담았었는데 한국에서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며 "3주기를 계기로 유가족 분들의 힘든 싸움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결실을 맺어 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벚꽃은 봄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3주기 안산 봄길 행사 때 유가족 분들과 연대하는 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봤다. 이들이 평화롭게 행진하다가 유가족 분들이 기다리는 안산공원에 도착했을 때, 산들바람에 벚꽃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아이들이 하늘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고 느꼈다. 벚꽃 이미지를 통해 아이들의 죽음이 결코 헛된 게 아님을 담고 싶었다."

ⓒ 시네마달


영화 <세월>의 말미, 아이를 잃은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단 한 명도 못 구할 수가 있나. 삼족, 구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사람들이 재판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며 국가와 책임자들 원망하면서 "모든 게 이런 사회를 만든 제 탓"이라 자책한다. 그러면서 "진상 규명만큼은 해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왜 너희가 죽었는지 그것만이라도 알려주고 싶다"며 이내 눈물을 쏟는다.

어른들의 사무친 눈물과 벚꽃, 그리고 해맑은 아이들, 시민들의 모습을 보이며 정옥희 감독은 조심스럽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들지 아닐지는 결국 한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일 것"이라며 감독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국민만이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영화인들이)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없다. 앞서 말했듯 아무리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도 잘 만든 다큐멘터리라도 유가족 분들이 실제로 겪었던 것의 일부만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들 하나하나로 전체를 바라보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월호 유가족 세월-0416 독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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