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남미식 인사 볼뽀뽀, 나는 오해했다

[ 2만 시간동안의 남미 ] 첫 번째 문화충격

등록 2018.04.20 10:34수정 2018.04.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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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남미 상사병을 오랜 세월 앓던 기자, 마침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그 대륙에 두 발로 딛고 선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행선지는 남아메리카의 허리 격인 칠레의 산티아고. 현지인 친구 다니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초대도 염치없이 넙죽 받았겠다, 적어도 여행 초반은 순탄해 보인다. 매일같이 하는 남미식 인사, 볼뽀뽀도 점점 익숙해져 간다. 그러다 불현듯 그에 관한 오래전의 첫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산티아고에서의 며칠이 훌쩍 지났다.


다니의 방은 동향이라 밤에는 서늘해 지내기가 좋았다. 하지만 아침에는 개들도 자리를 옮길 정도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쬔다. 이른 아침 시간부터 갈수록 더 많아지는 일조량이 스멀스멀 내 몸을 점령해간다. 내가 무슨 해시계도 아니고 왜 이렇게 태양이 나에게 다가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지 모르겠다. 가수 비의 노래처럼 정말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꼼지락거리며 몸을 점점 벽으로 밀착시켜본다.

그런 나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태양볕이 내 얼굴에 다다를 때면 무슨 레이저 빔이라도 쏘는 줄 알았다. 침대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나는 결국 벌떡 일어났다. 콧등과 이마 언저리는 이미 홍수가 나 땀이 무릎으로 뚝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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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모자 사리여!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 누가 저런 더운 털모자를 살까 싶었다. 하지만 모자 장수 아저씨는 대목을 맞고 계셨고 이건 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 송승희


손등으로 닦아보았자 소낙비 내리는 날의 차 와이퍼처럼 소용이 없다. 그러던 중 똑똑 노크소리가 났다. 다니였다. 땀범벅인 내 얼굴을 보던 다니는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자기도 오전에는 주로 바깥에 나가있거나 방 밖에 머물러 있는다며 거실로 내 손을 이끈다.

거실로 나가니 다니 아버지는 신문을 읽고 계신다. 그 근처의 개들은 형형색색의 트리 장식을 건드리며 장난을 치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 다가가 "올라(Hola)" 하며 현지식으로 아침인사를 드렸다. 그의 까칠한 턱수염이 내 뺨에 닿았다 금방 떨어진다. 딸이랑도 같은 인사를 나눈 그는 나보고 칠레사람 다 됐다며 안경 너머로 인자한 미소를 보이신다.

잘 알려진 바대로 다수의 유럽 국가들과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뺨에 가볍게 하는 볼뽀뽀가 대표적인 인사법이다. 하는 방식이 대륙이나 언어권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거의 비슷하다. 처음에만 어색하지 하다보면 괜찮아지고 나름 내가 현지인 같다는 느낌에 기분도 으쓱해진다. 만약 불편해서 거절하면 연세가 있으신 분께는 예의가 없어보이는 점, 주의하는 것이 좋다.


이 이국적인 인사 방법 때문에 다니와 나 사이에 일화가 하나 있다. 우리는 약 5년 전 서호주 퍼스의 어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하루는 승강기가 고장이 나 비상구의 계단을 이용하다 우연히 다니를 마주치게 되었다. 아직 친해지기 전이라 손을 들어 인사하려는데 난데없이 다니가 내 볼에 쪽, 하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치자 오히려 다니가 당당하게 뭐 문제있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다니를 이상한 아이로 오해했다.

이건 중남미권 문화에 대한 내 첫 번째 문화 충격이었다. 그 오해는 다른 남미 출신 학생들을 보면서 금방 풀렸지만 내게는 여전히 너무나 독특한 인사 방법일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뺨을 갖다 대다니. 나중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다니에게 이 지난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다니는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문화 차이를 존중하지 못한 자기 탓이라며 머쓱해했다.

다니에게 그때 그일을 다시 상기시키자 다니는 차를 들면서 말을 이어갔다.

"결국 그 문화 차이에 큰 흥미를 느낀 한국에서 온 내 친구는 지금 우리집 거실에서 우리 아빠랑 나랑 차를 들고 있지."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배시시 웃었고 영문을 모르는 다니의 아버지만 눈을 깜빡거리신다. 턱수염이 말년의 헤밍웨이를 연상시키는 다니의 아버지 페르난도는 외관처럼 성격도 호탕하신 분이다. 다니를 불러다 우리 사이의 통역일을 시키신다. 그리고 " 엔 꼬레아 델 수르-"(남한에서는-)로 이어지는 질문을 끝도 없이 하셨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호기심이 왕성한 분 같았다.

나는 나름대로 우리의 대화를 즐기고 있었는데 피곤해진 다니가 조용히 백기를 든다. 그러자 페르난도는 그럼 딱 하나만 더 묻겠다며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내미셨다. 다니는 우리 아빠를 누가 말려하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내가 무슨 대한민국 백과사전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페르난도는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입을 여셨다.

"그럼 한국에서는 존칭어가 있으니 인사법도 다르나? 여기서 막 파파 할머니들한테 볼뽀뽀 두세 번씩 드리는 것처럼?"

백문이불여일견이랬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를 향해 90도로 배꼽인사를 해보이며 말했다.

"안녕하심까!"

그리고 방향을 틀어 다니에게는 손을 삐딱하게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안녕허지?"

그랬다. 장난기가 든 나는 조직(?)의 인사법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페르난도에게도 코리안 마피아들이 이렇게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도 벌떡 일어나 근처의 개들에게 내가 그에게 했든 똑같이 한다.

"안녀하시까!"
"왈왈!"


다니와 나는 정말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페르난도도 본인도 자기가 한 행동이 웃긴지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장담하는데 우리 두 사람이 개그맨 공채시험을 보면 적어도 하나는 붙을 것이다. 나는 사래가 들려가며 웃느라 기침까지 하면서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갑자기 이곳에 오기위해 생애 가장 긴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냥 잠옷이랑 칫솔 하나 달랑 들고 옆동네 사는 친구네 집에 하루밤 놀러 온 것 같았다. 높아져가는 해가 내 가슴께까지 다가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나보다.

2017년 12월 말,
웃음꽃이 피어나는 다니네 거실에서
#여행 #남미 #칠레 #인사법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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