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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안녕하세요>, 이영자 눈물만 팔아먹지 말라

[리뷰]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전혀 안녕하지 못한 방송

18.04.18 17:20최종업데이트18.04.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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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방송된 KBS 2TV <대국민 토크쇼-안녕하세요>의 한 장면. ⓒ KBS 2TV


아빠는 딸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40~50통씩 전화를 걸고, 20분 간격으로 동선을 체크한다.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치마를 갈기갈기 찢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딸은 숨이 막히고 무섭기만 하다. 그런데 아빠는 이 모든 게 "딸을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이라며 "딸 몸에 손을 댄 적은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소름이 돋는다. 끔찍하기만 하다.

지난 16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는 '고3 딸을 사사건건 구속하는 아빠' 사연을 소개했다. 이날 주인공인 19세 여학생은 아빠의 지나친 참견과 구속 때문에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가정폭력에 가까운 사연... 얼렁뚱땅 넘어간 방송

여학생이 털어놓은 사연은 충격적이었다. 가정폭력에 가까워 보였다. 화가 난다고 딸이 보는 앞에서 TV를 때려 부수고, 대걸레를 부러뜨리는 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다. 그런데도 아빠는 태연하게 "화를 낼 때는 액션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생동감 있는 연출이었다고 웃어 넘기려 했다. 게다가 패널로 출연한 가수 조성모는 "자신은 이해가 된다"며 "바르게 길을 이끌어주려는 행동이 과했던 것"이라고 아빠를 두둔하는 코멘트를 던졌다.

MC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찬우는 "연락이 안 되는 상황도 아니다. 너무 많이 연락을 하고 체크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신동엽은 "집어던지고 깨부수는 것은 진짜 잘못된 행동이다. 앞으로 절대 그러시면 안 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영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일견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16일 방송된 KBS 2TV <대국민 토크쇼-안녕하세요>의 한 장면. ⓒ KBS 2TV


"난 늘 방황했어요. 지금도 우리 아버지는 한 번도 (표현해 주지 않았어요). 표현해줘야 돼요. 알려줘야 돼요. 아버지가 그렇게 못하면, 엄마라도 번역해줘야 돼요. 아버지는 널 사랑하는 거란다. 나도 널 사랑하는 거란다. 아버지도 안 해줬고, 엄마도 안 해줬어요. 끝끝내 안 해줬어요. 내가 50이 됐는데도. 그래서 우리 세 딸은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받지 못한 마음을 나눠요. 또 남은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무조건 자식은 사랑이에요. 그래야 세상을 나가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언론은 '이영자의 눈물'에 포커스를 맞춰 기사를 쏟아냈다. 시청자들은 이 끔찍한 사연을 '감동'이라는 프레임으로 소비했다. 방송 말미에 아버지는 잠시 반성의 모습을 보였고 패널과 MC들은 "사랑의 방식을 바꾸면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조언했다. 문제의 본질은 흐려졌고 사연의 주인공인 19세 딸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 이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가 무려 지난 8년 동안 지속해 온, 괴상한 문제 해결 방식이다.

'고민이다' '고민이 아니다'라는 투표, 무슨 의미?

위의 사례만 해도 웃음으로 넘기고, 눈물로 포장해 버릴 간단한 사연이 아니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아도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최소한 여성긴급상담전화(1366), 한국여성상담센터(02-953-2017) 등 전문기관과의 상담이 필요하거나 경찰의 수사 내지 개입이 필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안녕하세요>의 아슬아슬함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매주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365일 술을 마시고 다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말려달라는 사연(2017년 6월 12일), 전화와 문자 내역까지 확인하는 엄마의 집착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중학교 2학년 딸의 사연(2017년 7월 17일), 여자친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여자친구를 자신의 소유물인양 생각하는 남자친구를 고발하는 사연(2017년 8월 28일), 아내에게 욕설과 폭언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연(2017년 10월 17일)까지.

과거 방송된 KBS 2TV <대국민 토크쇼-안녕하세요>의 한 장면. ⓒ KBS 2TV


예를 들면 끝이 없을 정도다. 이렇듯 문제가 심각한데도 <안녕하세요>는 안이한 포맷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스트 투표를 통해 '고민이다', '고민이 아니다'를 판단하게 하고, 객석에 있는 방청객들에게 투표를 하게 해 그 결과로 '우승'을 가린다. 고민의 주인공에게 '우승'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과정은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도 않을뿐더러, 불필요하고 쓸모없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방송의 전개는 매주 비슷하다. 마지막에는 서로 서운한 점을 말하게 하고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라며 분위기를 몰아간다. 출연자들은 엉겁결에 화해를 하고 MC들은 합의점을 도출한다. 그러면 패널들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듯 개운한 표정을 짓고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한 마디로 '얼렁뚱땅'이다. 전문가가 없는 상황(정신과 의사를 게스트로 부르기도 했지만 일회성에 그쳤다)의 한계는 수박 겉핥기식의 문제해결로 이어진다.

<안녕하세요> 전혀 안녕하지 못한 방송

KBS 2TV <대국민 토크쇼-안녕하세요>를 보는 시청자들은 결코 안녕하지 못하다 ⓒ KBS 2TV


지난 2010년 11월 첫 방송된 <안녕하세요>는 무려 8년 동안 사랑 받고 있는 KBS 장수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늘 결코 안녕하지 못한 사연을, 전혀 안녕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시청자들은 매주 믿기지 않는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 때문에 이따금씩 조작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녕하세요>가 만약 방송을 위해 설정이나 연출을 가미하고 있다면 포맷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만약 꾸며낸 것이 아니라 실화라면 지금과 같이 은근슬쩍 넘어가는 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안녕하세요>에서 다루고 있는 사연들은 사안의 중대성을 볼 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은 신동엽의 일침, 이영자의 공감과 같이 MC들의 역량에만 의존하고 있다. 또 웃음과 눈물을 통해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희석시킨다. 자칫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지침을 줄 수도 있다. "사랑하니까 혹은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가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데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라는 것은 심각한 폭력이자 2차 가해일 뿐이다.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불안하다. 방송에 출연한 저들은 괜찮을까. 이해하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헤어지라고 강권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살라고 하지 말고 이혼하라고 해야 했던 건 아닐까. 방송에 나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담을 받거나 경찰의 도움을 빌리거나 가정법원에 가도록 해야 하지 않았을까. <안녕하세요>를 보는 시청자들은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와 <직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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