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대학생이 남북정상회담 손꼽아 기다리는 사연

[현지 인터뷰] 한국-북한 모두 경험한 살로메 데트빌러양

등록 2018.04.18 17:31수정 2018.04.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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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 보자 팔짝!!" 북한 어린이들이 단체로 줄넘기를 하는 장면. ⓒ 살로메 데트빌러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를 두 손 모아 기원하는 영세중립국 대학생이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KOREA'를 입력하고 관련 기사를 읽어보는 게 그의 일상이다. 그의 모든 관심은 한반도의 남측과 북측에 쏠려 있는 듯하다.

평창올림픽을 1개월 앞둔 지난 1월 9일 새벽, 중국 지린성 단둥시 기차역. 영세중립국 스위스에서 온 살로메 데트빌러(Salome Dettwiler, 23세)양은 두근두근 평양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압록강 철교를 덜컹덜컹 달려갔다.저 멀리 신의주 시가지가 보였다. 검정색 운동화에 파란 목도리, 빨간 외투 차림인 그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두 볼도 발그레 상기되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차창 밖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혼자서 출발하는 낯선 여행을 좋아합니다. 특히 북한처럼 특별한 나라에도 관심이 많지요.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게 제 특징이거든요.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 문화에 적응하는 일이 재미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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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매력적인 나라" 데트빌러 양은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스위스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호기심이 들었다”면서 “스위스 언론의 대북한 보도성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논문을 작성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데트빌러 양의 북한 여행 장면. ⓒ 신향식


데트빌러 양은 취리히(Zurich) 응용과학대학교(ZHAW)에서 '언론과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있다. 방문학생제도(freemover: 대학 간 교환학생 협약을 맺지 않아도, 학생이 독립적으로 신청하여 공부하는 제도)를 활용하여 지난해 1학기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반 년 뒤엔 중국을 경유해 북한을 닷새간 여행했다.

"10대 시절, 한국 드라마와 K-POP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3년, 라디오 방송국 수습생 때 아시아 정치를 담당하면서 한국과  북한을 알아보기 시작했지요."

14일(한국시간) 취리히 근교 빈터투어(Winterthur)에 있는 응용과학대에서 데트빌러양을 만나 구술대담을 했다. 시내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교정으로 장소를 옮겼다. 한국외대 방문학생 시절과 북한 여행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데트빌러 양은, 취리히에서 독일 괴팅겐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던 중 기자의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학생이다. 한국과 북한을 모두 경험했고 졸업논문도 관련 주제로 작성한다고 하여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영세중립국 대학생들은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이야기만 듣고 스위스 대학생들의 생각을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남과 북, 누가 선이고 악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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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유럽에서 평양 거쳐 서울 가면 좋겠어요" 살로메 데트빌러 양은 “스위스에서 출발하여 신의주와 평양을 지나 서울로 기차여행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까?”란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 신향식


데트빌러양은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애를 쓴다고 했다. 중립국 학생이어서 그런지,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북한 처지에서도 정세를 바라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북한의 핵실험을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하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미국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하려면 먼저 국방력을 강화해야 하겠지요. 그 다음, 경제를 살리려고 할 겁니다."

스위스가 분단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은지 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일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념 대립이 없고 영세중립국인) 스위스에서 태어난 게 정말 다행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분단 원인을 놓고 한국과 북한이 주장하는 게 서로 다르더군요.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 이야기가 더 믿음직스럽게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양쪽을 모두 살아보지 않아서 누가 선이고 악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네요."

데트빌러양은 "한국과 북한에서 각각 역사책을 샀다"면서 "그동안 주로 한국 쪽 주장을 많이 접했는데 반대편 관점도 들어본 뒤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위스 언론에서는 주로 한국 위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북한에 가보니 언론에서 접하던 것과 달랐습니다. 북한을 알아갈수록 신기하더라고요.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 주민과 똑같은 일상생활을 체험해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데트빌러양은 "북한의 실상을 중립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목표"라면서 "북한의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면도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골 농부들도, 감옥의 죄수들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김정은 위원장이나 그의 측근들과도 대화해 보면 좋겠지요. 물론 이것은 제 꿈으로 간직할 뿐입니다. 북한의 모든 사람과 접촉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졸업논문으로 스위스 언론의 대북한 보도성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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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데트빌러 양이 스위스 빈터투어에서 취리히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북한 여행 사진을 노트북 컴퓨터 화면으로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 신향식


대화 주제는 데트빌러양의 대학 졸업논문으로 이어졌다. 그는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스위스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호기심이 들었다"면서 "스위스 언론의 대북한 보도성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기사가 많습니다. 언제나 일방적인 관점이지요. 미국의 시각을 그래도 베끼는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을 긍정적으로, 아니면 중립적으로라도 보도한 사례를 본 적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단어들 역시 중립적이지 않았어요."

"스위스는 중립국인데도 한국과 미국 시각으로 북한을 보도하냐"고 물었다. 그는 "그런 것 같다"면서"그래서 그것이 정말로 사실인지 확인하는 논문을 쓰는 중"이라고 답했다.

데트빌러양은 스위스의 가장 큰 언론 매체 중의 하나로, '스위스의 뉴욕타임스'로 평가 받는 NZZ(Neuer Zuercher Zeitung) 기사들을 분석 중이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보도된 북한 관련 기사 중 50개를 무작위로 선택한 뒤 기사에 자주 등장한 단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연구방법은 '내용분석(담화분석)'으로 오는 8월까지 완성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도, 김정은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스위스 언론에 비판적으로, 부정적으로 언급되곤 합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그들보다 더 '미친', '잔혹한' 지도자로 묘사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 및 시진핑 주석에 비해 얼마나 다른 단어로 보도되는지 분석해 보려는 겁니다. 또,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모두 공산국가의 지도자인 점을 감안하여 혹시 비슷하게 표현되는 사례가 있는지도 알아보려고 합니다."

"북한의 핵실험 찬성하진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어"

데트빌러양은 스위스 언론이 직접 북한을 취재하는지 아니면 인터넷으로 간접 취재하는지도 궁금해 한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스위스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스위스 언론이 한때 그에게 호의적이었다"면서 "그가 북한의 지도자가 된 2011년부터 보도성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방문학생 시절,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에 관한 모든 보도를 주시했습니다. '문화 간 의사소통', '한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 정치와 해외 정책' 등 관련 강좌를 수강했지요. 한국과 미국의 관점에서 한반도 상황을 접한 셈입니다. 닷새간 북한을 방문한 것도 이와 같은 관심에서 시작한 겁니다. 반대편 시각으로도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데트빌러양은 양쪽 처지에서 현상을 바라봐야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 "그림 전체를 보려면 나만이 아니라 다른 쪽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나라를 일방적으로 보게 되고, 합리적인 관계를 형성하기가 힘들어질 겁니다. 제대로 교류할 수도 없겠지요. 정치든 경제든 모든 분야에서 한쪽에서만 바라보는 일은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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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들은 지나치게 경쟁" 살로메 데트빌러 양은 자기 생각을 쓰게 하기보다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치중하는 한국교육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또, 한국 학생들은 지나친 경쟁 구도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신향식


데트빌러양은 한국외대에서 무척 바쁘게 지냈다고 한다. 강의를 듣고 과제를 제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놀러 다니는 대신 한국인들과 더 많이 어울렸다. 한국 문화를 더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내 영어 잡지 기자로도 활약했다. '경쟁을 요구하는 상대평가'를 주제로 기사를 작성한 적도 있다. 한국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스위스보다 경쟁이 심하더군요. 직접적인 경쟁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서로 일정 거리를 두려는 학생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로 상대평가인 교과목이 그렇더군요. 그들은 시험기간에 대부분 밤새도록 교재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지요. 몇몇은 압박감이 심했는지 시험 전인 데에도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그에게 학습 내용 자체는 스위스 대학보다 쉽게 느껴졌다. 시험 문제들은 강의 내용이나 교재에서만 출제되었다. 그 때문에 주제를 깊게 이해할 필요조차 없었다. 결국 암기 위주로 시험 공부를 하면 된다는 뜻이다. 자기 생각을 쓰게 하기보다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치중하는 한국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보였다.

"저는 방문학생이었기 때문에 절대평가로 학점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한국 학생들과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한국외대에서 경험한 (암기식) 평가 방식이 지식을 쌓는 데 비효율적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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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요" 방한복과 방한모 차림의 북한 어린이들. ⓒ 살로메 데트빌러


"한국음식, 건강식이면서도 비싸지 않아 좋았다"

데트빌러양은 지난해 추석 연휴를 광주광역시에 있는 한국 친구 집에서 보냈다. 한국은 개인주의적인 스위스에 비해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데트빌러 양은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한국 음식을 언급했다. 음식을 놓고 보면 한국이 최고라는 뜻이었다. 그는 "스위스의 음식값이 비싸지 않냐"고 기자에게 질문한 뒤 "한국에서는 건강식을 싸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채소와 콩, 면이 듬뿍 들어가서 즐겨 먹었습니다. 특히 닭갈비와 안동찜닭이 무척 맛있더군요. 식사하고 남은 돈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 썼습니다. 품질 좋은 커피를 마시면서 공부할 수 있어서 기뻤거든요."

데트빌러 양은 외국인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한국인들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요청도 하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이 먼저 다가와서 도움을 준 적이 많다. 제주도, 남이섬, 춘천, 광주 등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훈훈한 인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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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데트빌러 양은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대학생이다. 사진은 유럽의 지붕으로 통하는 융푸라우로 향하는 길목 풍경. ⓒ 신향식


그는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도 한마디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상당히 많이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안타깝더군요. 한국인들이 여성 정치인들에게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될까봐 걱정되었습니다."

데트빌러양은 "한국의 대기업들은 경제를 활성화하여 국가경쟁력을 높이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정치권에 너무 많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면서 "이것은 한국 정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동정심이 많은 분으로 보입니다. 그의 눈망울을 한번 보셔요. 그가 퇴임한 뒤 이전 대통령들과 다른 미래가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그의 부모가 북에서 남으로 왔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결실을 낼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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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북한에 모두 관심 많아요" 살로메 데트빌러 양은 한국외대에서 방문학생으로 공부하고 북한도 여행해 보는 등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모두 관심이 많다. ⓒ 신향식


"햐~~ 한국라면 먹고 싶다"... 한국서 경험한 추억 떠올려

데트빌러양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면서 "햐~~, 한국라면 먹고 싶다"하면서 한국서 경험한 추억을 떠올렸다. 또, 북한 어린이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노트북 컴퓨터로 보여주며 한국말로 "귀여워요" 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의 머리는 하루종일 한반도의 남측과 북측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찬 모양이다.

"스위스에서 출발하여 신의주와 평양을 지나 서울로 기차여행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까?"
"예! 당근이지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짧고도 강하게 한국말로 답변했다.

'남'과 '북'이 궁금한 영세중립국 대학생 데트빌러 양.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2018년 4월의 봄바람(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그를 더욱 설레게 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9일 전(D-9).

오늘 그의 눈은 신문에 실린 '종전선언',' 평화협정'이란 단어에 고정된다.
#남북정상회담 #김정은 #평화협정 #스위스 #영세중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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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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