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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딸 성폭행 당했는데... 엄마, 그런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TV 리뷰] tvN <라이브>, 여성폭력에 대한 대처 가이드를 제시하다

18.04.23 20:19최종업데이트18.04.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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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공권력이 개입해야 하는 범죄라기보다는 사적인 영역의 문제였다. 가정폭력의 가해자 남편은 '내 아내를 때렸을 뿐이데 뭐가 문제냐'는 논리로 변명하고 피해자 여성이 남편을 고소하면 아내가 '가정을 버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성폭력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라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며 쉬쉬해야 하고, 데이트 폭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이는 여성은 사적 소유물이므로 마음대로 해도 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생활이므로 공권력이 개입할 수 없다는 가부장적 시선에서 비롯된 태도다.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다루었지만, 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런 가부장적 태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을 볼 때마다 무척이나 불편했다.

그런데 tvN 드라마 <라이브>는 달랐다. 홍일지구대 대원들이 만나는 사건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아동성희롱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홍일지구대 대원들은 기존의 시각과는 다르게  여성에 대한 폭력을 명백히 '공적인 범죄'로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는다.

최근 미투운동으로 성폭력이 개인적 사건에서 공적인 이슈가 되었듯, 드라마에서도 드디어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공적인 영역으로 나온 것이다. <라이브>의 대사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관점,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피해자가 자책하는 슬픈 현실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아까 성폭행 직전에 우리가 구해낸 여자도 자기 걱정은커녕 결혼 상대자가 어떻게 볼까를 염려하더라. 너무 슬프지 않니? 피해자가 자기걱정은 안 하고 주변의 상황 주변의 시선, 주변의 사람을 걱정하는 게." (9회, 정오)

9회 방영분에서 정오(정유미)는 신고를 받고 달려가 성폭력을 당하기 직전에 있는 한 여성을 구한다. 그런데 피해 여성이 위로하는 정오에게 건넨 말은 "오늘 일 약혼자가 알면 안돼요. 곧 결혼하는데 저를 더럽다고 생각할까봐"였다. 이는 극 중 이 여성이 스스로를 약혼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피해자임에도 도움을 요청하며 범죄로 접근하지 못하고 남자친구와의 사적인 관계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다. 즉, 여성에 대한 폭력은 범죄가 아니라, 남성의 소유물인 여성이 더럽혀지는 사적인 일일 뿐이다. 피해자인 여성조차도 이런 시각으로 자신을 억압하는 현실. 그래서 정오는 '슬프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게 범인의 잘못이라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야. 왜 수많은 길을 놔두고 동생과 도서관에 가기 위해 그 산길을 택했을까. 왜 좀 더 저항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힘이 약한가. 왜 처음부터 강해서 자신을 동생을 지키지 못했나. 내가 12년 전 그 때 범인보다 그 장소를 지나갔던 나를 미워했던 것처럼 너 역시 사는 내내 수 만 가지 자책할 거리가 떠오르겠지만, 분명하게 알아야 돼. 그 어떤 것도 니 잘못이 아니야. 범인의 잘못이지." (12회, 정오)

"성폭력은 여학생들에게 밤에 다니지 말라, 짧은치마 입지 말라 화장하지 말라고 해서 예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에 잡힌 마현 발바리 같은 흉악범만 조심한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연인, 부부, 부모자식, 교내 학우들 사이에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14회, 정오)

피해자가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이런 슬픈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12회에 정오가 성폭행을 당한 자매에게 던지는 대사, 그리고 14회에 학부모들 앞에서 하는 이야기는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흔히 성폭력의 원인을 여성의 옷차림이나, 밤에 여자가 외출하는 것이 문제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정오가 14회에 학부모들 앞에서 분명히 말하듯,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고, 밤길을 조심하지 않는다고 성폭력이 예방되는 것도 아니며, 이런 것들이 성폭력을 유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교육과 성폭력 교육의 부재,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과 차별적인 시각이 문제인 것이다. 성범죄에 대해 여성의 옷차림과 행위를 탓하는 건, 또 하나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억압에 불과하다. 따라서 피해자는 전혀 자책할 이유가 없다. 정오가 그토록 강조한 성교육, 성폭력예방교육과 더불어 성평등 교육이 절실할 뿐이다.

말하고 나서야 시작되는 진정한 치유

tvN 토일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상수야 나 너무 시원해. 그 일을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나봐.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나봐. 너한테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어서. 나 너무 시원해 상수야." (14회, 정오)

14회에서 정오는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종용받는다. 정오는 이에 항변하면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에 대해 상수에게 털어 놓는다. 정오는 12회에 과거 자신의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장미에게 '이런 내가 이상해요'라고 이야기할 만큼 연애도 하고, 재밌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당당한 경찰로 아무 문제없이 지내왔다. 하지만 이런 정오조차도, 자신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정오는 상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자신의 슬픔에 진정으로 공감해주며 함께 울어주는 상수에게 드디어 '시원하다'고 말한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던 일' 그 일을 이야기한 후에야 비로소 분노와 억울함, 슬픔 등 억눌렸던 감정들이 해소되는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공권력이 개입해야 하는 범죄의 문제보다 유교적 전통에 따르는 윤리의 문제로 인식한다. 때문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집단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 되고 여성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여성차별적인 시선이다.

우리는 강도를 당했을 때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에 알리고 법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성폭력도 강도·살인과 같은 '범죄'다. 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위로와 공감을 받으며, 강력하게 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이것이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자신의 상처로부터 진정으로 치유되고, 나아가 성폭력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다.

사생활일 수 없는 가정폭력

tvN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가족, 부인, 딸을 때리는 것도 살인미수처럼 심각한 범죄니까요." (12회, 장미)

"어린 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묵묵하게 받아들인 어머니의 무지도 저는 용납이 안 되고, 남편이 아무리 무서워도 그 날 애들이 강간을 당했는데도 국가가 제공하는 안전한 보호처로 가지 않고, 애들을 데리고 폭력을 쓰는 집으로 다시 귀가를 하고." (12회, 장미)

가정폭력 역시 결코 사적인 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장미의 이 대사는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정폭력 가해자는 스스로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아내, 내 딸을 왜 내 마음대로 못하느냐'가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항변이다. 하지만 여성과 아이들을 소유물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들을 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폭력이며 차별이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매 맞는 아내'들의 경우 그 이유가 경제적인 것이든, 육아와 관련된 것이든, 폭력을 감수하면서도 가정을 지켜내려 한다. 하지만 이는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보다, 폭행에 저항해 가정을 버리는 아내를 더 비난하는 가부장적 사고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장미의 표현대로 폭력에 정당하게 대항하지 않는 것은 '무지'와 다름없다.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아이도 지킬 수 있다. 폭행하는 남편을 참아내는 것이 가정을 지키는 것이 아님을, 가정에 머무는 것만이 여성으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가정폭력피해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적 지원 체계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당당한 대응만이 변화의 길

"오늘 오양촌하고 최명호가 그러더라. 범인을 잡아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피해자는 피해를 입은 채 평생 살아가야 하니까. 근데 더 중요한 게 있어. 내가 범인을 잡았다는 거. 그래서 또 다른 5차, 6차, 7차 피해자를 만들지 않고 구했다는 거." (상수, 13회)

연쇄 성폭력범을 잡은 상수는 정오와 술 한 잔을 나누다 이렇게 말한다. 상수가 전하는 양촌과 명호의 말은 옳다. 드라마에서 연쇄 성폭력범을 잡은 후에도 곧바로 성폭력 예고 사건이 터졌듯,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수의 말도 옳다. 범인 한 명을 잡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명백히 범죄로 규명하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향후 다른 범죄를 예방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게 한다.

tvN 토일 드라마 <라이브>의 한 장면 ⓒ tvN


드라마 12회와 13회에서 성폭행범의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피해자 경진의 용기였다. 경진은 처음엔 자신이 겪은 폭력을 쉬쉬하며 넘어가려 하지만, 정오의 설득에 용기를 내어 정확하게 진술하고 이 덕에 홍일지구대 대원들은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자신이 당한 범죄에 대해 여성들 스스로가 당당하게 대응해 나간다면, 더 이상 여성을 성적욕망의 대상 혹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보고 함부로 대하는 이런 범죄들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나아가 세상이 바뀌는 날도 올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곳곳에서 드러나 듯, 여성에 대한 폭력은 단지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힘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그리고 사람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스며든 가부장적 시선들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지켜나가고 보호할 힘마저 잃게 한다.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괴로워하면서도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죄책감과 수치심을 경험한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이 심리상담을 받으면서도 법적으로 대응하고 행동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이런 가부장적 시선이 여전히 여성들을 옥죄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홍일지구대 대원들이 말하듯, 여성을 향한 폭력들은 명백히 범죄라는 것이다. 분노를 개인적인 감정으로 돌리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때 이런 가부장적 시선을 바꾸어 갈 수 있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이런 폭력들이 결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까지 훼손하지는 못함을. 2012년 여성인권보장 디딤돌상을 수상한 한 재판장의 공판 마무리 발언을 덧붙인다.

'유무죄를 떠나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절대 존엄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겨내기 힘드시겠지만 인간 존엄성이 파괴된 것은 아닙니다. 누구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여성가족부 공공기관 내 성폭력 예방교육 자료 중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라이브 성폭력 가부장제 페미니즘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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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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