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읊는 시, 시로 감상하는 사진

[서평]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건>

등록 2018.04.20 09:10수정 2018.04.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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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도돌이표 같은 질문을 반복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빨간 꽃잎 다 떨어진 후에야 이파리 돋아난다는 상사화를 보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아픈 감정으로 가늠해 봤던 적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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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건> / 시·사진 최병관 / 펴낸곳 한울엠플러스(주) / 2018년 4월 10일 / 값 29,000원 ⓒ 한울엠플러스(주)


이 책,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건>(시·사진 최병관, 펴낸곳 한울엠플러스(주)) 을 읽는 내내 시집인지 사진집인지를 가려보기 위해 도돌이표 같은 반복질문을 하고, 상사화에 얽힌 전설을 더듬듯 시구에 스며있는 시상을 가슴앓이를 하듯 가늠해봤습니다.


그랬습니다. 마음으로는 시상이 어른거리고 있는 사진을 읊고, 가슴으로는 사진을 읊고 있는 시를 감상합니다. 느림보 같은 마음으로 사진 속 풍경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사진에 곁들여진 시상을 나누게 되니 내가 시집을 보고 있는 것인지 사진집을 보고 있는 것인지에 가슴이 혼미해집니다.

최병관 저자는 휴전선 155마일, 서쪽 끝 말도부터 동쪽 끝 해금강까지를 세 번이나 횡단하며 사진을 찍어 2010년엔 유엔본부에서 개인전까지 열었던 사진가이자 시인입니다.

찍고 싶으면 찍고, 찍기 싫으면 관둬도 되는 사진 찍기는 아무나 할 수 있을 겁니다.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는 시선을 끌고, 폼을 잡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사진을 찍는다는 건 빛으로 그려지는 순간을 찰나에 포획해야만 하는 예술입니다.

사진은 발품과 땀, 인고와 감각으로 건져내는 빛그림이고, 시는 허공조차도 가슴앓이로 꽉 채워야만 토해낼 수 있는 필력입니다. 한 순간을 놓쳐 일 년을 기다리는 사진가도 있었습니다. 한 순간을 포착해 평생을 가슴 뿌듯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또한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시는 사진을 비추고 있고, 사진은 시를 담고 있습니다. 시를 먼저 쓰고 시상과 어울리는 사진을 때깔맞춤이라도 하듯 고른 것인지, 사진을 먼저 찍고 사진에서 우러나는 시상을 단박한 시구로 정리한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사진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새롭고 귀한 사진을 찍기 위해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는
사진가로서의 한계를 느낄 때
우울해지기도 하며 멍청해지기도 한다
사진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끝없는 길을 걸어가는 고달픈 삶인데
왜 그런 길을 택해야 했는지
하늘과 땅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건>, 234쪽


하나의 시에 곁들인 한두 장의 사진이 쌀밥 수북한 밥숟가락에 얹어 준 맛난 반찬처럼 시 읊는 맛을 돋아줍니다. 연분홍빛으로 찾아온 봄은 어느새 살며시 왔다 가버리고, 바다를 주제로 하고 있는 사진들은 잃어버린 추억을 서성이게 하는 바닷가 풍경입니다. 바닷가에서 읊은 시구는 알록달록한 그리움이고, 형형색색으로 그려낸 시인의 마음은 어머니의 젖무덤을 더듬은 갓난아이의 배고픔입니다.

깊어 가는 가을 소리는 바람 부는 사진에서 읽을 수 있고, 사진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가는 찰칵 거리며 떨어지는 셔터소리와 타박타박 내딛는 달팽이의 걸음소리로 연상됩니다.

시 한수 읊고, 사진 한 장 곁들여 감상하다보면 시 읊는 눈동자엔 사진으로 그려진 그리움이 맺히고, 사진 감상하던 가슴엔 시로 그려진 그리움이 그리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 그려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건> / 시·사진 최병관 / 펴낸곳 한울엠플러스(주) / 2018년 4월 10일 / 값 29,000원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건 - 시와 사진의 속삭임

최병관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 2018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건 #최병관 #한울엠플러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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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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