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피켓 든 아이들

[그림책으로 인권 읽기 ①] '노동'을 주제로 한 그림책들

등록 2018.04.19 15:22수정 2018.04.1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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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을 쓰고, 혼자라고 느끼는 이를 바로 알아채고, 손잡고 걷는 걸 좋아하나요? 그럼 당신도 '쫌' 이상한 사람이군요.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미겔 탕코, 문학동네어린이)에 나온 대로요. 어떤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인지 나열하고 있는 그림책에서 이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다른 이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 누구나 그럴 것 같은데, 사실 아무나 그러지는 못하지요. 그래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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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이상한 사람들'이 전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이 인권이 자리잡은 사회가 아닐까? ⓒ 문학동네어린이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카페 봄봄에도 격주 목요일 저녁마다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인권 이야기를 나눈대요. 인권을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내 행복과 별개로 다른 이의 행복을 함께 빌어줄 수 있는 마음'이라고 하면 가깝게 느껴지지 않나요?


게다가 그림책으로 이야기한다고 하니 좀 만만해 보입니다. 그래서 냉큼 참가 신청을 했는데요. <쫌 이상한 사람들>이 그렇듯 그림책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더군요. 4월 5일, 어른 아홉이 그림책 예닐곱 권을 펼쳐놓은 채 '노동'을 주제로 이야기 나눈 첫 모임 풍경을 살짝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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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도구>는 도구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그림책이다. “한 사람이 구두를 만들며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는 권윤덕 작가 말처럼 서로의 노동인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다. ⓒ 신정임


첫 번째 책은 권윤덕 작가가 지은 <일과 도구>(권윤덕, 길벗어린이)였어요. 작가는 '우리 동네'를 그리겠다고 찾아간 방앗간, 병원, 의상실 들을 취재하면서 일터마다 즐비하게 널려 있던 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 그림책엔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이 화려한 색채로 표현돼 있습니다. 우리 삶이 이 아름다운 노동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요.

예쁜 그림이 말을 거니 함께 느낌을 공유합니다. "평소 병원에 가도 진찰 받는다고만 생각하지, 일로 바라보지 않는데 도구를 중심으로 보니 그 역시 노동이라는 걸 알겠네요." 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의 작업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 <일과 도구> 덕에 우리는 깨닫습니다. 우리가 먹거나 쓰고, 이용하는 모든 것 중 노동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걸. 결국 우리 삶이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그 노동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 뿐이지요.

'노동'이 나오니 무엇을 노동으로 볼지를 한참 이야기했어요. "엄마, 일하시니?"라고 물을 때 "아니, 집에 계세요"라고 답하는 것과 가사관리사가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요? '재능 기부' '봉사' 같은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많은 무료노동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를 인정받고 있을까요? 왜 우리는 '노동' 하면 허드렛일처럼 몸 쓰는 일만 생각할까요? 우리도 정답은 모릅니다. 의문을 품고 사회가 함께 기준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겠죠. <일과 도구>는 후기를 보면 작가가 얼마나 이 책에 정성을 쏟았는지가 느껴집니다.

"이 책을 그리면서 꿈꾸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존경받고 행복해지는 꿈, 농부가 더 이상 자신이 농사지은 배추를 갈아엎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동네 병원 의사가 기계 돌리듯 3분에 1명씩 환자를 돌보지 않아도 되기를, 정성 들여 만든 옷이 덤핑으로 팔려가 재고 진열대 구석에 쌓이는 일이 없기를."



의사는 남자, 의상실 디자이너는 여자처럼 성역할이 고정화돼 있는 모습이 좀 아쉽긴 해도 노동의 결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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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철입니다>에서는 지하철이 화자가 되어 지하철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삶 속엔 자연스럽게 노동이 녹아있다. ⓒ 신정임


노동이 곧 우리 삶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책을 볼까요? 지하철이 주인공인 <나는 지하철입니다>(김효은, 문학동네어린이)이지요. 열차 속 무표정인 사람들에게도 다채로운 빛깔을 띤 삶이 있음을 지하철이 전합니다. 그 속엔 그들이 하는 일 얘기도 빠질 수 없고요.

어린시절 언제나 달리기 일등이던 회사원 완주 씨는 딸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퇴근길을 일등으로 개찰구를 향해 달립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복순씨는 딸이 좋아하는 문어와 딸의 딸이 좋아하는 전복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들고 열차에 올라타죠. 또, 신발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구두수선공, 재성 아저씨는 지하철에 타서도 사람들 발끝만 쳐다보네요. 오늘을 수고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토닥여주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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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의 새 옷>에서 펠레는 옷 한 벌을 얻기 위해 많은 일을 해낸다. 펠레가 새 옷을 손에 넣었을 때 기분은 어떨까? ⓒ 신정임


아이들과 노동의 의미를 오롯이 나누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펠레의 새 옷>(엘사 베스코브, 비룡소)을 함께 보세요. 양을 돌보는 아이, 펠레가 옷이 작아지자 새 옷을 짓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어른들은 일방적으로 돕지만은 않죠.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키고 펠레는 그 일들을 해냅니다. 그렇게 땀을 쏟은 후 마침내 자기 노동으로 만든 새 옷을 손에 쥔 펠레가 느낀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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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만 털을 깎아서 겨울에 감기에 걸린다는 양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양들은 지금 파업 중>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 신정임


이제 노동자의 권리 이야기를 해볼까요? 양들과 젖소들이 파업을 하는 <양들은 지금 파업 중>(장 프랑수아 뒤몽, 봄봄)과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도린 크로닌, 주니어랜덤)입니다. 양들 사연은 이래요. 겨울마다 털깎기를 당해온 양들이 순하디 순했던 눈빛을 매섭게 뜨면서 젖소처럼 이용만 당하지 않을 거라며 털깎기를 거부합니다.

그렇게 양들이 파업에 돌입하자 평화롭던 농장은 삽시간에 달아오르고 농장 동물들 역시 양이 털을 깎아야 한다, 아니다로 두 편으로 갈라집니다. 양들의 파업으로 일자리를 잃을 지도 모르는 양치기 개들은 안절부절 못하고요. 양들의 파업은 성공할까요?

양들은 젖소들이 이용만 당한다고 했는데 여기 그건 편견일 뿐임을 보여주는 젖소들이 있네요.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 속 젖소들은 헛간에서 타자 치기를 즐깁니다. 그런데 헛간 환경이 너무 안 좋네요. 주인인 브라운 아저씨에게 편지를 씁니다.

'브라운 아저씨께, 헛간이 너무너무 추워요. 밤마다 덜덜 떨고 있어요. 전기담요를 깔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젖소들 올림.' 꽤 정중한 편지였지만 브라운 아저씨는 딱 잘라 말하지요. "어림없어, 전기 담요는 안 돼!" 그러자 젖소들은 '오늘은 쉽니다. 우유를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헛간 문에다 편지를 붙인 뒤 파업에 들어가죠. 다음날엔 암탉들까지 파업에 가세하고요. 브라운 아저씨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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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동물들이 '글'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토의토론,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젖소들이 몸소 알려준다. ⓒ 주니어랜덤


두 그림책을 보니 할 말들이 쏟아집니다.

"양들의 파업으로 양털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농장 동물들이 연대를 하네요."
"농장 동물들이 대책회의를 하는 장면에 양이 없어요. 그러면 철저히 자기들 입장에서 대책을 세우지 않을까요? 인권은 당사자 입장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농장 동물 중 나는 어떤 입장인가도 생각하게 되네요. 중재자 역할을 한 분홍돼지인지 같이 행진하겠다고 한 병아리인지. 실제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또 나는 어떤 입장인가도 생각하게 되고요."

<탁탁 톡톡 음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네요.

"젖소들이 글 힘을 빌려서 자기들 요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토의‧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겠구나도 느꼈고요."
"맞아요. 젖소, 닭, 오리는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잖아요. 그들이 의견을 모아서 글을 통해 한목소리를 낸다는 발상이 신선했어요. 마지막에 전령사 역할을 하던 오리가 젖소가 쓴 방법을 그대로 쓰는 부분에서는 허가 찔렸고요."

뉴스에서 파업, 연대 같은 말을 들을 때면 머리에 빨간 띠 두른 모습들만 떠올라 외면하고 싶었을 텐데 그림책 속 동물들의 이야기로 접하니 현실감이 없어서 더 이해가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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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는 2000년 미국 LA에서 있었던 청소 노동자들 파업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다. ⓒ 고래이야기


현실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그림책도 물론 있어요. 2000년 미국 LA에서 청소노동자 8000명이 벌였던 파업을 바탕으로 그린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다이애나 콘, 고래이야기> 같은 책이지요. 책 속 주인공인 카를리토스의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카를리토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주 힘들게 살아갈 만큼밖에 돈을 벌지 못하는 세상은 불공평해! 그래서 청소노동자들이 모여 투표를 해서 일을 멈추기로 했단다."


이 투쟁으로 LA 청소노동자들은 시간당 70센트씩 임금이 오르고, 의료보험에 가입하게 됐다고 해요. 소박한 성과처럼 느껴지네요. 뉴스에서 보곤 했던 노동자들 투쟁도 그들이 바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닌데 색안경 쓰고 보느라 제대로 못 본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청소 노동자들 투쟁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네요. 올해만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이 되자 고려대, 연세대, 홍익대 등에서 인력을 감축하고 아르바이트를 채용하겠다고 했다가 노동자들이 크게 저항하자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지요. 동국대는 아직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싸우고 있고요. 일자리를 지키고 싶은 이들의 절박함을 외면하며 살아온 건 아닌가 반성도 해봅니다.

LA 청소노동자들의 승리 뒤엔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청소노동자가 세상을 깨끗하게 만든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함께 한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연대가 있었지요.

그 도움을 잊지 않은 카를리토스 엄마는 투쟁이 끝난 뒤 "노동자들에게 엄마 도움이 필요할 때 반드시 가겠다고 약속했단다"며 다른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으로 주저 없이 달려가지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직접 가서 연대는 못하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도 궁리해 봅니다. 우리 삶은 그 누군가의 노동으로 채워져 있으니까요.

그림책 몇 권으로 얼마나 얘기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2시간이 후딱 가버렸네요. 글이 적으니 그림 사이사이에서 무수한 질문들이 쏟아지더군요. 그 질문들에 같은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만의 질문과 답을 찾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한번 그림책을 펼쳐보시겠어요? 인권뿐 아니라 삶을 읽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덧붙이는 글 앞으로 4월 19일(목) 여성+인권, 5월 3일(목) 가족+인권, 5월 17일(목) 전쟁+인권, 5월 31일(목) 생태+인권, 6월 15일(금) 소수자+인권 을 다룬 그림책들을 앞에 두고 이야기 나눕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은 070-7534-9117로 문의하세요.

쫌 이상한 사람들

미겔 탕코 지음, 정혜경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2017


#인권 그림책 #카페봄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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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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