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고부갈등' 때문에 심리치료까지 받은 감독의 다큐 영화

[페미니즘 읽어주는 남자 2] 영화 < B급 며느리> 고부갈등의 진짜 문제는

18.04.19 18:26최종업데이트18.04.19 18:26
원고료로 응원

영화 < B급 며느리>의 포스터. ⓒ 에스와이코마드 , 글뫼(주)


페미니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따로 공부하거나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생각을 더해 읽어주려고 합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지만 어려운 사람들, 페미니즘에 대한 몰이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드라마, 책, 방송 등을 보고 읽으며 전달하겠습니다. 아직 페미니즘이 어색한 당신, 페미니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저와 함께하지 않으실래요? - 기자 말

어렸을 적, 나는 엄마를 보며 의아하던 적이 많았다. 그 당시 이유는 정확히 몰랐지만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날이면 몹시 피곤해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빠와 자주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우리 집은 할머니 집에 가지 않기로 선언했다. 할머니의 푸대접에 엄마와 아빠 모두 나름의 화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 간의 연을 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간다거나 엄마를 제외하고 나와 아빠 정도만 간 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부모님은 내게 여러 번 설명했다. 연을 끊기로 마음먹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엄마는 시댁에 가면 최하위 일꾼처럼 부려지는 게 힘들었다.

영화 < B급 며느리>의 한 장면. ⓒ 에스와이코마드 , 글뫼(주)


가족 간의 연을 끊게 만든 고부갈등, 이처럼 복잡한 일이 또 있을까. 흔히 고부갈등을 설명하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 말 어딘가 불편하다.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한여진 형사(배두나 분)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에 맞장구치는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까지 다른 여자들을 적으로 대해온 게 아닐까요?"

고부갈등을 바라보며 '여성 vs. 여성'의 편협한 시각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쉽다. 그러나 선호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 B급 며느리>는 달랐다. 고부갈등을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생생한 날 것의 고부갈등

선호빈 감독은 직접 본인 가족의 고부갈등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영상이 담겨 있는 이 영화는 선호빈 감독의 부인 진영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분명 진실은 하나인데, 끝없이 이어지는 진실공방에 지친 남편 선호빈씨에게 증거로 영상을 찍어보라고 했던 것이다. 그 영상을 시작으로 영화 < B급 며느리>가 제작됐다.

영화는 계속해서 진영과 시어머니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갈등을 다룬다. 여기서 감독 선호빈씨는 관찰자와 출연자의 역할을 겸한다. 때로는 영상 속으로 직접 들어가 중재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주 역할은 관찰자다.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한 시점, 고부갈등은 극에 달했고 호빈씨는 심리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에게 고부갈등은 원인을 파헤치고 싶은 과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생활 밀착형 다큐멘터리를 통해 고부갈등을 알기 위해 관찰자로 나선다.

영화 < B급 며느리>의 한 장면. ⓒ 에스와이코마드 , 글뫼(주)


진영씨는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어머니는 명절에 손주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고 주변에 거짓말을 해야 한다니 눈물이 난다.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두 사람은 많이 다르다.

분명 행복하게 시작했던 결혼이었다. 진영씨는 "시댁 식구들은 정이 많다"며 "남편의 성격과 비슷해서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출산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들 해준이의 옷 문제만 해도 그랬다. 진영씨가 옷을 입혀서 보내면 시어머니는 옷을 바꿔 입혔다. 그게 진영씨는 싫었다. 마치 싸움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영씨는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에게 며느리로서 어른의 말이라면 "네"라고 대답하며 오직 따르기만을 바라는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납득해야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며느리는 "손님이 아니라 시집 온 하인"이라는 시댁 식구들과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싸움의 반복이다. 시어머니는 진영씨에게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역할이라며 온갖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준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진영씨는 "며느리니까 당연한 것은 없다"며 부딪친다. 심지어는 이렇게 외친다.

 "제가 싫으시면 제 아들도 못 보신다구요."

영화는 시원하게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시댁 식구들이 정이 많고 좋다던 그녀와 시어머니가 어째서 이렇게 싸우게 됐는지, 사소하게 해준의 옷을 시어머니는 왜 자꾸 갈아입히는 것인지 같은 것도 말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고부갈등의 원인과 해답을 제시하는 영화라기보다는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한 과정 그 자체인 영화다. 호빈씨는 고부갈등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게 됐고 진영씨는 자신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더불어 시어머니도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을 것이다.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소개하고 싶은 이유

영화 < B급 며느리>의 한 장면. ⓒ 에스와이코마드 , 글뫼(주)


결혼을 통해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강요받는 여성의 문제, 그에 따라 함께 생겨나는 고부갈등을 다루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었다. 물론 < B급 며느리>라는 영화 자체가 고부갈등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고 있다거나 원인 및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여러 가지 고민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다.

진영씨는 "며느리도 손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댁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시집 온 며느리는 남편 집안의 구성원이고 제일 밑 하인의 위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는 남편의 집안에 소속되어 가사 및 육아 노동을 하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며느리의 위치는 당연히 그렇다는 것처럼. 이 영화는 분명, 고부갈등에 대해 그리고 가부장제의 차별 문제에 대해 사유해볼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에 < B급 며느리>를 추천한다.

고부갈등 며느리 시어머니 페미니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