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x이랑 잤니?" 3층 남자가 바꿔놓은 우리 일상

층간소음 1년째... 쾌적한 주거에 살 권리를 침해 받았습니다

등록 2018.04.22 13:53수정 2018.04.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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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시 40분. 두 시간 전부터 3층에 사는 윗집 남자는 음악 감상 중이다. 임재범으로 시작해 이승철을 거쳐 지금은 지디다. 지겹다는 말이 추임새처럼 나온다. 덩달아 심장박동도 50%는 빨라졌다. 이러다 제 명에 못살지 싶어 깊은 숨을 쉰다. 이런 생활이 일 년째다.


3층 남자가 이사오기 전까지 우리집이 좋았다. 5층짜리 아파트 동 여러 개가 나란히, 넓게 서 있어 고즈넉하고 조용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집에서 들리는 소음의 전부였다. 동네 이름답게 나무가 많아서도 좋았다.

봄이면 자목련을 시작으로 벚꽃, 라일락, 철쭉이 벌이는 꽃잔치를 즐겼고, 여름이면 나무의 짙푸른 잎을 보며 열기를 식혔다. 가을엔 아파트를 돌며 단풍구경을 했고, 겨울엔 나무에 스며드는 검푸른 저녁 하늘과 가로등을 보며 시린 공기가 만들어내는 빛을 감상했다. 남들은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계절을 즐기고 싶어서 여행을 간다지만 우리는 집에서 이미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윗집 남자가 이사오면서 우리의 평온함이 산산조각 났다. 이사 오던 날부터 발소리에 천장의 형광등이 흔들렸다. 며칠 후엔 음악과 티비 소리에 잠을 깼다. 어느 밤엔 '다다다닥' 뛰는 소리가 나고 여자가 소리를 지른다. "그 x이랑 잤니? 어떻게 너가 나한테 그래" 남자가 뭐라고 또 고함을 지르며 대꾸한다. 부부싸움을 크게 한다 싶었다.

그 다음엔 문을 세게 닫는 소리, 음악에 맞춰 노래 부르는 소리, 뛰어내리는 소리 등 생활소음이라 하기엔 참기 힘든 소리가 시리즈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가장 스트레스가 큰 건 은밀해야 할 남녀의 소리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다 하다 남의 사생활까지 공유한다 싶었다. 윗집의 소음은 이제 밤낮을 가리지 않는 일상이 되었다.

층간소음을 중단하려는 노력, 소용없었다




초기엔 찾아가서 정중하게 소리를 낮춰 달라고 부탁했다. 두어 번은 소리를 줄여주는 척 했다. 여러 번 찾아오는 우리집이 성가셨는지 세 번째부터는 아예 대꾸가 없다. 문을 두드리고 인터폰을 수없이 해도 소용 없다. 경비실과 관리사무소에 얘기를 했다. 경비아저씨는 초인종 한번 누르는 걸로, 관리사무소에선 소음자제 안내문 붙이는 걸로 끝이다. 몇 번을 망설여 경찰에 신고했다.

처음 신고엔 경찰이 왔다. 하지만 위층이 잠깐 음악을 끈 상태라 그냥 갔다. 두 번째 신고엔 경찰이 한숨을 쉬며 와봐야 싸움만 된다며 경비실에 이야기하란다. 이런 일에 경찰까지 동원해야 하나 싶어 더 이상 신고를 안했다. 대신 환경부가 층간소음을 위해 만든 '이웃사이'에 조정을 신청했다. 소음을 일으키는 집에 내용증명을 보내 중재를 해주고, 실패하면 소음 측정을 해준단다. 그런데 법적 제재가 없기 때문이 한 집이 거부하면 끝이다.

마지막으로 민사소송을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시간과 돈의 문제를 떠나 소음을 증명하는 방법이 쉽지 않고 승소를 하더라도 보상은 작으니 이사를 가란다. 결국 제 3자를 통한 해결방법은 없으니 피해보는 집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다. 무조건 일어나자 마자 나가서 밤늦게 집에 왔다. 윗집 남자가 밤에 활동을 해서 별 도움이 안됐다. 외부조건을 바꿀 수 없으니 나를 다스리기로 한다. 명상을 하며 스트레스로 바짝 날이 선 신경을 달래고 귀마개로 소음을 줄인다. 이것도 도움이 안됐다. 온 신경이 윗집에 집중되다 보니 소음이 없을 때도 귀에선 윗집 소리가 들렸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윗집에 대한 증오가 커지며 층간소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이해하게 됐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집에서 타인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런데 해결방법도, 나아질 거란 희망도 없다면? 남은 선택이란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복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고무망치를 추천한다. 윗집 소리가 심하다 싶으면 두드렸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청소기를 천장에 대고 흡입력을 최강으로 한다. 모터 소리에 귀가 아프고 청소기를 들고 있는 팔이 저리다.

그래도 3층집이 내가 내는 소음에 짜증이 난다면, 그래서 역지사지를 하게 된다면 지금 몸 좀 불편한 게 뭔 대수랴. 역시나 변화가 없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고 그럴수록 절망감과 스트레스로 미칠 것 같은 나는 급기야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댄다.

"야, 이 미친x야. 여기 너만 사냐. 정말 지겨워 죽겠다."

식구들이 나를 부끄럽다는 듯 쳐다본다. 최후의 방법으로 4층집을 공략한다. 4층에서 뛰면 지들도 괴롭겠지. 이 집에 이사온 지 2년만에 4층 집 주인을 만났다. 나만큼이나 3층 남자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 집도 너무 화가 나서 방바닥을 치고 뛰었단다. 그랬더니 3층에서 음악 소리가 더 크게 나고 담배 냄새가 났다고.

복수도 소용없더라, 이정도면 국가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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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문제 함께 해결해요 홍보 영상 캡처 ⓒ 환경부


결국 복수를 포기하며 하루하루 3층이 이사 가기만을 기도한다고 했다. 그날 우린 2시간 동안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위로를 받았다. 보통 윗집이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음을 깨닫는다.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뻔뻔하고 미쳤는가의 문제다.

집을 구할 때 큰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잠이 들고 아침이면 평온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으면 됐다. 천사 같은 이웃을 바란 것도 아니다. 공동주택에 살면서 타인을 존중하고, 실수하면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면 만족했다. 이런 바람이 기본 권리가 아닌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최근 일년 동안 온몸으로 느낀다.

내 집에서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해도 법이나 공적 기관을 통한 해결은 매우 요원하다는 것 또한 여러 시도를 통해 깨달았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이사를 가야 하고, 새로 만나는 이웃이 공동주택에 적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시스템이 아닌 운에 기대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35조 3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권리가 나에게 있음을, 층간소음으로 인해 나의 쾌적한 주거생활 권리가 크게 침해되었음을 국가가 알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국가 의무임을 또한 알린다. 이미 영국이나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층간소음에 대해 여러 정책을 시행 중이니 아이디어가 없으면 해외 사례라도 참조해서 하루 빨리 실행하라. 그게 안 되면 재벌들이 사용하는 '법보다 가까운 주먹'을 나도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주길 강력하게 촉구한다.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나.
#층간소음 #정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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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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