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이성관계는 어디까지 허용될까

[사극으로 역사읽기] TV조선 드라마 <대군-사랑을 그리다>

등록 2018.04.21 10:51수정 2018.04.2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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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무치다."

역사소설이나 사극에 종종 나오는 이야기다. 왕은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인 이 말은, 군주는 이성을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왕은 무치다'가 의미하는 것

지난 14일 토요일에 방영된 TV조선 드라마 <대군>에도 그런 대사가 나왔다. 임금 자리에 막 오른 수양대군(세조)과 관련해서다. 수양대군은 드라마에서 진양대군(주상욱 분)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조카인 단종 임금을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 수양대군은 첫날밤을 함께할 여성을 고른다. 대상자는 뜻밖에도 중전도 후궁도 그렇다고 궁녀도 아닌 사대부 여성이다.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여성이다. 더군다나 동생 안평대군과 혼례식 직전까지 갔던 여성이다. 정권을 잡았다는 승리감에 도취돼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드라마 속의 성자현(진세연 분)이 바로 그 대상이다.

수양대군은 밤중에 군사를 보내 성자현을 입궐시키고자 했다. 한밤중에 뜻밖의 요구를 들은 성자현의 아버지 성억(이기영 분)은 너무도 황당해 했다. 14일의 제13회 방영분에 나오는 성억의 대사는 이렇다. 

"성혼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나, 동생의 정혼녀였소. 아무리 왕은 무치라지만, 즉위하신 첫날에 이 무슨 금수 같은 짓이오!"


성억의 대사에는 '왕은 무치'라는 관념이 깔려 있다. 동생의 정혼녀를 한밤중에 불러들이는 행위는 도를 벗어난 짓이라는 관념을 보여주면서도, 왕의 이성관계는 일반인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관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런 관념이 이 드라마에만 나오는 건 아니다. 오래 전부터 각종 문학작품에 등장했다. 드라마 속 수양대군의 행동이나 성억의 대사는 왕의 이성관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중 하나를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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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성자현을 부르는 수양대군(주상욱 분). ⓒ TV조선


왕이나 왕족의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처벌이 집행되지 않은 것은 그런 행위가 정당화돼서가 아니다. 처벌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왕은 무치'라는 관념이 보편화되기는 쉽지 않았다. 

11세기에 발행된 무라사키 시키부의 소설 <겐지 이야기>에도 이에 관한 옛날 사람들의 인식이 드러난다. 일왕(이른바 천황)의 아들인 겐지가 지위를 악용해 한밤중에 성폭행을 시도했을 때, 상대방 여성이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묘사한 대목에서 그게 드러난다.

"이렇게 소리를 질러 소동을 피우는 것도 천박스러운 일이라 여자는 그저 이런 일을 당한 자신이 한심하고, 겐지의 소행이 참으로 괘씸하고 무례하다 생각하니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

소설은 줄거리는 허구이지만, 그 속의 시대 상황은 사료(역사 자료)로 쓰일 수도 있다. 작가들이 자기 시대 분위기를 소설에 담아내기 때문이다. 여성은 겐지의 성폭행 시도를 당연시하지 않았다. '왕과 왕족은 무치이므로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괘씸하고 무례한 짓이라고 판단했다. 피해 여성은 겐지에게 이런 말도 했다. 성폭행 시도를 사랑이란 말로 포장하는 겐지를 질책하는 대목이다.

"이런 일이 현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보잘것없고 천한 몸인데, 이렇듯 모욕적인 처우를 당하니 어찌 당신의 사랑이 깊다 여길 수 있겠습니까? 저 같이 하찮은 신분의 여자에게도 신분에 따른 나름의 삶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후 시기와 비교할 때 11세기까지의 일본에서는 왕권이 강했다. 그런 시대를 살면서 <겐지 이야기>를 쓴 작가의 머릿속에 '왕은 무치'라는 관념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작품 속의 피해 여성이 위와 같이 말했던 것이다. 만약 '왕은 무치'라는 관념이 보편화돼 있었다면 <겐지 이야기>는 시대 분위기에 맞지 않는 소설이 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 소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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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침소로 불려가는 성자현(진세연 분). ⓒ TV조선


성적 일탈을 아무렇지도 부끄럼 없이 저지르기는 힘들었다. 남들 모르게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왕은 무치'라는 관념을 앞세워 공개적으로 하기는 힘들었다. 그것은 자기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었다.

왕과 왕족의 성적 일탈이 '무치' 관념 속에서 당연시되기는커녕 도리어 비난의 대상이 됐다는 점은 조선 양녕대군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태종실록> 곳곳에서 드러나는 양녕대군의 폐위 사유는 성적 일탈이었다. 궐 밖 백성의 첩은 물론이고 큰아버지의 첩과도 부적절한 만남을 가졌다. 무치 관념이 정말 존재했다면, 양녕이 성적 일탈 때문에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이유가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왕들의 성적 일탈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있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바른생활 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오늘날의 성범죄자에게 수강명령이 내려지는 것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도 도덕심 함양을 위해 정기적으로 수강을 해야 했다.

조선시대 경우에는 경연이란 세미나가 그런 수강이었다. 경연 때마다 학자 출신 신하들이 임금 귀에 따갑도록 집어넣은 것은 '군주는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신하들은 일반인보다 낮은 도덕성이 아닌, 높은 도덕성을 왕에게 요구했다. 수행자의 삶을 주문한 것이다.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이 홍희빈이란 후궁한테 푹 빠진 적이 있다. 중종은 그의 외모에 끌렸다. 그러자 음력으로 중종 13년 3월 12일자(양력 1518년 4월 21일자) <중종실록>에 따르면, 경연 자리에서 4품 관료가 "여색에 빠지는 자는 용렬한 임금"이라며 중종을 면전에서 비판했다. 아침에 열린 경연이었다. 중간직 관료가 아침부터 임금 면전에서 '용렬한 임금'을 운운했던 것이다. 왕은 무치라는 관념이 보편적이었다면, 임금한테 이런 충고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종 12년 8월 8일자(1517년 8월 24일자) <중종실록>에는 개혁파 지도자 조광조가 중종에게 '집무실에 혼자 계실 때도 자세를 똑바로 하시라'는 취지의 훈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종뿐 아니라 다른 왕들도 이런 류의 충고를 들었다. 이처럼 군주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장면은, '왕은 무치'라는 관념이 보편적인 사회에서는 쉽게 나오기 힘들 것이다. 

현종과 양귀비가 회자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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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신하. 경기도 파주시의 율곡 이이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왕들의 이성관계가 제약을 받았다면, 그들이 후궁을 많이 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왕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왕비가 후계자를 낳지 못할 경우에 후궁한테서라도 후사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 점은 민간의 지주 가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농업기업에 해당하는 지주 가문들에서는 가업을 계승할 목적으로 축첩을 용인했다. 물론 이걸 이용해 쾌락을 추구하는 남자들도 없지 않았으나, 지주 가문의 축첩은 왕의 축첩처럼 후사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왕은 무치'인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 왕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연산군처럼 쫓겨날 수도 있었다. 연산군처럼 되지 않아도, 두고두고 구설수에 오르기 쉬웠다. 며느리인 양귀비를 후궁으로 들인 당나라 현종처럼 될 수 있었다.

만약 군주의 방탕한 이성관계를 세상이 용인하고 당연시했다면, 양귀비와 현종의 불륜이 오늘날까지 회자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옛날에는 '왕은 무치'라는 관념이 보편적이었을 것이라고 믿는 현대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현대인들이 많기 때문에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그런 대사가 종종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옛날에도 그런 관념이 보편화된 적은 없었다. 윤리도덕을 수호해야 할 군주가 그것을 함부로 무시하면 국가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은 동서고금의 변함없는 이치다. 

일반적으로 사극의 줄거리는 사료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는 작가의 소관이다. 하지만, 적어도 시대 분위기만큼은 실제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훗날의 역사 작가가 이명박·박근혜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이 아닌 17세기 조선이나 21세기 미국의 분위기를 배경에 깔아놓는다면, 그것은 사극으로서의 가치를 갖기 힘들 것이다. 

또 소설이나 사극 속의 잘못된 성도덕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왕은 무치'라는 실제로는 영향력도 없었던 관념을 진짜 존재했던 것처럼 전달한다면, 지도층이나 관리직의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성도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은 왕들의 실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해주는 것은, 우리 사회 공직자나 관리자들이 보다 열심히 직무에만 전념하도록 하는 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군 #왕은 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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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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