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 강조하는 시아버지보다 더 큰 문제

'말해야 하는 순간'에 입을 다무는 남편들에게

등록 2018.04.20 21:35수정 2018.04.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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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한장면 ⓒ MBC


최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라는 방송을 본 친구들 몇몇이 카톡으로 성토를 했다.


연예인 부부 박세미와 김재욱이 둘째를 출산하기에 앞서 산부인과에 방문한 내용이 방송됐는데, 의사가 산모의 건강상 문제 때문에 제왕절개를 권하는 장면에서 남편의 태도가 논란이 됐다.

둘째 출산 방법을 묻는 남편의 말에 의사가 "첫째 제왕절개 하셨으니까 이번에도(둘째) 수술이요"라고 하자, 남편이 재차 "원칙이 수술?"이라고 물은 것. 이에 의사가 "왜요? 자연분만 하시게요? 건강에 안 좋은데..."라고 하자, 남편이 "그러면 제왕절개 해야한다는 소견서를 떼어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이유는 시아버지가 자연분만을 권유했기 때문에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말하려면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여기서 가장 며느리를 화나게 하는 포인트는 뭘까.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시아버지가 내 몸을 아이를 탄생시키기 위한 통로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 아니다. 아마 더 화가 나는 건 우물쭈물하는 남편의 태도일 것이다. 그 방송에서 아내는 "당신이 아버지 설득할 수 없어?"라고 물었지만 남편은 "3시간만 진통하고 안 되면 그때 제왕절개 하면 안 되냐"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제왕절개에 대한 소견서까지 보고해 가며, 아내가 건강상 위험까지 감수해 가며 출산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나도 아니고, 나와 평생을 함께 살 배우자도 아니고, 엄연히 말하면 내 부모도 아닌 '남의' 부모가 결정한다는데 그는 그 상황이 이해가 되는 것일까?

출산까지의 이 모든 절차가 이상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허락 받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된다면 지금이라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시부모님들이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고 하지만, 당신이 배 아파 낳은 진짜 딸이라도 그 몸에서 자궁이 1순위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친정엄마가 등장하는 한 CF에서는 손녀를 챙기느라 자기 몸을 챙기지 않는 딸에게 엄마가 이런 메모를 남긴다. "니 자식이 귀하면 내 자식도 귀한 거야." 진짜 '엄마' 마음은 그런 것이라고 나는 공감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관계 

이상하게 상식이 통하지 않는 관계가 있는데, 내 생각에는 '시댁과 며느리'의 관계가 많은 사례에서 단연 그 상위권에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서로 호의를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상식적으로 건넬 수 있는 수위가 어느 정도 약속되어 있다. 가족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종종 '가족은' 그 선을 넘어도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나 요즘 자꾸 위가 쓰려." 
"요즘 안 그런 현대인이 어딨니?" 

이를테면 자기 몸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는 이런 친구, 세상에서 제일 꼴 보기 싫다. 친구의 다리가 부러졌다면 "조심해, 많이 걷지 마" 하는 게 당연한 배려인데 "다리가 부러져도 제사는 지내러 와야지" 하는 것이 많은 시댁의 논리다. 요즘에는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여전히 있다.

며느리를 하나로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누구보다 발언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남편이다. 그는 입을 다물고 방관하는 역할을 맡아서는 안 된다. 내 편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남의 편'이 된다.

명절마다 시누이가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시어머니에게 "누나(동생)도 친정 오는데, 우리도 친정 가야 한다"고 명료하게 말하지 못하는 건 자기도 모르게 시댁 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엄마 서운한 것만 중요해서, 딸 기다리는 배우자의 엄마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것은 아닌지.

아마 또박또박 생각해보면 그럴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사회적인 관성으로 아내를 섭섭하게 만들고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필요한 말을 필요한 순간에 꺼내지 못하는 남편은 고부갈등에 대하여 '여자들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절대 아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해서 생긴 모든 일은 무조건 '부부의 문제'다. 친구를 동네로 초대해도 이 동네의 맛집은 내가 책임지고 소개하는 법인데, 아내를 내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불렀으면 필요한 말을 아내에게 미루지 않아야 한다.

의견 대립은 아내에게도 어렵다 

의견 대립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곤란하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 틀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의견이 다를 때 내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모두에게 조금씩은 곤혹스럽다. 그러나 가치 판단을 했을 때 나의 의견을 관철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불편함을 무릅쓰고 내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사에게 곤란한 주장을 해야 할 때, 누가 대신 해준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꺼내기 어려운 말을 다투지 않고 부드럽게, 상냥하게 조율해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혹시 바로 그 역할을 혹시 아내에게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서로 각자의 가족과 살아온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하나의 새 가정을 이루었다면 내 삶의 중심은 옮겨와야 한다. 우리 엄마가 들으면 서운한 이야기일까? 하지만 결혼 후에는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에 대한 독립이 필요하며, 그만큼 배우자가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나를 위해 말이 필요한 타이밍에 그 말을 하지 못하는 배우자는 서로에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우리 아빠가 남편에게 '아기를 무조건 낳아야지!' 할 때, 나는 남편이 대답하기도 전에 아빠에게 '아빠, 내가 시댁 갔는데 시부모님이 나한테 아기 낳으라고 구박하고 잔소리하면 좋겠어?' 했다. 나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만 남편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나에게는 아빠지만 남편에게는 어른이니까. 마찬가지로 남편이 시부모님에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사실 '말이 필요한 순간' 자체를 아내만큼 예리하게 짚어내지 못하는 남편들도 많을 것이다. 시어머니가 "아들,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며느리가 잘 안 해주니)?", "어머, 결혼 전에는 한 번도 안 시켰는데 이제 설거지도 하네(며느리가 시켰니)?" 할 때, 남편이 한마디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아예 감지조차 하지 못할 때. 그럴 때 "엄마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야"라고 대답하지 말고, 그만큼 일상적으로 맞이하는 불편의 순간에 대해 좀 더 제대로 귀를 기울여서 들었으면 좋겠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니니까.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cats-day)에 중복 게재됩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결혼 #시댁 #가부장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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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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