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인이 꿈꾸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세상

['좌충우돌' 사회적경제 49] 한국만화인협동조합 조재호 이사장 인터뷰

등록 2018.04.21 14:09수정 2018.04.2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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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와 장애인

사회적 경제는 장애인과 관련이 많다. 사회적 경제가 특정 사회적 문제를 기업운영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장애인 문제는 사회적 경제가 주목하는 주요 안건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과 관련된 매출이나 고용은 사회적 기업 인증 조건들 중 하나로서 적지 않은 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하고 관련된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고, 행정의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장애인을 단순히 복지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의 주체로 생각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과 관련된 사회적경제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혜를 받기만 하던 이들을 생산 주체로 세우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몸도 불편한데 그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오래된 편견들.

이 때문에 현재 장애인 관련 사회적경제기업은 기존 자활 시설들이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 고용이나 일거리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 모색되기 보다는 기존의 장애인 관련 시설들이 사회적 경제와 관련하여 다른 이름으로 지원을 받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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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교육을 위해선 사회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 한국만화인협동조합


한국만화인협동조합은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찾은 사례이다. 처음 협동조합은 웹툰을 제공하고 있는 거대 포털을 상대로 소속 만화가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들과 관련된 교육을 진행하면서 점차 성격이 바뀌었다. 조합원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던 협동조합이 장애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역과 사회적 가치에 눈을 뜨고 협동조합의 참된 의미를 스스로 찾게 된 것이다.

이제는 '우리 마을에 만화가가 있으면 참 좋다'는 모토를 중심으로 조합만이 아닌 지역을 둘러보게 되었다는 한국만화인협동조합.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국만화인협동조합의 조재호 이사장을 만나보았다.


협동조합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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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중인 조재호 이사장 ⓒ 성내종합복지관


- 조합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요?
"네.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협동조합을 시작하고 3년 정도까지는 제대로 된 협동조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냥 만화인 노조였죠. 우리 먹고 살기 힘드니까 뭉쳐가지고 정부에게 우리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냐, 우리 돈 좀 줘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그런데 이제는 변했어요. 지역사회 공헌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모토가 없었는데 이제는 '우리 마을에 만화가가 있으면 참 좋다'라는 모토를 내세우게 됐어요."

- 그게 무슨 뜻인가요?
"간단합니다. 만화가의 사회적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거죠. 만화가가 있으면 마을이 즐겁고, 마을이 깨끗해지면서 발전하고, 또 젊은이들도 몰려들고."

- 조합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2014년 우연하게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하면서 조합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작가들이 장애학생들을 1:1로 붙어서 가르쳤는데, 처음부터 참여했던 작가 두 명이 저한테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는 윤태호, 허영만 등 대한민국 히트 작가가 아무도 안 부럽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분들은 작품을 가지고 있지만 만화가들 중에서 장애인들에게 웹툰 교육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건 우리 딱 두 명밖에 없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들었어요. 우리가 협동조합하기 잘 했다."

- 좀 놀라셨겠네요?
"놀랐죠. 반대잖아요. 돈을 줘야지 잘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 친구들은 거의 자원봉사였거든요. 강의료의 절반. 그런데 오히려 조합이 끈끈해지는 거예요. 그 뒤로 더 많은 작가들이 장애학생 교육 사업에 참여했는데 다 끈끈해지더라고요. 장애인에 대해서 꺼리는 부분도 없어지고. 그러면서 지역 사회의 공헌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협동조합과 장애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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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인협동조합의 조합원들 ⓒ 한국만화인협동조합


- 장애학생 교육을 하면서 조합이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장애학생들을 교육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배워요. 너네는 왜 우리랑 교육사업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을 해요. 장애인만 있지 않아서라고. 여기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 뒤섞여 있어요. 배려하지도 않아요. 저희는 배려할 때 꼭 물어보고 합니다. 내가 도와줘도 되냐. 됐다 그러면 저희는 도와주지 않아요. 특혜도 없습니다. 늦게 해오거나 하면 똑같이 욕먹고요. 그런데 오히려 그게 좋대요. 옛날에는 그들을 무조건 딱하고 안타깝고 불쌍하게 봤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그냥 같은 사회인으로 같이 어울려 산다. 그리고 장애는 나도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죠."

- 장애인에게 만화가 적절한 업종인가요?
"원래 만화 업종은 예전부터 장애인 선생님들이 꽤 많았어요. 그림은 사실 육체로 그리는 게 아니에요. 머리로 그리는 거기 때문에. 평생 누워계시면서 걷지도 못하고 작은 창문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유명한 카툰 선생님도 계시고요. 또 작품에서는 내가 장애가 있다는 게 보이지 않잖아요. 감수성도 남달라요. 장애인의 그림들에는 뭔가 감동이 있습니다."

- 장애인에 대한 대표님의 감수성이 남다른 것 같은데요?
"사실 저희 아버님이 장애인이셨어요. 젊은 나이에 반신불수가 되셔서. 그러다 보니 제가 감수성이 특별한 편이죠. 그런데 사실 장애인이 특별한 건 아니에요. 장애인들 중에서 후천적 장애인 90%고, 현재 국내 장애인 수가 250만 명이에요. 전체 인구의 5%인데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면 1000만 명이 장애인 식구들이죠. 게다가 남미에서 느낀 것도 있었고요."

- 남미요? 남미에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10년 전에 칠레에서 2년 동안 살았어요. 브라질도 취재 때문에 한 달 넘게 가 있었고.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못살아요. 그런데 축구경기 같은 경우 하프타임 때 음악이 나오면 막 춤을 추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지적 장애인이죠. 그 친구가 흥이 나서 춤을 추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오히려 옆에서 같이 추고. 그곳에서는 장애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녀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배려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가 돈 좀 벌었다고 그게 선진국이 아니다. 진짜 선진국은 빌딩이 아니고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만화가들의 사회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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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교육은 쉽지 않다 ⓒ 한국만화인협동조합


- 장애인들과 작업을 하면서 기억나는 사건이 있나요?
"작년에 했던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건 만화영상진흥원에 요청해서 올해 진행하는 모든 지원사업에 장애인 5% 쿼터제를 실행하게 만든 일이에요. 장애인 전문 복지사들에게 들어보니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남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런 쿼터제가 쓰여 있지 않으면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는데요. 비장애인들에게 폐 끼치고 눈치 보인다는 거죠. 그래서 건의했어요. 우리가 받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장애인 5% 쿼터제를 만들어 달라. 그게 된 거죠."

- 용케도 만화영상진흥원이 그 제안을 받았네요?
"2년 정도 이야기했었는데 그 전에는 안 먹혔어요. 그런데 만화영상진흥원 원장님과 본부장님이 바뀌면서 강하게 밀어붙였죠. 문재인 정부가 들어오면서 문화 정책이 좀 바뀌었대요. 그 전에는 한류확산이라든지 엘리트 위주의 성과 위주 문화정책이었어요. 그래서 말도 안 되게 김치 들고 뉴욕 가고. 그런데 지금은 전 국민 중에 누구든 소외받지 않고 문화혜택 누리는 문화부로 바뀌었어요. 방향이 바뀌었어요. 잘 못해도 상관없어요. 같이 즐기는 거죠."

- 만화계의 반발은 없었나요?
"말이 좀 있었죠. 만화계도 힘들다, 장애인들은 관련 단체나 연합회 가서 지원금 받아라 등등. 그런데 제가 설득했어요. 우리가 5%를 내주면 그만큼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5%에서 훌륭한 작가가 나오면 오히려 지원금이 20~30% 늘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정도 배려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 이슈나 사람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 수 있냐. 우리 만화계도 많은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그만큼 사회적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느냐고."

- 끝으로 하실 말씀은요?
"남미 가서 제가 봤던 것 중의 하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였어요. 그곳 사람들은 부를 신자본주의에게 다 빼앗긴 상태였는데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만들었더라구요. 그래서 그때 제가 협동조합을 생각했었죠.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독과점의 폐해가 심각하죠. 1등이 거의 다 먹고 나머지를 두고 그 다음 사람들끼리 다투는 현상.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어요. 우리부터 연대하고 열심히 사회 참여를 해야죠."

한국만화인협동조합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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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해진 협동조합 ⓒ 한국만화인협동조합


#사회적경제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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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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