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엔 타투, 여권엔 도장 빼곡... 프랑스 할머니의 '스웨그'

[미련 없이, 그곳! 산티아고 순례길 31]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네그레이아

등록 2018.07.24 16:10수정 2018.07.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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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스테레(Finister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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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와 젊은 순례자 ⓒ 차노휘


피니스테레(Finisterrae)는 산티아고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에 유럽인들이 생각했던 '땅끝'이다. 초기 로마시대 브루투스 또한 당시 영적으로 심원한 의미가 있는 곳으로 알려진 세계의 끝, 즉 피니스테레(Finisterrae)를 향해 고군분투했다. 유럽의 서쪽 끝이라는 역사적인 흥미뿐만 아니라 근사한 일몰을 볼 수 있고, 그곳까지 가는 길 또한 너무 아름답다.


헤롯왕에게 참수당한 성 야고보(Saint Jacques)의 사체를 제자들은 파드론을 경유하여 '세계의 끝(FinisTerre)'에 묻으려고 한 적이 있다. 그곳은 켈트족의 다신교인 드루이드교(Druidism)가 처음 생겨난 곳이었다. 포교활동의 중요 지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교도 여왕인 루파(Queen Lupa)와 로마 사절단은 공모하여 성 야고보 사체와 그의 제자들을 없앨 계획을 세운다. 제자들은 다시 사체를 옮겨야 했다. 그로부터 771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그의 무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발견된다. '성 야고보(Sant Iago)가 있는 별(Stella)들의 들판(Compos)'이라는 뜻이다. 그 무덤 위에 성당을 지었다. 성당을 성 야고보(Saint Jacques)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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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temaceire Vella. 마을이 너무 이뻐서 머물고 싶었다. ⓒ 차노휘


나는 성 야고보(Saint Jacques)가 잠들어 있는 곳을 떠나 '세계의 끝(FinisTerre)'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하루 이틀 머무르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풀었다. 나도 그런 유혹에 매료됐지만 이왕 갈 계획이라면 쉬지 않고 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이런 내 계획을 알게 된 한국에 있는 지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고행하려고 가는 길이 아니잖아. 그곳은 버스를 타고 가도 괜찮으니, 너무 힘 빼지 마' 나는 지인에게 답 문자를 보냈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올지 어떨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미련은 남기고 싶지는 않아. 뒤돌아 서서 후회하느니, 원없이 걷고 싶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잖아. 사람도 장소도 말이야(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 타이틀이 '미련 없이 그곳!' 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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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동안 내내 아름다운 길이 펼쳐졌다. ⓒ 차노휘


다시 만난 마틴과 마리아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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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앞에 기부통을 내놓고 있다. 어떤 사연인지. ⓒ 차노휘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처음으로 호스텔(20유로)에서 잤다. 4인실이었는데 젊은 외국인 여성과 단 둘이서 사용했다(너무 피곤해서 길게 대화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내일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완주를 끝내고 곤히 잠든 그녀를 깨울 수가 없었다. 7시에 일어나서 배낭을 꾸렸다. 전날만 해도 작은 축제가 열렸던 광장과 길거리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니스테레(Finis terrae)와 묵시아(Muxia)는 버스를 타고 간다. 걷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선지 초기 '생장'에서 걸을 때처럼 피니스테레로 향하는 사람들이 건네는 인삿말은 친밀도가 높다.

한 시간이나 걸었을까.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마틴을 만났다. 그는 걸으면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직접 따서 내게 냄새를 맡게 했다. 그리고는 설명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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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이 만지고 있는 잎으로 담배를 만든단다. 옛날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렇게 했단다. '한국 담뱃값 비싼데, 한 번 만들어 볼까?' 라고 내가 말했다. ⓒ 차노휘


그한테 들은 이야기 중 유칼립투스(Eucalyptus globulus) 나무에 대한 정보가 재미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생이면서 아주 빠르게 성장한단다. 성장 속도를 껍질이 감당하지 못해 껍질이 벌어지기 일쑤란다. 그는 나무 수피를 사람 피부로 비유했다. 하지만 속질은 아주 단단하단다. 나뭇잎은 향이 진하단다. 그는 나뭇잎을 뜯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알베르게에서 여러 사람이 자니, 옆에다 두면 향기가 나서 좋을 거라고 했다.

자연과 문화를 공부하면서 한 시간이나 더 걸었을까. 200m 지점에 바가 있다는 푯말이 있었다. 있긴 있었다. 숲속이라 야외 의자 몇 개 놔두고 탁자에 음료수 캔을 진열한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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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귀족이라 직업이 필요 없단다. 결국 알아낸 것은 잡지사 운영, 칼럼리스트였다. ⓒ 차노휘


그곳에서 잠깐 쉬었다. 마틴이 여분으로 가지고 온 순례자 여권(피니스테레는 다른 순례자 여권을 사용해도 된다)을 주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생장에서 사용했던 순례자 여권은 산티아고에서 끝난다,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레까지는 새 여권을 사용한다. 그가 산티아고에서 준비해온 새 여권을 내게 주었다. 나는 준비를 해오지 않았다.

새 여권을 펼칠 때 갑자기 나는 마틴의 여권이 궁금했다. 가는 곳마다 도장을 받아서 걸었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인데, 그는 아주 긴 거리를 걸어왔다. 그의 여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길'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마틴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자, 흔쾌히 펼쳐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것은 내가 생각한 만큼 길지 않았다. 어느 일정한 구간이 지나면 새 여권에 다시 도장을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그는 집으로 갈 때에도 걸어서 간다고 했다. 9월 첫째 주나 도착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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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순례자 여권. 오래돼서 겉장이 뜯어졌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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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여권을 아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순례자 ⓒ 차노휘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옆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던 나이 든 프랑스 할머니가 슬그머니 당신 순례자 여권을 꺼내 펼쳐보였다. 그녀는 자랑스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와우! 를 외치고는 엄지를 들어줬다. 멋진 분들이 많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건강하게 걷는 것을 보면 이런 질문이 절로 나온다. 어떤 사명으로 이렇게 걷는 것일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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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Bar ⓒ 차노휘


23.54km를 걷고 나서 도착한 네그레이아(Negreira) 알베르게에서 스페인 선생 마리아호세를 만났다. 침대보다 와이파이가 더 잘 터지는 휴게실에서 다음 여정을 검색할 때였다.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된 그녀가 들어왔다. 어제 그녀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자 순례자와 산티아고 언덕에서 달콤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였다.

애초, 그녀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를 버스로 갈 예정이었다. 공교롭게도 스페인 버스 회사는 파업 중이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걸어서 왔다고 했다. 나는 아주 잘했다고 말했다. 땀범벅인 그녀가 웃었다. 우리는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는 각자의 일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샤워실로 향했고 나는 휴게실에서 글을 썼다.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어있으니, 이 길 위에서의 만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도대체 길이 끝나는 세상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출입문 유리 너머로 오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잠시 의자에 몸을 뉘이고는 내일 여정을 그려보았다. 길 위에서의 편안한 '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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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greire에 거의 도착했을 때 순례자를 위해 누군가가 사과를 기부했다. 하나씩 사과를 집어 들고 먹으면서 걸었다. ⓒ 차노휘


덧붙이는 글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까미노 #프레그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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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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