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건설 주목... 김정은 쇼? 미리 패를 다 깔 수는 없지 않나"

['정상회담' 전문가 인터뷰 ③] 정세현 전 장관이 분석한 북한 전원회의 결정서

등록 2018.04.22 19:42수정 2018.04.2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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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력·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에 총력 집중으로 전환, 북부(함경북도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 핵시험·대륙간탄도로케트(ICBM) 시험발사 중지, 경제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 적극화.

북한이 20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전원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결정서를 채택한 것을 두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포함해 전반적으로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구체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일부는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의사를 밝힌 쇼'라고 비판하고 있다. 결정서에서 "핵시험(실험)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며 선(先)사용 금지, 이송 금지 등을 말한 대목 등을 문제 삼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에 대해 "협상 전략 차원에서 보면, 비핵화 포지션이 정해져 있어도 처음부터 싸구려처럼 보이면 안 된다"면서 "김정은으로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번에 패를 다 깔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북한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특히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해 나갈 것"이라는 대목에 주목했다. 북이 정치 분야가 아니라 '경제건설'이라는 목적을 특정해 '국제사회와의 연계-대화' 의지를 밝힌 것은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경제건설을 위해 개방하고 외자를 유치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이렇게 되려면 북한 핵문제가 해결돼, 북미 수교나 그에 준하는 상황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의 이번 결정서가 '핵보유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내용까지 포함한 전체를 보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22일 만난 정 전 장관과의 문답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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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자료사진) ⓒ 안홍기


- 북한의 이번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발표 내용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은 지난해 10월에 전원회의를 했는데, 6개월 만에 또 한 것이다. 2013년 3월 (6기 23차) 전원회의에서 정했던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사실은 '선(先)핵-후(後)경제'노선이었다. 그런데 2016년 5월에 한 7차 당대회 때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견지해나간다고 하면서도 경제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기 때문에, 북이 핵무력 능력을 어느 정도 올려놓고 나면 그 이후에는 경제쪽에 주력할 것이라는 바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제까지 핵에 쏟은 노력, 시간, 예산을 앞으로 경제건설로 돌려 여기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 실험을 더 하지 않아도 이제는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로 협상력이 생겼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니까 핵실험장을 유지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핵실험장 폐쇄, 비핵화는 미국에 달렸다는 메시지"

- 자유한국당은 '위장 쇼'라고 비판한다.
"물론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핵폐기 과정 전체로 보면 일부다. 실험을 더 안 한다는 것은 비핵화로 들어간다는 상당히 의미있는 시그널이긴 하지만, 냉각시설이나 재처리 시설 등 핵 제조시설이나 핵물질, 이미 만든 핵무기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번 결정서 내용은 당장은 북미정상회담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보내는 사인이다. 핵실험장 폐쇄를 통해 우선은 비핵화의 맛만 보여준 것이고, 핵제조 시설 등 나머지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협상을 하겠다는 사전 통보인 셈이다. 즉, 그냥은 안 준다, 너희들이 우리가 해달라는 북미수교, 평화협정을 빨리 해 주는지 보겠다는 얘기다. '비핵화 속도는 It's up to you!(당신한테 달렸다!)'라는 메시지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만 빠르게 진행된다면, 핵폐기 절차는 기술적으로는 3년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임기내인 2년 만에 끝내고 싶어하지 않겠나. 차기 대선을 위해서도 그렇고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서도 그렇고."

-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등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이 아니라 핵무기 보유국 선언을 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은 북이 끝까지 핵을 안 놓으려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으로서는 트럼프와 정상회담 앞두고 한 번에 패를 다 까버리면 안 된다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몸값을 올려야 북미수교를 빨리 끌어낼 수 있다. 협상 전략 차원에서 보면, 비핵화한다는 포지션이 정해져 있어도 처음부터 싸구려처럼 보이면 안 된다. 물밑에서 밀당이 계속될 텐데,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핵폐기 시한에 대해 대해서도 2년이냐, 3년이냐를 놓고 밀당이 계속될 것이다."

"미국 정부, 북한 핵·미사일 능력 시원찮다고 방기해온 것"

- 그럼 우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응원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웃음). 아이러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미국의 정부가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미국이 두려워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 같다.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라면서 사실상 북한을 방기한 것은 북한의 능력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까지만해도 미국의 미사일 기술자들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능력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2~3년 더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29일 북한은 화성-15형을 통해 사거리 1만4천km의 능력을 보였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어떤지 몰라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은 보인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말부터 미국이 압박과 제재를 내걸면서도 북한을 괄목상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이 무시할 수 없는 위치까지 온 것이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은 어려웠을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이 아니어도 중간 선거나 다음 대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런데 트럼프는 굉장한 국내 정치적 위기로 필요성이 생겼고, 또 화끈한 사업가적 기질까지 갖고 있다. 결국 트럼프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게 아닌가 싶다."

-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트위터에 "북한이 핵실험을 모두 중단하고 주요 핵실험 부지를 폐쇄하는 데 합의했다"면서 '합의'(agreed to)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지난 3월 말~4월 초에 평양에 들어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요구한 것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답했다는 의미 아닐까.
"그렇다고 본다. 당시 폼페이오와 김정은이 합의한 것들 중에 하나가 어제 터진 것 같다. 당시 합의한 것을 이행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판단하지 않겠나."

-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에 뭘 줘야 하나. 북미 정상회담 전에 미국이 뭔가를 줄 수도 있나.
"아마도 폼페이오가 '종전 선언' 같은 것에 대해서 확언을 해주지 않았나 싶다. 한국전 종전 문제는 남북한 간에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종전선언-평화협정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회담에서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핵심은 미국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남북한이 종전을 논의하고 있다, 그걸 축복한다고 한 것은 남북에게 그에 대해 먼저 논의하라, 그러면 그걸 북미 정상회담에 받아서 논의하겠다는 얘기일 수 있다. 그리고 남북미, 이어 남북미중으로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 물론 이게 되려면 미국이 북한과의 수교에 대해 속도를 내서 빨리 해줘야 한다. 이에 대한 밑그림은 폼페이오가 평양에 들어갔을 때 북과 그렸을 것이라고 본다."

- 이번 결정서에 북한은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은 성공했으니 경제로 넘어가자'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그렇다면 북한이 핵을 완성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다시 이를 포기한다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합리적인 우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정세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에 와서 모든 대외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면서, 김정은도 거기에 맞춰 자기 당대에 뭔가 이루고 싶은 게 있는 것 같다. 그러자면, 기존의 정책을 견지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잘 활용해서 환골탈태할 결심을 한 것이다. 더 이상 핵에는 돈을 안 들이고 확실하게 협상 카드로 쓰겠다, 그리고 이를 비싸게 팔겠다는 얘기다. "

- 북한이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이 실패했기 때문에 방향을 바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 것이라면 트럼프는 왜 협상에 나선 것일까. 그런 시각이라면 차라리 트럼프에게 배신당했다고 화내는 게 낫지 않을까."

-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관련 언급을 하고 청와대가 이를 받아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금방 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는 1953년 정전 협정 서명 당사자도 아니다. 하지만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맺을 때 우리는 당연히 참여하는 주체가 된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실질 당사자로서 이 문제를 논의한 다음에 북미정상회담으로 넘겨서 미국 확인을 받고, 남북미와 남북미중이 모이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이번 북한 전원회의, 중국과 같은 전환점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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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0일 평양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하에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2018.4.21 ⓒ 연합뉴스


- 이번 전원회의 결정서에는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 해 나갈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북이 경제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와 대화하겠다고 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 같다.
"그렇다.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경제건설을 위해 개방하고 외자를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북한 핵문제가 해결돼 북미 수교나 그에 준하는 상황까지 가야 한다. 북한도 이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 위해 이런 문구를 집어넣은 것이다. 북의 이번 결정서가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내용까지 포함한 전체를 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1960년대에 외자 유치를 위해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서독에 파견하고, 급하게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했다. 미국은 보통 인식과 달리 우리에게 차관을 잘 안줬다. 돈 얘기하면 일본한테 주라고 할 테니까 거기서 받으라고 했다. 이걸 이제 북한이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일제 강점기 시절에 대한 배상금도 받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 경제특구를 24개나 만들었는데, 간판만 있지 자금부족으로 잘 안돌아간다. 외자를 유치하려면 개방도 해야 하고 제도개혁도 크게 해야 한다. 이런 정책으로 인민생활 수준이 향상되면 김정은이 북한의 등소평이 되는 것이다."

- 요약하면 외자 유지를 위한 개방까지 생각한다?
"중국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1978년 12월 18일에 11기3중전회(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를 통해 개혁개방 노선을 확정했다. 1972년에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저뚱과 정상회담을 했고 1979년에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했다. 미국은 사회주의권을 소련과 중국으로 갈라친 것이고, 중국은 소련의 압력을 미국을 끌어들여서 막으면서 한편으로는 이 와중에 개혁개방 노선을 확정한 것이다.

개혁개방과 수교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평화적인 관계 즉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으면 중국으로서는 대외 개방하고 난 뒤 미국의 체제붕괴 공작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도 당시 미중 정상회담과 비슷하다. 미국과 중국은 정상회담 뒤에 수교까지 7년이 걸렸지만 김정은은 핵카드를 가지고 이를 압축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미국의 힘을 빌려서 외자를 유치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북한의 조선노동당 제7기3차전원회의는 나중에 중국 공산당의 11기 3중 전회와 같은 전환점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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