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쓰디쓴 승진탈락... 남자 동기들이 부러웠다

[워킹맘이 워킹맘에게]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이 필요해

등록 2018.05.04 15:02수정 2018.05.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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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NS에서 몇 년 전에 쓴 글을 보여주잖아. 블로그에서 3년 전에 쓴 내 글을 보게 됐어. 울컥 하더라고. 그때 하루 종일 회의하고 야근하고 부랴부랴 집에 온 시각이 9시였어. 그 시간에 아이들 숙제 봐주고, 재우고 나서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서 새벽까지 일을 했지.

겨우 몇 시간 새우잠 자고 나서 아침을 챙기려는 찰나, 또 문제가 생겼지 뭐야. 바로 둘째의 현장학습이 있는 날이었어. 김밥을 싸야 한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까먹은 거지. 아침에 텅 빈 냉장고를 보며, 내 머리도 텅 비었던 이야기.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날 아침의 황당함이란… 그 이후의 이야기가 또 있어. 그렇게 매일 야근하고 집에 와서도 일했는데, 다음 해에 나는 승진에서 또 떨어졌어. 총 4번의 쓰디쓴 승진 탈락을 경험해야 했지. 이건 뭐, 육아는 육아대로, 회사 일은 회사일대로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자괴감이 들더라. 사표를 낼까 심각히 고민하던 시기였어.

3년이 지난 후, 지금 내 모습은 어떨까? 난 여전히 현재진행형 워킹맘이야. 과거의 나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일단 나는 그렇게 원하던 승진을 했어. 승진을 하고 보니 별거 없더라. 월급이 많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어. 왜 그렇게 아등바등 했는지.

지금에서야 '별거 없네'라고 말하지만, 그건 이룬 다음에나 하는 말이더라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별거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끝까지 이룬 사람이 '별거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니까.

나는 현재진행형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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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티의 한 장면 20대에 내가 꿈꾸던 커리어우먼은 드라마속 인물이더라 ⓒ 드라마 미스티


20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어. 왜 광고에 나오는 멋진 여성들 있잖아. 멋진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멋지게 브리핑하고, 웃으며 악수하는 그런 모습 말이야. 그래서 당시에 여성 리더십에 관련된 책들을 섭렵하며, 나는 미래에 그런 모습이 될 거라 상상했지. 그런데, 지금 내 모습…


일단 외모부터 말하자면 말이야. 굽 낮은 단화스타일로 정착한 지 오래야. 하이힐은 이젠 불편해서 못 신어. 옷은 출산 후 빠지지 않은 뱃살을 가리기 위해 펑퍼짐한 블라우스 위주로 입어. 다이어트와 운동을 열심히 해보지만 살은 잘 안 빠지더라. 아이 낳고 깨달은 건 껌딱지는 아이뿐만 아니라 살도 껌딱지라는 거야. 정말 안 빠져. 언젠가부터 포기하고 가리는 걸로 방향을 바꿨지.

그리고, 직장에서의 내 모습은 글쎄… 일단, 업무가 프로그램 코딩 업무라서 클라이언트 앞에서 멋지게 브리핑 할 일은 없어. 영업이나 마케팅이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20대에 내가 그렸던 모습과는 좀 한참 멀지. 그때 그렸던 모습이 단순히 외향적인 면은 아닐 거야. 내가 상상했던 건 아마 '성공'이라는 키워드였을 거야.

성공, 보통 우리는 '성공'했다는 말을 쓸 때 높이 올라가거나 높은 실적을 쌓았을 때 성공했다고 말해. 그런 면에서만 본다면 나는 지금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어. 회사 임원도 아니고, 조직을 움직이는 결정권자도 아니거든.

처음엔 회사 일에 매진할 수 없다는 것이 슬펐어. 야근을 할까 봐 눈치를 본다는 것이 답답했지. 승승장구하는 남자 동기들이 부러웠고, 분노했었어. 그리고 그들의 성과를 따라잡기엔 내 주변의 환경이 너무 버거웠지. 몇 번의 거듭 실패,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들…

같이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제안에도 주저주저 하게 되더라.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은 회사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지. 도전은 성공을 바라보고 시작해. 실패를 예상하지 않아.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해야 할 수도 있어. 그런 근무 환경에 선뜻 결과만을 보고 갈 수는 없더라고. 그게 참 답답하고 안타까웠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회사에서 성공을 바라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치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더라고.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었느냐가 달랐던 거지. 젊은 시절에는 높게 올라가는 것, 내 몸값을 높이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지금은 멀리 가는 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해.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으니 성공한 거라고 봐. 꾸준히 가는 것이 진짜 성공 아닐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열심히 일해. 독하게 육아와 병행을 하고 있지.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은 높이 쌓는 성공만을 바라지 않는다는 거야. 아이를 통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가고 있는 중이거든. 성공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가고 있는 중이지.

진짜 나의 모습을 사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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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가는 것도 성공이야 ⓒ ⓒ geralt, 출처 Pixabay


20대에 생각했던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 어쩌면 나는 광고에서 보는 화려한 마케팅에 나 자신을 이미지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자신에 맞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보여지는 이미지를 중요시했던 것이지.

그 생각의 틀을 깨는 데 출산과 육아의 과정이 있었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생각의 틀을 깨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어. 내 자신만의 기준을 찾은 거지.

뭐, 그렇다고 지금 균형 잘 맞추면서 잘 가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야. 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허둥대며 아이들 준비물을 챙기고, 종종 잊어. 왜냐고? 알람이 울리는 시간에 중요한 다른 일을 하게 되면 '잠시 후에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가 까맣게 잊는 거지.

아침은 먹는 게 아니라 허겁지겁 마시듯 하고 출근을 하지. 그래도 난 지금의 내가 좋아. 여전히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거든.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나를 내가 사랑스럽게 바라본다는 거야.

뭐, 어때, 그까짓 준비물 좀 잊을 수도 있지. 이런 엄마의 태도에 아이들도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아이들이 먼저 말해.

"엄마, 내일 현장학습 가는 거 알고는 있지?"

이런, 또 깜박할 뻔했지 뭐야. 그럼 난 이만 김밥 재료 준비하러 가봐야겠어. K, 오늘 그대의 삶은 어떨까? 여전히 치열하겠지? 오늘도 치열하게 사는 그대의 삶을 응원해. 파이팅!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워킹맘이 워킹맘에게>(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워킹맘 #에세이 #편지 #주간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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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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