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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때문에..." 황교익, 정상회담 만찬 기획 뒷이야기

[스팟 인터뷰] "두 정상이 내 고민 해결해줘... 내 생에 이렇게 큰 행사 또 있겠나"

18.04.29 14:51최종업데이트18.04.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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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터뜨리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마술공연을 관람하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멀리서 온...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하하하하."

11년 만에 손을 맞잡은 남과 북의 정상. 그 의미에 담긴 무게만큼이나 경직되고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남북정상회담은 이제 밝은 웃음소리와 아름다운 새소리, 그리고 평양냉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찬 메뉴로 제안하고, 북한이 받아들여 성사된 평양냉면 만찬. 판문점 내 북측 통일각에 옥류관 제면기가 설치되고, 옥류관 수석 요리사가 파견돼 만든 평양냉면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평화의 집으로 배달됐다. 역사상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배달된 평양냉면. '이제 평화의 상징은 비둘기가 아니라 평양냉면'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만찬 테이블에는 평양 옥류관 냉면 외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유년시절을 보낸 스위스 뢰스티를 재해석한 감자전, 문재인 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낸 부산의 달고기구이가 올랐다. 또,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인 남해 통영 바다의 문어로 만든 냉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를 이용한 편수(만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김해 봉하마을에서 난 쌀로 지은 밥과 DMZ 산나물로 만든 비빔밥, 정주영 회장이 몰고 간 소떼들의 고향인 충남 서산목장의 한우 숯불구이 등 지난 수십 년 동안 통일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과 연관된 메뉴로 구성됐다.

'만찬 기획자' 황교익 "한반도 평화 위해 노력한 분들 떠올리길 바랐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 이희훈


만찬 메뉴를 기획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두 정상에 앞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 분들을 떠올릴 수 있는 메뉴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행사 음식은 그 의미에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남북의 갈등과 전쟁 위기를 어떻게든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 두 정상이 만나는 자리잖아요. 이번 정상회담이 엉겁결에 성사된 것이 아니라, 분단 이후 평화를 위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이전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분들... 김구 선생님부터 쭉 떠올랐죠. 몇 날 며칠 잠도 못 잤어요."

황교익씨는 "김구 선생은 통일을 위해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셨던 분"이라면서, "어떻게든 김구 선생이 떠오르는 메뉴를 넣고 싶어 고민했다"고 했다. 하지만 공개된 만찬 메뉴와 그 의미에서 김구 선생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황씨는 "내 고민을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이 한 번에 해결해줬다"며 웃었다.

"김구 선생이 분단을 막아보자고 38선을 넘어갔을 때, 그때도 냉면을 드셨어요. 함께했던 분들 글에 보면 '평양냉면 앞에서는 긴장하던 선생도 마음이 풀어졌다' 이런 내용도 있거든. 냉면을 넣고 싶어서 끝까지 고민했어요. 근데 냉면은 북한의 음식이잖아요. 선생님도 황해도 해주 출신이고. 우리가 김구 선생 이야기하면서 평양냉면을 메뉴에 넣는 게 북한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아쉬워서 1930년대에 한일관에서 서울냉면을 팔긴 했거든. 잠깐 서울 냉면을 넣어볼까도 생각했는데... 서울 냉면에 김구 선생님 스토리를 붙이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결국 말자 했죠. 근데 북한이 옥류관 냉면을 가져오면서 한 방에 해결됐어요. 하하하." 

황씨는 만찬 메뉴인 편수와 한우 숯구이를 이야기하며 "원래 만두와 고기, 냉면은 한 세트"라며 웃었다. 음식 조합으로도 아주 잘 맞게 완성됐다면서 말이다. 그는 "시민들이 정상회담 이후 평양냉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좋다. 여기에 더해 평양냉면을 먹으며 김구 선생도 함께 떠올려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기획자 드러나는 일 꺼리지만, 이번 만큼은... 

▲ 남-북 정상이 함께 연 '민족의 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나무망치를 함께 들고 디저트인 초콜릿 원형돔 ‘민족의 봄’을 열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요리는 '가장 오래된 외교 수단'이라 불리기도 한다. 메뉴와 그에 담긴 스토리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BBC에 출연한 한 외교 전문가가 이번 정상회담 메뉴를 "매혹적"이라고까지 평가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성공에 일조한 기분이 어떤지 묻자 "음식 하나로 평화나 화합이 이뤄지는 건 아니"라면서 "나는 메시지와 스토리를 부여했을 뿐"이라고 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멋진 요리로 실현해준 신라호텔 요리사들에게 "최고 실력자들이라 그런지 시식할 때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한 뒤, 말을 이었다.

"만찬 메뉴나 향토 음식의 콘셉트를 잡고 스토리를 부여하는 일이, 원래 내가 하는 일 중 하나예요. 근데 이런 일은 기획자가 누구인 걸 알리는 게 좋은 일이 아니거든요. 기획자는 기획 그 자체로만 평가받으면 돼요. 누구인지 알려지면 불필요한 논란이나 선입견만 덧붙거든. 

그래서 그동안은 드러나지 않고 잘 해왔는데, 지난번 평창올림픽 VIP 만찬 메뉴를 조선일보가 오픈하면서 내 이름까지 같이 공개해 버렸어요. 식욕을 떨어뜨리는 파란색을 음식에 사용했다면서 '방송인 황교익' 아이디어라고. 마치 비전문가가 참여한 것처럼 아주 악의적으로 보도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때 어마어마하게 화가 났어요. 한반도기 색깔이 하늘색인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평창올림픽 VIP 만찬 기획 참여 사실이 조선일보에 의해 알려졌다면, 이번엔 김어준이었다. 2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만찬 메뉴에 대해 설명하는 황교익씨에게 여러 번 "자기가 해놓고 왜 남이 한 일인 것처럼 말하느냐"고 했기 때문이다.

황씨는 "평창 때도 했으니 이번에도 했겠거니 넘겨짚는 김어준의 말에 얼버무렸더니 바로 알아채더라"면서 "눈치가 보통 빠른 사람이 아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평소 소신대로 기획에 대해 추가로 말을 보태지 않으려 했지만 "내 생에 이렇게 큰 행사를 또 맡게 될 일이 있을까 싶다. 이미 끝났으니 직접 설명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분단 70년, 달라진 평양냉면 맛만큼 멀어진 남과 북 

▲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등장한 평양 옥류관냉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 제공된 평양 옥류관냉면. 만찬에 제공하기 위해 평양 옥류관 요리사들이 판문점 북측 판문각에 면을 뽑는 기계를 설치해서 냉면을 만들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정상회담 당일, 남한의 유명 평양냉면집들은 북새통을 이뤘다. 평양 옥류관엔 갈 수 없지만,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래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난 2일, 평양에서 열린 공연에 참석했던 가수 백지영과 레드벨벳 등이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남한의 유명 평양냉면과 때깔부터 달랐다. 북한의 평양냉면은 색도 더 짙었고, 면발의 느낌도 더 매끈해 보였기 때문이다. 

황교익씨도 아직 평양 옥류관에는 가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 맛본 적이 있는데, 서울에서 먹던 평양냉면과 확연히 다른 맛과 비주얼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우리가 을지로 일대에서 먹던 평양냉면이랑은 완전히 달랐어요. 우리는 면발이 후루룩 흐드러져야 한다고 하는데, 전분을 많이 넣어 매끈하고 질기더라고. 국물도 우리가 먹는 슴슴한 맛이 아니라, MSG도 더 많이 넣은 것 같고, 간장도 많이 넣은 것 같고... 이게 뭐야 했죠. 그러다 옥류관 조리사 출신 탈북자인 윤종철 선생을 만났는데, 그분 말이 남한 평양냉면은 북한이랑 다르다는 거야. 평양에는 많은 냉면집이 있고, 남쪽에서 유명한 냉면들은 그 중 한 종류인 거죠. 근데 분단의 역사가 길다 보니 우린 그게 평양냉면의 정석인 줄 안 거예요. 평양에도 가게마다 다 다른 특색이 있는 냉면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거죠." 

▲ 옥류관 평양냉면 먹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한 평양냉면을 먹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남한의 평양냉면집들이 우리 입맛에 맞춰 조금씩 달라졌듯, 북한의 평양냉면집들도 조금씩 맛을 달리했을 것이다. 서울과 평양의 냉면에는 남과 북이 단절돼 지낸 시간만큼의 맛 차이가 있다.

"평양에 청류관이라는 냉면집이 있는데 거기는 또 맛이 다르대요. 옥류관이 제일 유명하니까 옥류관 냉면이 평양냉면의 원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거죠. 옥류관 냉면 먹어봤냐, 아니냐로 진짜 평양냉면을 먹어봤냐, 아니냐 하고...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가게 되면 이제 이런 말을 하겠죠. '옥류관 말고 그 옆에 다른 데가 더 낫더라', '평양냉면보다 해주냉면이 진짜야', '아니야 함흥이 진짜야' 이런 말을 빨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얼른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 먹어보고 싶어요. 여기 냉면은 어떻고, 저기 냉면은 어떻고... <수요미식회> 개성 편, 평양 편도 하고. 얼마나 좋아." 

북한 음식 생소한 '맛' 전문가... "장마당 두부밥 먹고파"


웬만한 음식은 다 먹어보고, 웬만한 유명 음식점은 다 가본 그에게도 북한 음식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1994년 북한에서 출판된 <조선의 민족전통>을 보며 '아 이런 음식이 있구나' 하는 정도. 맛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일이 업인 '맛 칼럼니스트'에게, 직접 맛보지 못한 북한 음식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말로 다 못 할 정도다.

"난 옥류관보다 장마당에 제일 먼저 가고 싶어요. 장마당에 가면 두부밥이라는 게 있다는데, 두부를 튀겨서 가운데를 파서 밥을 넣고 양념을 바르는 거래요. 유부초밥 비슷하기도 한데 크기는 그보다 크고... 장마당에서 제일 인기 있는 간식이래요. 우리로 치면 떡볶이 같은 음식인 거지. 난 이런 음식이 제일 궁금해요. 옥류관은 북한에서도 잘나가는 사람들이 가는 고급 음식점이잖아요. 서민들이 먹고 사는 음식이 뭔지, 무슨 맛인지 너무 궁금해요."

황교익씨는 20년 전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통일이 되면 금강산 밑에 조그만 부대찌개집 하나 차리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북한에는 없는 메뉴지만, 남한 사람들이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니 그들도 좋아하지 않겠냐면서. "'부대찌개'라 써놓으면 잘 모를 테니 '미제탕' 이런 이름을 붙이면 어떻겠느냐"며 웃었다. '대박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땐 나도 잘 될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모르겠다"고 했다.

"남한 사람들 떡볶이 좋아하잖아요. 근데 탈북자들이 제일 적응 못 하는 음식이 떡볶이래요. 처음 먹으면 '뭐 이런 음식이 있나' 한다고... 맵고 달고 짜고 이런 맛이 익숙지 않은 거죠. 한민족인데 식성이 너무 달라진 거예요.  

분단 상황을 극복하는 건 정치인들의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국민들 마음 속에 평화를 원한다는 강렬한 염원이 있어야 해요. 옥류관 냉면을 먹고 싶다, 옥류관 서울 분점이 아니라 꼭 평양에 가서 먹고 말겠다, 이런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죠.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 북한 열리면 옥류관 가서 쏜다고 했어. 정말 우르르 몰고 가서 쏠 거예요. 아주 기쁜 마음으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 이희훈



황교익 남북 정상회담 평양냉면 옥류관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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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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