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면접, 할 말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23] 출호이반호이, 너에게 나온 것은 모두 너에게 돌아온다

등록 2018.05.08 08:20수정 2018.05.0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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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면접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한 젊은이가 주저하지 않고 "제 인생에 도움이 될 한 말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 tvN 드라마 <미생> 갈무리


신입사원 면접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한 젊은이가 주저하지 않고 "제 인생에 도움이 될 한 말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지만 퍽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발언 기회를 주면 대체로 회사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묻거나 면접 과정에서 스스로 미진했다고 여기는 부분을 보충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진해서 나이 먹은 사람의 조언을 구하는 태도가 좋게 느껴졌다. 연장자의 말을 '꼰대질'이라고 여기는 요즘 젊은이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근래에 '꼰대'라는 단어를 자주 보고 듣는다. 예전에는 음지에서나 사용되던 단어가 지금은 언론을 비롯하여 일상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어감도 안 좋고 의미 또한 좋지 않은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꼬장꼬장한 노인네나 선생님 등 기성세대를 이르는 은어인데, 고집이 세고 말은 안 통하며 같잖은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을 빈정대는 말로 쓰인다.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마치 인생의 정답인 양 말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들으면 꽤 피곤하고 괴롭다. 나는 함부로 나대고 참견하는 사람들의 꼰대질 때문에 고통을 당해봤다. 그래서 나이 어린 사람들이 뒤에서 욕하고 무시하는 꼰대는 되지 않겠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꼰대'라는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최대한 입을 무겁게 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세상을 보고 이해한다. 20대의 나이로 아는 세상과 60대의 나이로 아는 세상은 사뭇 다르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끼고, 같은 사건도 다른 사건이 된다. 우리의 삶에는 수백 번 말을 들어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어린 꼬마가 어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면, 대견스럽기보다는 징그러울 것이다. 아이는 아이답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자연스럽다.

​실수도 하고 고생도 하면서 쓴맛 단맛, 삶의 참맛을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좋은 마음에서 저 잘되라고 하는 소리도 상대방이 듣기 싫다면 역효과를 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라는 속담이 내포하는 것처럼 값진 경험을 할 기회를 굳이 나서서 빼앗을 필요는 없다. 유대인 속담에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라는 말이 있다. 어른이란 쓸데없는 참견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멘토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다. 원래 멘토라는 용어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나가면서 그의 지혜롭고 현명한 친구 멘토에게 자기 아들의 교육을 맡긴 데서 비롯되었다. 신화 속의 멘토는 친구의 아들을 충실하고 신중하게 교육하였다. 그래서 좋은 스승의 본보기로 거론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충분한 실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까지 본인 입으로 멘토라고 떠들다 보니 범박하고 모호한 말로 변질되었다. 얕은 지식으로 스스로 잘났다고 남을 가르치려고 드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다.

몇 년 전 꼰대와 멘토의 차이를 이야기한 JTBC 방송 <속사정 살롱>이라는 코너를 흥미롭게 보았었다. 꼰대와 멘토의 차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멘토는 요청하면 조언해 주는데, 꼰대는 시도 때도 없이 충고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데 있다.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이해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므로 말하는 의도가 똑바르게 전달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나름대로 애정 어린 지적과 충고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꼰대질이 되기 일쑤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경험이 많다고 해서 저절로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품격 있게 살려고 부단히 공부하고 성찰하는 사람만이 지혜롭게 나이를 먹는다. 세상과 인간에 관하여 깊이 깨우친 사람은 함부로 말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본다. 쓸데없이 나이만 먹은 '헛똑똑이'들이 주제넘게 참견하고 가르치려고 든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지혜로운 어른보다 꼰대질하는 늙은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꼰대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나이를 벼슬처럼 여기며, 배울 점은 하나도 없으면서 대접받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꼰대질처럼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현명하게 나이 들려면,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대우받는 괜찮은 어른이 되려면 많이 듣고 적게 말해야 한다. 자기 생각에는 분명 애정이고 좋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만, 듣는 상대에게는 괜한 간섭이고 잔소리일 수도 있다. 젊은이의 미숙한 행동이 비록 눈에 거슬린다 할지라도 바로 지적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어른이라면 못 본 척 넘기는 아량도 필요하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꼭 명심해 둘 말이다. 조언은 상대가 원했을 때 해줘야 순기능을 한다.

출호이반호를 아십니까?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을 요청하는 젊은이의 진지한 표정과 눈빛을 보면서 '슬기롭구나!' 하고 생각했다.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조언을 잘 구한다. 조언을 요청하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과 전문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연륜이 쌓인 어른께 조언을 부탁하면 대체로 흡족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말해주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말을 해줄 때는 마음속에서 이상한 느낌의 희열이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가르쳐 주는 기쁨이다. 그래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나의 호감도를 높일 수 있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의 조언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도 있다. 일거양득이다.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나에게도 눈앞에 마주 보고 있는 젊은이 또래의 아들과 딸이 있다. 내 자식들이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한마디의 말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 사람의 인생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는 것이 말의 힘이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출호이반호이라는 고사성어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니, 고개를 흔들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이럴 때 설령 알더라도 모른 척하는 것이 좋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할 때가 있다.

춘추전국시대 때 추(鄒)나라와 노(魯)나라가 전쟁을 하여 결국 노나라가 승리했다. 싸움에 진 추나라의 왕이 현인으로 널리 알려진 맹자에게 자문하였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 지휘관이 33명이나 죽었소. 그런데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만 있을 뿐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대패했소. 그 괘씸한 자들을 몽땅 잡아다가 죽일 수도 없고, 그냥 내버려 두자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 뻔한데 이것을 어찌하면 좋겠소?"

맹자가 입을 열었다.

"몇 해 전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한 때 임금의 백성 중에는 굶어 죽거나 정처 없이 떠돌며 비참하게 걸식한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됩니다. 그때 임금의 창고에는 곡식과 보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꺼내어 백성들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윗사람이 태만하여 아랫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심하고 조심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지난날 당했던 것을 그렇게 갚은 것이니 어찌 백성들을 나무라겠습니까?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베푸신다면 윗사람을 공경할 것이고, 임금과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콩 심어놓고 팥 열리기를 바라면 안 된다

이 이야기는 <맹자> '양혜왕장구' 하편에 기록되어 있다. 출호이반호이(出乎爾反乎爾) 또는 출이반이(出爾反爾)라고 한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뿌린 대로 거둘 수밖에 없다는 엄중한 경고다. 이것은 불경과 성경에도 강조되는 핵심 내용이다. 부처의 인과율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황금률도 맥락은 같다.

인간은 기본이 중요하다. 인간 조건의 기본은 바람직한 인성이다. 인간성의 좋은 덕목을 갖추지 못한 자가 권력을 가지면 스스로 괴물이 되어 주변 사람을 못살게 괴롭힌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가진 자들의 갑질 횡포가 우리를 분노케 하고 참담하게 만든다.

우리말 단어에 접미사 '질'을 붙이는 순간 질이 뚝 떨어져서 저질스러운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도둑질, 사기질을 경멸하고 증오하듯이 갑질과 꼰대질의 허물도 경계할 일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지 못할망정 욕질과 손가락질을 당하며 사는 것은 무척 수치스러운 일이다.

옛말에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잃을 것도 많고, 위세가 높은 사람은 넘어지기도 쉽다고 했다. 못된 망나니 칼춤 추듯이 함부로 권력을 휘둘러 인륜 도덕을 해치면 반드시 뜨거운 맛을 볼 때가 온다.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선망과 존경을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아주 막돼먹은 언행으로 온갖 저주와 조롱을 받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아무리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명예와 존경은 사람의 마음을 먹고 자라므로 돈으로 살 수 없다.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겸허한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 그것이 가진 자의 사회적 책무이고, 자신의 복을 지키는 일이다.

'출이반이'의 법칙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늘의 법칙이자 자연의 철칙이기 때문에 어김이 없다. 콩을 심어 놓고 팥이 열리기를 바라는 멍텅구리는 없을 것이다. 좋은 씨앗을 많이 뿌리면 풍성한 곡식을 얻을 수 있듯이, 사람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를 고스란히 제 몫으로 감당해야 한다.

무엇이 잘못된 후에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자신에게도 적용하면서 살아야 한다. 남에게 선을 바라면 자신도 선해야 한다. 자신이 한 것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언행을 신중하게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출이반이(出爾反爾) #멘토와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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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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