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겪던 유대인이 '역지사지' 못한 결정적 이유

[서평] 테오도르 헤르츨 <유대 국가>... 유토피아 꿈꾸던 그들은 어쩌다 '재앙'을 불러왔나

등록 2018.05.02 17:38수정 2018.05.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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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도 어김없이 팔레스타인에서 3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이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으로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 70여만 명이 추방된 사건, 혹은 그 사건이 발생한 5월 15일을 가리킨다 -기자 주) 70주년을 맞아 가자지구 국경 인근으로 행진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뉴스다.

기사에 따르면 일명 '위대한 귀환' 행진이라 불리는 이 시위가 시작된 3월 30일부터 지금까지 44명이 사망하고, 50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한번, 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스라엘군이 시위 진압에 실탄을 사용하는 것은 물리력 남용"이라고 비판했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실탄과 최루탄을 사용했다(4월 28일 <연합뉴스>, 가자지구 유혈 확산...이스라엘, 팔 시위대에 또 총격 3명 사망).


이런 뉴스를 볼 때면 '과연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우려고 했던 국가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회한 섞인 의문이 든다. 유대인을 위한 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뺏고, 분리장벽을 세워 가두고, 저항하는 이들은 총으로 쏴서 죽이는 나라가 정말 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국가의 모습이었을까.

그런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정치적 시오니즘(고대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 운동 - 기자 주)의 창시자'라 불리는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대 국가>를 읽었다.

7시간 노동, 모든 인간의 복지 증진... 유토피아로서의 유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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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국가> 표지. ⓒ 도서출판b


테오도르 헤르츨은 1897년 1차 시온주의자 회의를 조직하고, 시온주의자 세계기구 의장으로 팔레스타인에 땅을 구입하기 위한 유대인 은행과 기금을 설립하는 등 시온주의 운동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스라엘 초대 수상인 다비드 벤구리온 등은 이스라엘 독립선언서에서 테오도르 헤르츨을 "유대 국가의 영적인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테오도르 헤르츨이 처음 '유대국가'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유대인 포병대위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증거도 없이 프랑스군 정보를 독일에 누출한 스파이로 몰리고, 프랑스사회가 반유대주의 광풍에 휩싸인 모습을 본 그는 유대인이 유럽사회에 동화해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고, 유대인만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유대 국가>는 테오도르 헤르츨이 이런 자신의 구상을 구체화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유대인의 고난과 유대인 문제의 단적인 현실, 유대인 해방의 사회적·정치적 기만성, 영토와 주권을 지닌 독립적인 유대 국가 창설의 당위성과 현실성, 유대 국가 창설을 위한 대내외적인 과제들과 그 기관으로서의 유대인 협회와 유대인 회사 및 지역 집단들의 역할과 기능, 나아가 일이 진행되어 나가야 할 순서와 절차 등등"(146쪽)을 다루고 있다.

그는 <유대 국가>에서 유대 국가를 세워야 할 필요성보다도 실제 유대 국가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기구와 그들의 역할, 자신이 그리는 유대 국가의 모습 등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대 국가>에서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저지르는 참상을 읽기는 어렵다. 김항 연세대학교 교수는 "실제로 <유대국가>를 읽어보면 애초에 정치적 시오니즘의 구상은 '사회민주주의'와 '국제주의'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반유럽, 반아랍의 주장은 찾아볼 수 없고, 새로이 건설된 이스라엘 국가가 1일 7시간 노동을 보장하는 급진적 사민주의를 국시로 삼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오늘날의 '막가파 시오니즘'과 구분한다. (2013년 2월 1일 <경향신문>, [명저 새로 읽기]테오도르 헤르츨 <유대국가>)

사실 테오도르 헤르츨이 그리는 '유대 국가'는 유토피아의 느낌마저 풍긴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나는 무엇보다도 우선 내 구상을 유토피아로서 취급하는 것에 반대하여 그것을 변호해야만 한다"(10쪽)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유대 국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현대적인 모든 교육수단들을 갖춘 아이들을 위한 쾌적하고 밝으며 건강한 학교들이 존재할 것이다. 나아가 좀 더 고차원적인 목적들을 향해 상승하는 방식으로 단순한 직인들로 하여금 기술적인 지식들을 획득하고 기계류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직인 재교육 학교들이 거기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민중의 오락을 위한 건물들을 세워질 것인데, 그곳에서의 윤리적 행동에 대해서는 유대인 협회가 위로부터 지도할 것이다."-<유대국가> 59쪽


그가 강조하는 7시간 노동에서도 유토피아의 느낌이 풍긴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우리는 하루 7시간 노동을 바로 자유롭게 몰려들어야 할 세계 모든 지역의 우리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필요로 한다"며 "우리나라는 실제로 약속의 땅이 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62쪽). 그에게 7시간 노동은 곧 '약속의 땅'의 징표인 셈이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국기에 "우리의 황금빛처럼 뛰어난 7시간 노동일"(123쪽)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황금빛 별들을 넣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 외의 다른 민족을 차별하자는 이야기도 찾기 힘들다. 오히려 테오도르 헤르츨은 공존을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국적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신앙고백이나 그들의 불신앙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신앙과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들도 우리들 사이에 함께 거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명예로운 보호와 법적인 평등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 - <유대 국가> 121쪽
 
테오도르 헤르츨은 그리하여 '유대 국가' 건설이 단지 유대인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세계는 우리의 자유를 통해 자유롭게 되고, 우리의 부를 통해 부유해지며, 우리의 위대함을 통해 위대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거기서 오직 우리 자신의 번영을 위해 시도하는 모든 것은 강력하고도 행복하게 하는 방식으로 모든 인간의 복지를 위해 작용할 것이다." - <유대국가> 135쪽

아시아=야만... '국제주의'가 아닌 '제국주의'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대 국가>에서 반아랍의 혐의를 찾기 힘들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조리 쫓아내거나, 학살하거나, '유대 국가' 안에 남은 그들을 차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는 김항 교수의 평가처럼 '국제주의'를 말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에게 제공할 경우 "우리는 거기서 아시아에 대항한 장벽의 한 부분을 형성할 것이며, 야만에 대항한 문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할 것"(49쪽)이라고 말한다. 제국주의자들이 할 법한 아시아=야만, 유럽(테오도르 헤르츨의 경우에는 유럽+유대인)=문화라는 도식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주의'보다는 '제국주의'에 가까운 언사지만, 그래도 아랍인을 몰아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일단 넘어간다고 치자.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유대 국가'를 세울 땅의 주민들과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해 거의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단편적인 서술에 근거해 추측하건대 테오도르 헤르츨은 기본적으로 원주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팔레스타인 외에 후보로 거론된 아르헨티나에 대해 "아르헨티나 공화국은 우리에게 영토의 한 부분을 양도하는 데서 아주 큰 이익을 얻게 될 것"(48쪽)이라고 말하거나 팔레스타인에 대해 "터키의 재정을 자청해서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49쪽)라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 그런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원주민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신앙과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들도 우리들 사이에 함께 거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명예로운 보호와 법적인 평등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 외에 다른 내용이 없다.

어쩌면 그 이유는 애초에 공존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문장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자. 굳이 "거주하게 된다면"이란 가정법을 사용한 이유는 뭐였을까. 테오도르 헤르츨은 본디 "다른 신앙과 다른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없거나 설령 있다 해도 예외적인 존재, 소수자로서만 존재하는 유대 국가를 구상했던 게 아닐까? 앞의 "어쩔 수 없이"라는 표현을 보면 그런 의심이 더욱 커진다.

그렇다면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유대인에게 제공하고, 자신들은 다른 지역에서 사는 방식을 고려했다는 이야기일 텐데 재정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한들 과연 원주민들이 그런 방식에 쉽게 찬성할 수 있을까?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떠오르지만, 테오도르 헤르츨은 원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할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유대인협회, 유대인회사, 지역집단 등의 유대 국가 건국에 필요한 기구와 이주 후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총 6장 중 3장을 할애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 비하면 내용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테오도르 헤르츨이 이야기한 공존은 공허하게 들린다. 테오도르 헤르츨이 이상으로 그리는 '유대 국가'가 성공할수록 세계 각지에서 더 많은 유대인이 '유대 국가'로 이주해오고, 그에 따라 원주민과 여러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 이스라엘 건국 이전 소수의 유대인만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 때도 이미 분쟁이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테오도르 헤르츨은 '유대 국가'가 세워질 땅에 살던 원주민과의 공존을 별로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유의 빈틈에서 자라난 '막가파 시오니즘'

사실 드레퓌스 사건 당시 프랑스 사회를 뒤덮고 있던 반유대주의 광풍을 떠올리면 테오도르 헤르츨을 이해할 만한 여지는 있다. 당시 일부 언론의 반유대주의 선동은 실로 맹목적이었다. "기독교인이든 유대인이든 둘 중 하나가 프랑스를 떠나야 한다"는 기사가 빈번하게 실렸고, "본지는 반유대 신문입니다"란 구호가 매일 실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제목을 <반유대>로 지은 신문까지 있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테오도르 헤르츨이 유대 국가 건설을 대단히 절박하고 시급한 과제로 실감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 시급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유대 국가'가 세워질 땅에 살던 원주민과의 공존을 별로 깊게 고민하지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테오도르 헤르츨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의 '유대 국가' 구상에는 애초에 빈 틈, 즉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공존에 대한 사유 부족이 있었고, '막가파' 시오니즘이 끝내 그 빈 틈을 채우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도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분명 책임이 있다. 테오도르 헤르츨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막가파 시오니즘'과 나크바(대재앙)의 싹은 이미 <유대 국가>에서부터 자라고 있던 셈이다.

유대 국가 - 유대인 문제의 현대적 해결 시도

테오도르 헤르츨 지음, 이신철 옮김,
비(도서출판b), 2012


#이스라엘 #시오니즘 #테오도르 헤르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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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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