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 '뻘쭘'한 사람, 당신만이 아닙니다

[5월이 두려운 사람들] '핏줄' 중심 가정의 달,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등록 2018.05.07 20:37수정 2018.08.01 15:01
1
원고료로 응원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유난히 행사가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덩달아 신경 쓸 일, 돈 쓸 일이 몰려 있어 '5월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5월이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a

일정 중 '지우펀'이라는 곳에 가서 풍등에 소원을 적어서 날리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 신소영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엄마오빠와 함께 대만 여행을 갔다. 일정 중 '지우펀'이라는 곳에 가서 풍등에 소원을 적어서 날리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붓으로 한 면에 자신의 소원을 적은 다음 날려 보내는 것인데, 그때 가이드가 하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주로 부자되게 해달라고 쓰고, 일본 사람들은 행복하게 해달라는 문구가 많아요. 한국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가족 건강, 화목 같은."

실제로 그날 구경을 해보니 가이드의 말이 맞았다. 문득 궁금하면서도 서늘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가족에 집착할까.

가정의 달, 반드시 화목하고 행복이 넘실대야 할 것만 같은 달이다. 4월 말부터 각종 기념일에 대비한 선물과 꽃 광고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뭔가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운에 떠밀리고 만다. 그간 소홀했던 무심함을 알량한 선물로, 간단한 안부로 변제받는 느낌도 들어서 썩 달갑지 않다. 물론 시큰둥할 수밖에 없는 더 중대한 이유는 따로 있다.

'가정의 달', 이의 있습니다

나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아빠는 17년 전에 돌아가셨고 나와 똑같이 비혼인 오빠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지방에 거주한다. 내 입장에서는 자녀도, 남편도, 조카도 없고, 엄마 입장에서는 며느리나 사위, 손주도 하나 없는 매우 단출한 식구다.

덕분에 '가정의 달' 팡파레를 울리며 축제 분위기를 조장하는 5월이 되면 조금 뻘쭘하다. 무심한 척, 쿨한 척 넘어가긴 하지만 가끔은 가족이 없는 사람,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많을 텐데 그들도 나처럼 뻘쭘하겠다 싶은 뾰족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지난해 1인 가구가 부부+미혼 자녀 가구수를 추월했고, 한부모+자녀 가정도 205만 2000가구나 된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하는데, '가정의 달'은 이대로 괜찮은 건가 싶은 의구심이 든다.

물론 가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겨나는 요즘, '가족'이라는 게 과연 혈연으로만 규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10여 년 전, 캐나다에 갔을 때였다. 워커홀릭으로 살다가 몸과 마음이 고장나서 도망치듯 떠났더랬다. 아무 연고가 없는 상태로 겨우 홈스테이할 곳만 구해서 머물고 있었는데, 도착한 지 한 달이 막 지나서 홈스테이와 문제가 생겨버렸다.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 상황에서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막막 그 자체. 그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 언니에게 용기를 내서 전화를 했다. 언니는 한 달음에 달려와서는 내 짐을 들며 보스처럼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원룸이어서 낯선 나와 함께 지낸다는 게 불편했을 텐데 언니는 한 달 정도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내가 돈을 낸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나도 여기 처음 왔을 때, 정말 외롭고 무섭고 막막해봤기 때문에 어떤 심정인지 잘 알아. 여기선 서로 돕고 살아야 해. 당연한 거니까 편하게 지내."

다정한 호의에 마음이 씩씩해졌다. 덕분에 난 홈스테이에서 쫓겨난 충격에서 빨리 벗어났고, 예쁜 방 하나를 얻어서 무사히 독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보낸 한 달이 내 캐나다에서의 1년 생활 중 가장 유쾌하고 행복했다.

나는 나부터 살겠다고 캐나다로 떠나 그렇게 살고 있을 때, 엄마는 서울에서 혼자 지내셔야만 했다. 오빠는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터라 집에 자주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캐나다에 머무는 1년 동안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정기적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내가 없는 자리를 대신 메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귀국해서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듣고 고맙다고 하자, 핀잔이 돌아왔다.

"너 예뻐서 한 거 아니야. 어머니가 우리 고등학교 때 끓여주신 라면이 몇 그릇인데."

라면은 위대하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부메랑이 되어 이런 식으로 엄마에게 돌아오니 말이다.

핏줄을 넘어선 또 다른 '가족'

a

처음으로 만난 낯설고도 따뜻한 친절. 그 덕에 늘 경직되어 있던 지안의 세계는 변하고 있다 ⓒ tvN


요즘 내가 애정하는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다. 요근래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유가 분한 지안이 퇴근길에 동훈(이선균)과 동행하는 장면이었다. 동네 사랑방 같은 주점 '정희네' 앞에서 후계동 아저씨들과 정희(오나라)를 만난 지안. 그들은 외진 데 사는 지안을 보호하듯 에워싸고 집까지 함께 걸어간다. 마치 호위무사처럼.

그리고 폭력과 외로움으로 얼룩진 지안의 집 앞에 이르자, 상훈(박호산)은 이웃에 사는 한 남자를 부른다. 그러면서 "이상한 놈들 기웃거리지 않는지 평소에 좀 잘 봐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정희가 지안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잘 자요."

이들의 사소한 돌봄은 고된 삶으로 인해 차갑게 굳어버린 지안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처음으로 만난 낯설고도 따뜻한 친절. 그 덕에 늘 경직되어 있던 지안의 세계는 변하고 있다.

조금 엉뚱한 비약인지 몰라도 나는 그 장면에서 또 다른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피가 섞이지 않았으나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들. 그래서 힘겨움을 견디고 살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사람들. 그런 관계도 또 하나의 가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혈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정의 달에서 제시하는 가족의 개념에서 조금 벗어난 우리 가족 같은 경우, 피를 섞지 않은 관계가 베푸는 친절과 관심, 돌봄 덕분에 살았다. 그래서 그런 관계가 가족만큼 중요하다. 물론 나도 살면서 계속 그 빚을 다른 누군가에게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끼리 서로를 보살피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상대를 배려하고 돕는 것이 가족이다. 진정한 가족은 핏줄로 이어진 가족을 뛰어넘는 곳에 존재한다."-<가족이라는 병> 중에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상중에 가릴 게 있고!" 기자에 버럭한 이해찬
  2. 2 박 시장 자필 유언장 "모든 분께 죄송하다... 모두 안녕"
  3. 3 '박원순 저격수'였던 강용석 행보가 우려스러운 이유
  4. 4 "빌어먹을 S코리아, 손정우 보내라" 미국민들 이유있는 분노
  5. 5 박원순 장례 '서울특별시장 반대' 국민청원 등장... 5시간만에 7만 넘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