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전국체전에 남북태권도 같이 선보인다

남북한으로 갈라진 태권도, 시범 경기 함께 펼치며 남북평화무드 과시할 터...

등록 2018.05.02 18:11수정 2018.05.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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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ITF 태권도 선수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박정연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도 특별한 남북한 스포츠 이벤트가 곧 펼쳐질 예정이다.

5월 25일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제2회 캄보디아 전국체전 개막식행사에서 우리나라 태권도가 품세와 격파시범을 보이는 데 이어, 6월 5일 폐막식에는 북한 ITF 태권도가 시범경기에 나서기로 한 것. 

이에 앞서, 지난 4월 30일 시범 경기 때 사용하게 될 태권도복 800벌 기증식이 주캄보디아대한민국대사관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후원으로 마련된 본 도복증정식에는 오낙영 주캄보디아대사, 헹 추온 나론 캄보디아 교육청소년체육부장관, 헴 삼낭 캄보디아태권도협회 부회장, 최용석 캄보디아국가대표감독과 2014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손 시브메이 선수 등이 참석했다.

태권도 유단자로 캄보디아태권도협회장까지 맡고 있는 헹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남북한 태권도가 함께 하는 캄보디아 전국체전 시범경기에 큰 관심을 표명하며,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게 되어 매우 기쁘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에 오 대사는 태권도는 원래 뿌리가 하나였다고 설명하며 "남북으로 갈라진 태권도가 함께 캄보디아 전국체전에 선보이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 나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뿌리는 하나지만, 남북으로 갈린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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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주도하는 ITF 태권도를 창설한 최홍희 회장의 얼굴 동판.(전북 무주 태권도관 전시) ⓒ 박정연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태권도연맹(아래 WTF)은 우리 남한이 이끌어왔으며, 북한은 국제태권도연맹(아래 ITF)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오 대사의 말처럼 태권도도 한 뿌리였던 남북한처럼 원래는 하나였다.

태권도의 역사가 갈라진 데는 '최홍희'라는 인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 초대회장을 맡은 바 있으며, 육군소장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1966년 서울에서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했다. 한국·베트남·미국 등 9개 국가를 시작으로, 1년간 무려 40개국이 연맹에 가입했다. 원래 '태수도'라고도 불리던 이름을, 총회를 거쳐 '태권도'로 명칭을 바꾼 것도 최홍희가 협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태권도가 있게 한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최홍희는 당시 정권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박정희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는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인 1973년 주미대사관 참사관과 UN 총회 대표부로 일한 경력을 가진 김운용씨를 청와대로 불러 들여, 그로 하여금 세계태권도연맹(WTF)을 결성토록 지시했다.

그 이후 캐나다에 정착한 최홍희는 동유럽을 중심으로 시범단을 이끌던 중 우연찮은 기회에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고, 마침내 1979년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그는 김일성 주석에게 자신이 창안한 태권도에 대해 직접 소개하면서 북한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 이듬해인 1980년 10월에는 해외사범들을 포함한 15명의 태권도시범단을 구성, 평양에서 시범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최홍희식 태권도'가 북한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ITF를 북한이 주도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김운용 총재가 이끄는 WTF도 ITF와의 경쟁구도 속에서 나름 국제스포츠무대에서 세를 키워가며, 우리 태권도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지난 1980년대 초중반까지도 WTF는 전세계 회원국과 회원수뿐만 아니라, 국제스포츠계 영향력에서 ITF에 밀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WTF 태권도가 ITF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건 88서울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WTF 태권도가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부터다. 지난 2017년 작고한 김운용 WTF 전 총재의 공이 컸다. 태권도를 올림픽정식종목으로 만들기 위해 당시 우리 정부도 WTF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섰다.

가입회원국수 경쟁에도 돌입했다. 북한이 주도하는 ITF를 의식한 게 분명하다. 일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선 대회출전경비까지 대신 부담하는 등 공을 들인 덕에 WTF는 회원국수를  ITF 회원국수의 2배에 가까운 208개국까지 늘릴 수 있었다. WTF는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가입회원수에서 ITF를 앞서기 시작했고, 오늘날 국제스포츠무대에서 WTF가 가입회원국수나 전체 저변인구수, 국제대회 개최 규모 등 양적 측면에서 만큼은 나름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이렇듯, 지난 반세기동안 WTF, ITF로 나뉜 양대 기구는 상호견제와 경쟁, 때론 반목과 우여곡절까지 겪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코리아=태권도'라는 등식이 생긴 것도, 양대 태권도 기구가 일군 노력의 결과물이다. 어찌 보면, 한류의 시작도 K-POP이나 드라마가 아닌, 태권도가 원조라고 볼 수 있다.

달라진 경기 규정과 용어, 심지어 스타일마저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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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프놈펜 올림픽 스타디움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태권도 한마당 축제에서 한국 시범단이 발차기 격파시범을 보이고 있는 모습. ⓒ 박정연


그렇지만, 멀었던 남북관계만큼이나 지난 50여 년간 WTF와 ITF 간엔 인적교류나 정보공유가 거의 없었다. 그 사이 남북한의 태권도는 겨루기, 품새 뿐만 아니라 용어도 상당부분 달라지고 말았다.

가장 일반적인 예로, WTF는 스파링 경기를 '겨루기'라고 부르지만, ITF는 '맞서기'라고 부른다. 경기 규칙이나 보호구착용 등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WTF는 머리와 몸을 보호하기 위해 헤드기어와 몸통 보호대를 각각 착용하지만, ITF 선수들은 몸통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헤드기어 대신 권투선수들처럼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경기에 임한다. 또한 글러브를 끼고, 신발은 밑창이 없는 말랑말랑한 재질의 신발을 신는다. 그 외에도 WTF는 남은 경기 시간 및 득점 상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사용하지만, ITF는 점수가 앞선 선수들의 시간끌기를 막기 위해 전광판을 사용치 않는 등 경기규칙도 많이 다르다. 

최용석 캄보디아 태권도국가대표팀 감독은 "남북의 태권도가 반세기동안 경기규정이나 규칙 등 여러모로 많이 달라졌지만, 양 태권도가 추구하는 스타일도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우리 태권도가 대중적인 스포츠의 성격이 강한 반면, 북한 태권도는 실전용 격투기에 가깝다. 이번 캄보디아 전국체전을 통해 남북한이 각자 발전시켜온 태권도의 차이점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솔직히 긴장도 좀 되고, 부담도 큰 게 사실"이라며 웃었다.

최 감독에 따르면, 캄보디아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내에는 WTF와 ITF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번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태권도 선수들은 모두 캄보디아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남북한 지도자로부터 수년간 태권도를 배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감독은 시범경기를 앞두고 리허설 준비로 한 달 내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개막식에선 품새와 단체격파시범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북한의 태권도는 어떤 방식의 시범경기를 펼칠지 아직까지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최 감독은 "ITF 관계자들은 물론, 북한감독과도 알고는 지내지만, 대화나 소통은 아직까지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고 털어놨다.

개막식과 폐막식에 각각 펼쳐질 남북한 태권도시범경기는 훈센 총리 등 정부주요 인사들과 6만여 명 관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캄보디아 전역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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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오낙영 주캄보디아대사가 인천아시안게임 태권도 첫 금메달리스트인 시브메이선수에게 태권도복 800벌 기증패널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 박정연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딴 시브메이 선수덕분에 태권도에 대한 현지국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이다. 태권도 저변 인구도 6만여 명이 넘는다.

더욱이 최근 남북관계가 급진전을 이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캄보디아정부도 개막식과 폐막식 이벤트로 치러지는 남북한 태권도 시범공연에 더 큰 관심을 갖는 모습이다.

때마침, 훈센 총리도 지난 월요일 한 연설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극찬하며 환영의사를 밝혔다.

소식을 접한 일부 교민들도 개막식 시범공연뿐만 아니라, 폐막식에 열리는 ITF 태권도 시범공연을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놈펜 시내 북한식당들도 한국손님들이 늘었다는 소식마저 들려온다.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여러모로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캄보디아 #최홍희 #북한태권도 #ITF #남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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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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