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먼저'였던 어버이날, 완전히 바꿔버린 계기

[5월이 두려운 사람들] 결혼 12년차... 자식으로 살면서 가장 큰 효도는

등록 2018.05.06 11:03수정 2018.08.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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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자 유난히 행사가 많은 달입니다. 덩달아 신경 쓸 일, 돈 쓸 일이 몰려 있어 '5월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5월이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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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변화를 겪으며 며느리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 ⓒ jeremywongweddings, 출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지출 스트레스가 많은 달이기도 하다. 양가 용돈을 챙기는 일에서부터 아이 선물에 이르기까지, 챙겨야 할 일은 많고 많다. 사실, 미혼 시절부터 어버이날을 살뜰히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전화통화도 일이 있어야만 전화를 했다. 무뚝뚝한 딸이다. 가족 간 주고받는 선물도 어색한 편이라 주로 용돈만 송금하곤 했다. 낳아 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면서 시댁을 챙겨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요즘 시대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시댁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대부분 며느리의 몫이다. 경조사를 잊는다는 것은 며느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결혼이란 큰 이벤트 이후 나는 변화해야 했다. 연애 시절엔 남편과 공휴일에는 데이트 하느라 바빴는데, 결혼 후 5월 공휴일엔 양가 인사드리러 다니기에 바빠졌다. 생각해보면 누가 먼저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게 되어버렸으니까. 누구 하나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인 시선에서 나는 스스로 자유롭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30년 이상을 살아왔으므로.

나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그렇듯 결혼을 하고 나서 시댁 경조사를 챙겼다. 더구나 워킹맘으로 살면서 아이 양육을 시부모님께 맡기는 터라 어버이날이나 명절의 우선순위는 항상 시댁이 먼저였다.

시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 일주일 전쯤 형님과 전화통화로 일정을 잡고, 음식을 준비했다. 남편에게는 일정을 통보해줄 뿐, 주도하는 건 며느리인 형님과 나의 몫이었다. 반대로, 우리 친정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 남편은 제부와 전화통화로 일정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친정부모님도 나랑 여동생이 준비하고 챙긴다. 즉, 양가 모두 여자들이 나서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뭔가 이상했다. 시부모님은 남편의 부모님이다. 그렇다면 시부모님의 생신은 남편과 아주버님이 먼저 나서서 챙겨야 하는 것이 맞다. 며느리인 나는 보조를 맞추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기만 할 뿐이었다.

일단, 형님과 어머님이 같은 여자이지만, 당연하듯 먼저 나서서 집안일을 챙겼기 때문이었다. 둘째 며느리인 내가 '이건 좀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도 변화가 왔다.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변화

결혼 12년 차, 사실 지금은 어버이날 양가를 오가며 분주히 보내지 않는다. 아파트 같은 단지에 사시는 시부모님은 5월 8일 저녁, 아이들과 손잡고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오는 정도로 끝나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친정은 안부전화만 한다. 양가 용돈이나 선물은 생략한다. 이처럼 간소화된 행사에 양가 어른과 우리 부부 모두 만족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행사를 끝내는 것이다.

이렇게 간소화된 이유는 몇 년 전 우리 부부가 위기를 겪으면서 부터였다. 시작은 경제적인 위기였다. 물질적으로 가난해지니, 마음도 가난해졌다. 가정생활에 위기가 왔다. 결혼 후 참았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당연히 시댁을 챙기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도 힘들었겠지만, 아내인 내가 양가를 챙기지 않으니 시댁 행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때 알았다. 양가 부모님을 챙기는 건 그나마 내 생활이 안정되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위기 속에서 그동안 쌓여있던 나의 분노가 폭발했다. 왜 나만 시댁을 챙겨야 하는지, '왜 나만', '왜 여자만'으로 시작하는 분노의 레퍼토리가 그렇게 많은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분노를 그때 다 쏟아낸 것 같다. 그렇게 위기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 조금씩 여유를 찾게 된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다. 그냥 저녁에 인사나 드리러 가자고.

"그래도 점심 식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냥 인사드리는 걸로 끝내자. 서로 부담 없는 선에서 하자."

아마, 남편도 나의 분노의 레퍼토리를 들으며 깨달은 바가 많았는지, 아니면 더 이상 나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애초에 어떤 감정도 쌓지 않으려는 노력일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저녁을 먹고 나서 안부 인사드리러 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와 부모님이 모두 만족한다는 것이다.

위기를 넘기는 동안 부모님의 마음도 편치는 않으셨다. 자식이 힘들어 하는데 부모 마음이 편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자식으로 살면서 가장 큰 효도는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고 무탈하게 사는 것 아닐까? 가족의 안부 인사는 평화를 잃어본 사람만이 아는 행복이다.

'부담되고 싫다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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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룰은 가족안에서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 ⓒ geralt, 출처 Pixabay


나는 어버이날이 아니어도, 가끔 시부모님을 집으로 모셔 식사 대접을 한다. 내가 몸과 마음이 여유가 될 때 초대를 한다. 꼭 어버이날만 챙겨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의무가 아닌 여유로운 마음에서 우러나 준비한 음식은 모두에게 즐겁다.

이제 어버이날에 의무감으로 선물을 준비하거나 어색하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가끔, 직접 준비한 간소한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무뚝뚝한 내 스타일에도 맞는다. 그것만으로도 며느리의 역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 남편도 변화를 했다.

"이번 달에는 장모님 모시고 식사 한 번 하러 가자."

나처럼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가끔 먼저 나서서 우리 친정부모님을 챙긴다. 이것도 남편의 스타일이고 최선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의무감에 대해서 강요하지 않는다.

'부담되고 싫다면 하지 말자'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우리 부부가 정한 룰이다. 이혼의 위기까지 겪어가면서 굳이 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결혼 12년 차, 이렇게 우리는 서로 맞추어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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