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 판사'가 8년 동안 소년재판만 맡은 이유

[서평]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등록 2018.05.29 12:14수정 2018.05.29 12:14
0
원고료로 응원
현직 판사로서 사람들에게 유명한 사람은 많지 않다. 뭔가 범죄나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를 제외하면, 국회의원들이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판사들은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편이다. 많은 판사들이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판사가 있다. 바로 소년범을 다루는 천종호 판사다. 천종호 판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통 판사'의 이름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소년범들에게 엄한 호통을 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누리꾼들의 호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SBS 스페셜에서 방영된 <학교의 눈물> 편에서 천종호 판사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선처를 호소하자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라는 명언을 남겼다.


천종호 판사는 일반 성인 범죄자가 아닌 소년범을 다루는 판사다. 그는 소년범에게 엄한 모습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불우한 청소년들의 어려운 모습에 공감하는 따뜻한 감성을 가졌다. 그런 그가 소년범을 지켜보면서 겪은 감정들을 책으로 출간했다.

a

호통판사천종호의변명 ⓒ 천종호


때때로 극단적인 소년 범죄들이 언론의 보도를 장식한다.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소년 범죄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오래 가지 못한다. 꾸준히 소년 범죄에 관심을 가지고 소년범죄 감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적다.

이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법조인이어도 마찬가지다. 소년재판을 많이 해도 좋은 경력을 쌓지 못한다. 소년사건을 많이해서 소년전문가가 되어도, 소년범들은 대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변호를 해도 돈이 안 되는 사건만 준다. 때문에 소년범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의 수는 매우 적다.

이런 환경에서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그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8년동안 소년재판을 맡으면서 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재판을 했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따끔한 호통과 함께 엄한 재판을 했다. 2년간 소년원에 보내는 10호 처분을 많이해서 별명이 '천10호'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그는 견디기 힘든 어려운 형편에서 그만 범죄의 길에 발을 딛게 된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평생 받지 못한 배려를 하는 판사다. 이 책은 그런 소년범 전문가인 천종호 판사가 바라보는 소년범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의 변명은 국내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번역된 플라톤의 '아폴로기아'라는 책에서 따왔다고 한다. 저자는 아폴로기아는 변론으로 번역함이 좋다며, 이 책은 소년범과 그를 규율하는 소년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소년범의 편에 서서 토로하는 변론의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8년간 소년재판만 맡았다. 책에 따르면, 8년째 전담하는 전례가 없었지만 대법원에서 인사위원회까지 열어서 허락해 줬다고 한다. 그는 비행소년에 관한 정책이 굉장히 후진적인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소년범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아이들을 배려할 수 있게,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제공해서 단 한명의 아이라도 비행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소년재판을 맡아왔다.
아이들은 작은 도움과 격려 한마디에도 삶을 새로 빚어낼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저 역시 인생의 여정에서 여러 차례 가난과 무관심에 상처받고 좌절했으나 그때마다 저에게 손을 내밀어 준 이들이 있었기에 마음이 부서지는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법정 안에서도 법정 밖에서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저라도 대변자가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소명과도 같았습니다. -10P
이 책에는 읽는 사람을 울리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괴롭힘을 당하다가 비행에 빠지게 된 아이, 부모가 돌보지 않아서 노숙을 하다가 천종호 판사를 찾아온 아이의 이야기 등 다양한 소년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문제는 대체 왜 발생할까.

천종호 판사는 학교폭력의 근본적 요인은 가정의 해체라고 생각한다. 책에 따르면, 많은 아이들이 학대당하고 있지만, 학대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이지 않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자신이 학대당하고 이어도 학대당하는 것을 잘 모른다. 학대당하는 아이들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탈출로 인식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관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족이 해체된 아이들에게는 사회 공동체가 나서서 울타리가 되어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천종호 판사는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이 배려받을 수 있도록, 뜻있는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소년 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청소년이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청소년회복센터다. 청소년회복센터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비행소년들을 보호하는 곳으로, 소규모의 대안가정을 지향하는 곳이다.
나는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비행소년 전용 그룹홈인 '사법형 그룹홈'(청소년회복센터)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지역의 뜻 있는 분들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후 많은 분들의 도움과 헌신으로 마침내 2010년 11월, 창원에 첫번째 그룹홈을 개소할 수 있었다. (중략) 비록 위탁형 대안가정이지만 오갈 데 없는 10여 명의 아이들이 형제가 되어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갖게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70퍼센트에 육박하던 재범률이 청소년회복센터에서 생활한 이후 20~3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235P


청소년회복센터에 들어온 아이들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아이들과 같이 독서모임을 하고, 대학생 멘토링을 받으며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한다. 가정에서 받지 못한 관심을 받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도록 돕는 것이다. 천종호 판사는 합창단을 만들어 매주 아이들과 함께했다. 덕분에 아이들의 재범률이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소년범죄를 줄이기 위한 지원이 미흡한 형편이다. 소년범을 수용할 건물은 모자라고, 이들이 출소한 후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별로 없다.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동체도 적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활용한 범죄나 중독 문제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천종호 판사는 그래서 앞으로도 청소년회복지원시설에 대한 지원이 크게 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행소년들도 대한민국의 청소년이고, 우리의 소중한 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심과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잘못했을 때는 엄벌에 처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응당한 처벌을 받은 후에는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안타깝게도, 천종호 판사는 더이상 소년 재판을 담당하지 않게 되었다. 2018년 2월 법원 정기인사로 인해 다른 사건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소년들의 어려운 환경에 관심을 갖고 범죄로 나아가지 않도록 도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한명의 아이라도 비행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천종호 지음,
우리학교, 2018


#판사 #천종호 #호통 #소년범 #범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