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부처님 오신 날 절밥 먹으러 가지 않으련?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5월 3일

등록 2018.05.03 10:29수정 2018.05.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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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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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거리에 연등이 걸리기 시작했다. 빨간 파란 연등을 보며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너희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 '가롤로'는 아버지의 세례명이고 작은딸은 '비비안나' 엄마는 '인젤라' 남들이 보면 근사한 천주교 집안이구나 하겠지만 사실 아버지는 불교철학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야. 아버지 방에 성서는 딱, 한 권 있지만 역경원에서 출판한 한글 팔만대장경 전권을 포함 대부분의 책이 불교 철학서인데, 그뿐인가? 아버지가 반야심경도 쓰고 외울 수 있어.


"사람은 낟알로만 못 사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사니라" 성서에 쓰여있는 글인데 아버지는 이렇게 말해. "사람은 사람의 정으로 사니라"

아버지는 성당에 가 있는 시간보다 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뿐더러 친구도 스님 친구들이 많은데 한 번은 성북동 길상사를 갔어. 아침을 걸러서 그런지 배가 몹시 고팠는데 내려오다 보니까 마침 부처님 발 밑에 오천 원 짜리 한 장, 오백 원 짜리 동전 한 개, 백 원짜리 동전 세 개가 있데. 배도 고프고 짜장면이라도 사 먹으려고 오천 원짜리를 한 장 챙겨 넣는데 지나가던 스님 왈,

"오백 원짜리는 왜 남겨두어요?"
"짜장면 곱빼기 오천 원 아니에요? 짜장면값 올랐어요?"
"몰라, 나머지도 다 가져가요."
"미안해서 그러죠."
"미안하긴 뭐. 돌부처님은 배고픈 줄 몰라. 다 가져가요."


그게 뭐라고 부처님 발 밑에 돈을 챙기는 아버지도 그렇지만 나머지 돈마저 가져가라는 스님 또한 멋지지 아니하냐? 아버지가 종교 이야기는 잘 안 하는 사람인데 너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 성당과 절집 이야기를 한다.

사랑하는 딸아, 사월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사위의 생일이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라지? 그래서 더 기쁘다. 아버지가 천주교 신자지만 부처님 오신 날이 세상에서 제일 기쁘다. 부처님 오신 날 아버지가 절에 가서 차량 안내를 해가며 봉사 활동하는 걸 보았지 않으냐.


우리가 남의 집을 가면 그 집 어른께 예를 올리듯 아버지는 절에 가면 절집 예절대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스님께 예를 올린다. 천주교가 사랑이라면 불교는 자비다. 글자 모양만 달리 했을 뿐 같은 뜻이다. 하느님의 "사람은 낟알로만 못 사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사니라" 이 말과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우리에게 "나는 누구인가? 삶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모든 종교를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종교가 타락하면 정치가 타락한 것 이상으로 무서운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순기능을 믿고 부처님 오신 날 가까운 절에 가서 차량 안내 봉사도 하고 담백한 절밥도 먹고 오자꾸나. 아버지가 길상사 경내의 범종을 간단하게 소개하마.

1.
길상사 범종이 달려있는 천장의 현판에 쓰인 글귀다. 
'이 종소리 듣는 이마다 평안을 이루소서.'

2.
聞鐘聲煩惱斷 (문종성번뇌단)
智慧長菩提生 (지혜장보리생)
離地獄出三界 (이지옥출삼계)
願成佛度衆生 (원성불도중생)

종소리 들으면 번뇌 끊어지고
지혜는 자라나서 깨달음 생겨나네
지옥을 떠나 삼계를 벗어나서
원컨대 성불하여 일체중생 건지리다

3.
종의 밑, 땅바닥에 파인 구멍이 음통이다. 그리고 종 머리에 굴뚝같은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음통과 종 머리에 있는 굴뚝으로 인해서 종소리의 여운이 길게 남겨진단다.

4.
극락전 옆 법고루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법고는 땅위의 축생을 제도(미혹한 세계에서 생사만을 되풀이하는 중생을 건져 내어 생사 없는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함)하며, 물고기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목어는 수중의 중생을 제도하며, 구름 문양이 새겨진 운판은 허공을 나는 날짐승의 축생을 제도한다.

5.
길상사 주지스님과 함께.

#모이 #불교 #스님 #부처님오신날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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